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2.2 수 16:24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공연 원형중심에 광대가 있다 -2

 

광대를 아십니까
장길산은 누구인②
 

장길산은 창우(광대)였다.
장길산에 대한 자료로는 현재 숙종실록, 이익의 `성호사설', 서얼(庶孼) 출신 이영창 등이 중심이 된 역모 사건 기록 등 세 가지가 있다. 이중 숙종실록은 가장 믿을 수 있으며, 이익의 `성호사설'도 이익이 숙종 당대의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이영창과 관련된 기록은 이영창이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장길산 집단을 끌어들인것이기에 다소 주의하여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세가지 자료들을 토대로 장길산의 생애를 재구성해보자. 
장길산이 활동하기 시작한 무렵은 숙종 12년(1686)경이다. 장길산이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하자, 조정에서는 특별히 신엽을 황해도 감사로 삼아그를 체포하도록 했으나 실패하였다(성호사설). 이후 숙종 18년에 장길산은평안도 양덕에 숨었으나 이때도 관군은 그를 잡지 못한다(숙종실록). 
그후 숙종 23년 이영창의 역모에 장길산 집단이 연계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숙종은, 장길산이 10년 이상이 지나도 잡히지 않음을 개탄하고 후한상을 내세워 그의 체포를 독려하지만 끝내 그를 잡을 수 없었다(숙종실록). 숙종 23년에 서얼 출신인 이영창이 중심이 된 역모 사건이 사전 발각된다. 그는 `개국'(開國)이라 해서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역모를 준비하여 자신의집단이 장길산 집단과 8도의 승병(僧兵)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꾸며 말하게 된다. 이과정에서 그는 장길산과 관계될 수 있는 여러 사실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는 우선 장길산을 만났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만난 광대들 중 첫째 광대는 큰 키에 수염이 있었으며, 둘째 광대는 흰 얼굴에 중간 키였고,셋째 광대는 작은 키에 눈이 컸다는 것이다. 이중 첫째 광대가 장길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그는 실제로 장길산을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장길산 등의 모습이 당시에 일반에 알려진 것이어서 그가 이를 말한 것이라면 이것은 장길산과 어느 정도 관련될 수있을 뿐이다. 그는 장길산 부하 중에 강선흥이란 날랜 장수도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장길산이 유명한 만큼 그의 부하들도 일반에 어느 정도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장길산이 평안도 운산의 군기고(軍器庫)를 털었다는 사실과 장길산이 보병 1000명과 기마병 5000이 있어 단독으로도 궁궐로 쳐들어갈 수있음을 장담했다고 하고 있다. 이중 장길산이 운산의 군기고를 습격한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이것은 그가 꾸며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에게서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길산의 병력이 보병 1000명에 기마병 5000이라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숙종 12년경에 장길산 도당의 한 명이 잡혔는데, 관군은 그를 이용해 경기도 파주에서 말들을 몰고 장사를 하는 수십명의 장길산 일당들을 사로잡은 적이있었다.(성호사설) 장길산의 기마병은 이렇듯 평소에는마상(馬商)들이었기에 유사시에 모두 모으면 상당수의 인원도 이룰 수 있기때문이다. 그는 또 당시 장길산이 함경도의 서수라(西水羅)등지에 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당대에 떠돌던 이야기일 것이므로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이영창의 사건 이후 장길산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는 끝내 관군에 잡히지 않고 어느 정도 자기가 뜻한 바대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11월 16일 기사입니다.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