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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원형중심에 광대가 있다 -7

 

“아! 우리 계원 4만 명은 어찌 스스로 서로를 멸시하고 규약을 깨뜨릴 수 있겠는가? 대개 우리들이 맡은 것은 나라에서 중국의 칙사가 올 때 산대희를 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인청에 참가하여 순번대로 관가의 공역에 응하는 것이고 사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섬겨 우리들을 살찌우니 대개 천한 장부들이 하는 것이다......아! 오직 우리 계원들만도 경기도에 대략 4만 명이니 모두 재인청의 훈계를 따르고 우리의 약속을 좇는다.”(경기도 창재 도청안)(1836)
“처음에 김개남은 도내의 창우(倡優)․재인(才人) 천여 명으로 일군(一軍)을 만들어 그들을 두터이 예우해서 그들의 사력(死力)을 얻음을 도모하였다......처음에 손화중은 도내의 재인(才人)을 뽑아 1포(布)를 조직하고 홍낙관으로 하여금 이를 지휘하도록 했다. 홍낙관은 고창의 재인으로서 손화중에 속하여 그 부한 수천 명이 민첩하고 정예병이었으므로 손화중이 비록 전봉준, 김개남과 정족지세(鼎足之勢, 솥발처럼 셋이 맞서 대립한 형세)에 있었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손화중의 무리가 최강이었다.”(황현, ‘오하기문’)
위의 기사들이 말하는 것은 조선 후기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이 수적인 면에 있어서도 엄청난 집단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1836년경 경기도에만도 4만 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3년마다 한 번씩 있었던 식년시 과거 때마다 서울서 모여 총회를 했었다.
다음의 기사들은 1894년 동학 혁명 당시 동학군에 때로는 천여 명, 때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광대들이 중심이 된 부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은 부분적인 자료들로 전라도 쪽에는 경기도보다 더 많은 광대들이 있었다.
다음의 자료가 말해주듯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을 겪은 뒤의 조선 후기에는 주로 전라도 광대들이 중앙의 산대희에 동원되었다.
“노리개짓하는 희자(戱子)들을 전적으로 전라도에 책임지운 것은 그 수효가 무려 6백 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광해군 일기 13년)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의 산대희에 경기도 지역의 광대들만 동원되었다. 경기도 지역의 광대들만 하더라도 광대들의 수를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양란을 겪은 과정에서 광대 신분의 사람들이 많이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산대희에는 8도의 광대들이 모두 동원되었고, 그 중에서도 전라도 광대들이 수적인 면에서도 단연 월등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것은 위의 광해군 때의 기사에서 ‘노리개짓하는 희자(戱子)들을 전적으로 전라도에 책임지운다’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인조 4년 중앙의 산대희에 대한 문서인 ‘나례청 등록’(1636)에 좌우 산대 중 좌산대도감 소속 광대 286명 중 171명이 전라도 광대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경기도 광대들은 3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1836년경에 경기도 지역에 광대들이 4만 명이었다면, 전라도 지역에는 얼마만큼의 광대들이 있었을까? 동학 혁명 당시 동학군인 김개남의 부대에 천여 명의 광대들만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있었고, 역시 동학군인 손화중 부대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광대들이 중심이 된 부대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전라도쪽에 있었던 엄청난 수효의 광대들을 보여 주는 부분적인 자료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광대 집단에 대해 얘기할 때, 전통 사회는 신분 사회였기에 광대도 단순히 그러한 역을 한다는 기능 집단으로서보다는 이들이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우리나라의 민속 예능들을 공식적으로 담당해 왔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속예능사의 중심 집단이었던 것이다.

손태도의
광대 이야기
광대 집단①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12월 11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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