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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공연기] 연극 <교회오빠>

 

 

오늘의 우리는 청춘의 '푸른사과'를 원했다, <연극 교회오빠>

뒤를 돌아 볼 수도 옆을 볼 여력도 없다. 오로지 앞만이 존재한다. 그저 내 뒤를 바짝 추격해 오는 누군가를 앞서기 위해 내달린다. 단 하나의 목적을 쫒으며 도착지를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경쟁자도 그 무엇도 아닌 타인이 되어 각자의 갈 길로 돌아선다. 대학입시가 그러했고 취업이라는 레이스도 그러해서 오늘날의 청춘들은 끝없는 이력서와 프로필을 채워나간다. 청춘의 일그러진 열정을 대신하여 찾아오는 권태와 외로움은 우릴 사이좋은 사람들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안내하며 그 가상의 공간에서 비쥬얼적인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디카로 나를 포장하고 은밀한 시선으로 다른 이를 의식하며, 순수한 사랑은 촌스러운 것으로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사랑이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는 오늘의 청춘, 그 그늘진 단면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서로에게 기댄 채 광장에 나가 젊음의 진성을 내던, 애앓이 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따스하게 자신의 문자를 전하던 청춘의 로망은 일찌감치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보인다.

로맨틱 코미디 연극 <교회오빠>는 불온한 오늘날의 청춘에 대한 고발이다. 냉소적인 오늘날을 상징 하는듯한 미니멀한 원목의 무대 공간에는 청춘들의 뜨거움으로 들끓었던 현장이 가쁜 호흡을 내쉬며 녹아있다. 3․1운동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1920년대의 젊은이들이,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젊은이들이, 붉은 물결이 전국을 휩쓴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젊은이들이 존재한다. 세 개의 다른 시공간의 플롯 안에는 1920년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첫사랑의 상대를 발견하고 설레여 하는 ‘재희’가, 1960년 헤어졌던 정민과 만나지만 다른 이를 좋아하는 정민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재희’가, 2002년 정민에게 묵혀왔던 첫사랑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재희’가 있다.

<교회오빠>는 ‘젊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첫사랑’과 ‘광장’을 화두로 한다. 삶의 열정에 눈 뜨고 타자에 대한 욕구와 욕망을 품은 성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첫사랑’임을 이야기하고,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광장’에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상업화, 획일화, 부끄러운 웃음과 교훈을 주는 공연의 광장에서 이러한 소재만으로도 <교회오빠>의 존재는 유의미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이것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은 젊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교회오빠>의 젊은 배우들은 발성과 시선, 호흡을 포함한 기본적인 테크닉, 자유롭고 다채로운 시도 등을 통해 공연 전체의 밀도를 만들어 내고 템포감을 조절하며 청춘의 부활을 뜨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객에게 노출되는 매끄럽지 못한 장면전환과, 각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19살의 ‘재희’를 사실적으로 인식해야하는지, 허구적으로 인식해야하는지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혼란을 야기 시킨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무겁고 정치적일 수 있는 소재가 코미디적인 요소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것은 잘한 선택으로 보이나 군데군데 너무 많은 코미디적 요소는 자칫 잘못하면 시공간의 설정이 소재주의에 그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각 플롯별로 매끄러운 Bridge의 구성과 각 플롯을 연계하는 매개체 및 오브제 등의 사용, 진중함과 희극적 요소의 적절한 사용을 해결방안으로 하면 조금 더 뜨거운 교회오빠가 탄생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오빠>는 푸른빛을 내며 붉은색으로 농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아오리’ 사과를 연상하게 했다. 푸른빛 ‘아오리’ 사과만의 고유한 싱그러움, 완전하게 익지 못해서 생기는 텁텁함 속의 시큼함, 사각사각의 경쾌함, 청춘의 맛도 이와 같지 않을까? <교회오빠>는 잊고 있던 이 맛을 상기시키며 청춘의 푸른사과, 대학로의 푸른 사과가 되기를 자청했다. 넘쳐 나는 정보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 ‘밀실’에 갇혀 있는 청춘들에게 ‘첫사랑’과 ‘광장’을 화두로 우리의 내재된 푸른사과적 욕망을 이끌어내고, 더불어 상업화와 획일화로 얼룩지는 대학로를 고민하는 푸른사과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작은 푸른사과 하나가 사과나무를 이룩하는 그 순간이 오기를, 오늘의 많은 청춘들이 ‘밀실’에서 나와 ‘광장’에 서서 붉게 농익기를 기대해본다.


김미소 kmgmis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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