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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Movement Therapy-(1), 류분순

 

1. 서언
춤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제례나 의식 속에서 종교와 함께 있어왔으며 원시사회에서는 그들의 근본 목적 달성을 위해 주술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공포, 경외, 숭배들을 춤으로 표현했고, 집단적으로 함께 공유했다. 치료로서 유용한 종교적 춤의 유형은 춤추는 행위자가 일으키는 엑스타시로서, 원시 부족에 있어 왔다. 이러한 엑스타시의 치료적 가치는 춤에 의해 유도된 황홀경의 상태에서 뭉쳐진 억눌린 감정의 격렬한 발산을 통해 정화되는 경험을 갖는 것이다. 즉, 원시사회들에서는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거나 그들을 경배하기 위해서 고안되어진 의식들 내에서 춤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무속에서도 서서히 움직임이 시작되어 격렬한 춤을 통하여 황홀상태에 들어간 무당과 관객의 동시적인 참여의 체험으로 관객의 소망과 염원에 따라 그들을 대리하여 인간의 신앙적 기원을 신에게 비는데, 무당굿이 얼마나 치료효과를 갖는가는 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즉각적인 반응으로 형성되는 굿판에서의 상호행위 속에 이루어진다. 본고에서는 동작연구를 역사적으로 조망해보고, 나아가 무용동작치료의 역사와 근래 무용동작치료의 현황과 치료과정, 치료사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21세기 감성과 문화의 시대에 부합하는 여성성의 중요함을 이해하고자 한다.

2.동작연구의 역사적 조망
동작에 대해서 고찰해 보는 우리의 현재 방식들은 그것을 연구한 역사로부터 받은 지적인 영향들을 반영해 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1872년에 다윈 (Darwin)이 출판한 [인간과 동물들에서 나타난 감정들의 표현](The Expression of Emotion in Man and Animals)이라는 저서를 시작으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다윈은 ‘실생활에 연관된 습관들’이라는 비언어적 행위의 기원들과 역할들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 냈다. 그의 이론은 어떠한 행위들이 어떤 감정이나 상태를 없애기 위해서 행해진다고 말해주고 있다. 어떤 상태가 반복될 때에는 마치 그것이 이제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한 것처럼 동작도 되풀이된다. 이것에 관한 예들은 깜짝 놀라는 반응, 화난 얼굴 표정들, 혹은 당황할 때 머리를 긁적이는 행위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개 자동적으로 인간의 습관에서부터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서 다윈은 가축들이 카펫 위에 드러눕기 전에는 원을 만들거나 그 위를 어슬렁거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은 풀 위에 눕기 전에 그것을 문질러 왔을 그들의 야생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인 것처럼 보인다(Davis, 1975). 다윈은 동작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행동 생물학과 자신의 진화론으로부터 도입한 개념들을 사용했다. 그의 몇 가지 사상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간과 동물의 행위를 비교했던 연구가들에 의해 계승되어졌다(Scheflen, 1979).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실험적인 심리학자들은 얼굴 표정들에 관한 연구가 감정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희망했다. 흥미롭게도 그러한 연구들은 실험대상들의 얼굴 표정에 담긴 감정들을 사진이 일반적인 상황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상황적 실마리나 얼굴 표정이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이러한 연구는 의사소통적 배경 안에서 동작을 판독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통찰력은 구조적 언어들을 비언어적 의사소통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어떤 구조로써 이용하면서 동작을 잘게 분석했던, 무언의사소통 연구가인 레이 버드위스텔(Ray Birdwhistell)에 의해 계승되었다. 버드위스텔의 경우에 있어서는 동작의 의미가 ‘그 동작을 누가, 언제, 어디서 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성호반응의 순서로 동작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점과 분리되어질 수 없었다(Birdwhistell, 1970).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작연구는 보다 세분화되어졌고 여러 가지 카테고리들로써 분류되어질 수 있다. 인격, 감정이나 정신 병리학을 반영해 주는 동작, 특정한 행위들, 상호작용, 의사소통, 문화적 비교, 성장유형들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다(Davis, 1975). 1940년대부터 인류학, 언어학, 그리고 사회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사소통과정의 비언어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연구들이 그 자체의 연구분야로써 등장하게 되었지만, 인류학, 심리학, 행동 생물학, 인종학, 언어학, 미학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
동작을 판독할 수 있는 접근법들이 이처럼 너무나 많지만,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무용/동작 치료법에서는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보다는 동작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위에서 설명한 어떤 사람이 팔을 오른쪽 옆에서부터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대신에 우리는 그가 인사할 때의 경우처럼 팔을 재빨리 들어 올렸는지, 아니면 그의 손이 술취한 것처럼 흐느적거렸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빨리’라는 표현이나 ‘흐느적거리는’이라는 표현은 동작의 특성을 묘사해 주는데,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그 대상이 표현하고 있는 심리학적 중요성에 대해 관찰할 수 있다. 동작을 이처럼 특징적이고 표현적이며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은 무용/동작 치료법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연구자이자 심리학자이기도 한 마사 데이비스는 이론적인 틀을 발전시켜 왔는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서 이러한 모든 동작분석전망들을 조직화시킬 수 있다. 그녀는 ‘동작은 어떤 순간이라도 개인적, 문화적, 심리학적 유형들을 동시에 반영해 주고 있다’라고 서술했다(Davis,1974).
예를 들어 동작은 감정, 걱정, 벙어기제들 그리고 무의식에서 나오는 상징적 의사소통에 대한 심리적 과정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속력, 연대감, 지배나 복종에 대한 개개인적 과정들을 설명해준다. 동작은 또한 문화적 의식들과 그룹의 전통들을 반영해 줄 수 있다. 개개인의 심리학적 과정들은 순간적인 변화에 얽매여 있지만, 개개인의 동작유형과 문화적인 특성들은 영원히 지속된다. 동작을 경험이라는 언어적 측면에 대한 단순한 비교나 해석으로써 간주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동작유형들은 개인적 차이나 개인적 과정들을 단순히 나타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실제로, 동작의 영역은 이러한 과정들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인데, 그것은 말, 그림, 꿈, 예술작품이나 사람들의 행동으로써 설명되어진다(Davis, 1974).
따라서, 동작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 사이에는 필연적이고 본질적이며 고유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림이 농아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즉시 판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특정한 몸짓들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말이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손짓을 사용하는 전통을 만들어낼 때에 생겨나는 그러한 관습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작은 거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그 의미를 수반하게 된다. 미간을 좁히거나 가슴을 움츠리는 것, 그리고 팔, 다리를 가운데로 모으는 것 등의 행위는 넓게 포위하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다윈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저히 다른 종족들의 젊은이와 늙은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동작들을 통해서 똑같은 감정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동작이 ‘스스로 말을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설명적인 용어들, 은유들, 그리고 다른 훈련생들의 기준을 그 위에 단순하게 올려놓아서는 안된다(Davis, 1974).
앞에서 제시되어진 이러한 조건들을 가지고서, 정신의학에서의 무용/동작 치료법에 적절한 도작과 의미의 특정한 분야들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9월 27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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