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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무용비평의 원로 故김영태 선생의 타계를 추모하며

 

지난 12일 무용계 일각에는 잔잔한 애도의 기운이 번져갔다.7월 12일 새벽 무용평론가와 시인·화가로 활동해 온 김영태 선생이 기어이 숙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무용관계자들에게 타전되었던 것이다. 이에 지난 주말 14일 치뤄진 발인에서는 現 무용평론가 협회 회장 김태원 씨와 장광렬 씨를 비롯한 중견 무용평론가들과 이건청 씨 등의 동료 시인들이 삼성서울병원에 모두 모여 무용계의 청명했던 큰 별이 진 것을 추도하며 영결식을 치른 바 있다.

무용계의 대원로였던 故 김영태 선생은 우선, 무엇보다 척박했던 무용비평계에 시적 무용비평의 모델을 제시한 시금석적 존재였다. 하여 그는 시적인 문체로 무용의 이미지 한 장면을 그림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문인다운 풍부한 감성을 담아내는 인상비평의 새장을 연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신 김영태 선생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지만 1959년 ‘사상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바 있다. 이후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쳐 17권의 시집과, 13권의 무용 평론집을 발표했고, 12권의 산문집, 10권의 소묘집을 내는 등 총 60권의 시와 산문 무용비평 저서를 남겼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대학시절 발레사진에 매료된 뒤 공연 전문지인 ‘춤’ ‘공간’ ‘객석’ 등에 춤 평론을 쓰게 되었고 대학시절 전공도 살려 7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동류의 전방위 예술가 이제하 시인과 함께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표지그림을 담당해오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약해왔다.

이처럼 예술의 다방면으로 조예가 깊었던 선생의 다재다능함은 국내의 무용비평의 신경지를 개척하는 데 기여해왔다. 그의 시와 비평은 대부분 무용이나 음악의 공감각적 이미지, 여백의 이미지를 주된 화두로 삼아 무용의 그러한 심미적 율동을 시적으로 변용, 묘사해놓은 것들이 많았다. 때문에 그는 정교한 언어의 결정이자 고도로 정화된 사유가 결집된 문학텍스트인 ‘시’와 ‘무용’간 긴밀한 친밀성을 증명하고 또 공고히 한 ‘무용비평계의 시인’이셨다는 데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 시대 마지막 진짜 데카당트 아티스트였다 할 선생은 또 독실한 음악매니아이자 화가이기도 해서 음악과 시와 무용 전 분야에 서로 간에 닿아있는 탐미적 본질을 다각도의 시선으로 관통해보이는 심미적인 필치를 자랑해왔다. 말하자면 그는 예술의 장르 간 유기성을 스스로의 생으로 실존적인 차원에서 증명한 분이 된 것이다. 그는 이렇듯 자신의 모든 열정과 생애를 무용비평과 시 쓰기에 헌신하면서 무용평론가회 회장, 서울 국제무용제 심사위원을 역임하게 되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문화예술대상(무용 부문)과 같은 굵직굵직한 상을 섭렵해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05년에는 평생 모은 문화예술관련 자료 2만 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보관에 기증한 에피소드가 있어 문화계의 큰 어른으로 좋은 귀감이 되기도 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늘 댁에선 에릭사티의 피아노음악과 함께 컴퓨터나 휴대폰 없이 지내시지만 대학로에 '무용공연이 잡은 날이면 문예회관 대극장 가열 123번' 자리(지금의 아르코 극장 가L열 11번)에 가면 40년 가까이 거기 앉아있는 그 분을 일 년이 하루 같이 매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을 만큼 ‘무용과 결혼했다’는 말이 무색치 않도록,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현장비평에 매진해 오신 故 김영태 선생. 그런 선생의 존재는 국내 ‘무용비평’이라는 장르가 미처 체계화되지 못했던 196.70년 대 자신의 여백의 미학을 지닌 시적 무용비평을 독자적인 장르로 승화시키면서, 장르 간의 소통과 외로운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매진해오신 그야말로 무용계 큰 거성이었다.

그런 김영태 선생의 타계 소식은 우리 무용계와 무용평론계의 현재와 앞날을 고민하도록 한다. 지난 5월 국립무용단장을 수회 역임해 오셨던 한국무용 송범 선생의 타계에 이은 김 선생의 타계는 시대가 흐르면서 한국의 무용평론가와 무용가 판이 세대교체 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이다. 현재 한국 무용계는 연고주의와 폐쇄성, 무용비평계는 전문성을 지닌 후진인력과 독창적인 비평색과 비평론의 부재로 난항을 겪고 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강화도 전등사에 수목장 되어 큰 나무의 거름이 될 故 김영태 선생은 이 땅의 척박한 무용계 밭에 기름진 장인의 거름이 되었다. 한 시대 무용비평계(무용계) 역사를 장식했던 거성, 거름의 행적, 그 뒤엔 그 분의 뜻을 이어, 고급순수예술이라는 美名 아래 마이너 장르로 소외되고 있는 ‘무용’과 ‘무용비평’을 고사 직전의 침체된 분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을, 모던함이라는 시대적 감각과 동시에 원숙하고 진지한 기품을 지닌, 무엇보다 고인만큼이나 무용에 대한 애정을 지닌 무용비평가계의 훌륭한 후진들이 양성되어 줄기차게 꽃 피우고 열매 맺어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정순영 holy-lux@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7월 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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