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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원형중심에 광대가 있다 -5

 

광대를 아십니까
남원에 장재백 명창의 무덤은 있는가①


‘남원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판소리 명창 장재백- 송흥록보다 약 50년 후인 철종 무렵에 남원 운봉에서 출생했는데 잠시 순창에서 살았으나 임종지는 남원읍 도통리이다.그는 고종 황제 생일 잔치에 전라도의 광대 대표로 뽑히어 어전에서 노래하였는데 팔도 명창 중 최고라 하여 고종과 민비의 절찬을 받았다.고종은 그에게 소원이 무엇인가 물으니 대답하여 아뢰기를, ‘황송하오나 재인들이 양반들의 시비로 사후에 시체를 묻되 봉을 지을 수 없고 평장을 해야 하오니 이를 시정하여 주시도록 분부하시옵소서.’ 하였더니 왕은 즉석에서 승낙하시고 전국에 영을 내려 재인들도 죽으면 무덤을 차별없이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상당 부분 지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일부는 사실일 수 있다.
우선 장재백이 고종과 명성왕후 앞에서 소리를 한 것은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창극사’(1940)에는 그가 어전에서 소리를 하여 벼슬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조선창극사’에 보면 비록 명예직이지만 모흥갑이 동지(同知), 송수철이 선달, 이동백이 통정대부를 받은 것 등 상당수의 광대들이 어전에서 소리를 하여 벼슬을 받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 사실로 보아야 한다. 광대가 임금 앞에서 소리를 하여 벼슬까지 받는 것은 광대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일이었기에, 이러한 사실들이 광대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들로 정확히 전승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임금과 관계되는 것이기에 감히 함부로 꾸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대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은 ‘조선창극사’에 장재백이 어떤 벼슬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임금 앞에서 실제로 소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임금 앞에서 소리를 하면 종2품인 동지에서부터 종9품인 참봉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등급은 있으나 대체로 벼슬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종의 생일날 장재백이 소리를 한 것은 사실이다.중국에서는 황제의 생일날 지방의 관아들에서 이를 축하하는 산대희와 같은 광대놀음들을 벌렸듯, 우리나라에서도 임금의 생일날 조선 시대의 경우에는 8도의 감영들에서 각 지방의 수령들이 모두 모여 축하 잔치를 벌렸다. 그러한 임금의 생일날 지방 감영에서 잔치를 벌린 한 모습이 오늘날 많이 알려진 고종 황제 시절의 전라감영에 있었던 7월 연(宴)날 놀이다. 고종의 생신이 7월 25일이었기에 매년 이날이 되면 전라도 각 지역의 수령들이 전주에 있는 전라감영에 모두 모여 축하 잔치를 벌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전라감영의 연(宴)날 놀이에, 조선 후기 판소리가 성립된 뒤에는 무엇보다도 판소리 명창들을 초청해서 판소리를 듣는 것이 주요한 행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1885년의 이 축하 잔치에 전주 지역의 소리꾼 4명 외에 당대의 소문난 명창들인 김세종, 장재백, 이날치 등 3명이 특별히 초청되어 소리를 한 것이 당시의 금전출납부인 ‘연수전하기’(宴需錢下記) 지출란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창부(唱夫) 이날치 50냥...... 장재백 50냥
향창부(鄕唱夫) 4명 200냥 김세종 100냥”
그러므로 장재백이 고종의 생일날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 명창으로 관청에 불려가 소리를 한 것은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장재백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광대들은 죽어도 무덤을 만들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일까? 사실이다. 이것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사실이다. 광대들은 죽어도 무덤을 만들 수 없었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11월 29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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