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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커스] Shall We Dance ?! 몸의 기억으로 체각하는 공감각의 에너지

 

‘춤은 말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춤이다.
춤은 말없는 풍경이자 세상의 어떤 숨어있는 모습들을 드러낸다.
풍경을 춤출 수만 있다면… 어떤 모습들이 나에게 와서 춤이 되듯이……’
- 김영태, <풍경을 춤출 수 없을까>

무용은 무조건, 어렵다? ‘무용’ 舞와 踊 두 자가 조합되면 ‘지루하고 어렵다’며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는 사실 일반인들이 무용공연을 접해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거나 낯 선 것에 대한 선입견에 근거한 통념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미학적인 의미를 담아 표출해 낸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가장 원초적인, 그렇게 때문에 가장 역사가 깊고 인간적인 표현수단을 들라면 무엇이 있을까? 그는 바로 노래와 춤이 아닐까?

춤을 추는 행위는 내 존재의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생명력의 발로이다. 인간은 육체의 본능적 욕구와 함께 순간 순간 희노애락을 느끼며 그에 따른 행동을 상대방에게 보임으로써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기도 한다. 언어 이전의 이러한 몸짓이 곧 무용의 발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대 인류는 또 자연계의 무한한 신비의 탄생과 죽음, 환희와 절망, 공포와 희망의 엇갈림 속에서 생의 보람과 강렬한 충동을 춤으로 표현해왔다. 살아서 숨을 쉬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움직임의 본능적 감각과 춤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기에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터득된 미적행위가 무용예술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은 극소수 특정예술가들의 전유물인 것만은 절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무용계는 참으로 척박하다. 창무 포스트극장, 씨어터 제로, LIG 극장, 개인 춤연습실이 춤전용 스튜디오로 변신한 춤 스튜디오 6D 등 몇몇 무용전용극장들에서는 연일 많은 무용단이 무대에 오르지만 무용 매니아들을 제외한 대중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활로의 모색에 실패하고 있다. 숨어있는 이사도라 던컨, 바슬라프 니진스키들이 몸짓으로 외치며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용공연에서는 몸짓의 울음, 율동의 시가 들린다. 명상성과 격렬한 육체성 가득한 몸이 그려내는 이미지즘, 표현주의, 낭만주의의 색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헤르만 헤세는 “어른이 되면 세상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시인이자 무용평론가인 노 시인 김영태 씨는 또,‘풍경을 춤출 수는 없을까?’라고도 묻고 있다.  

가끔씩 주변의 리듬에 몸을 맡겨 희열을 표현해보자. 내 육체가 내게 말하려하는 공감각의 메시지를 느껴본다... 이 때 사람들은 육체와 정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샘솟듯이 분출하는 위대한 힘과 육체가 곧 하나의 소우주임을 깨닫는다고들 고백한다. 경직된 몸을 풀어주는 인위적이지 않은 기운을 따라 흐르는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은 기계화된 현대사회에 인간성을 회복해내는 일종의 제의적 경험이 될 수 있진 않을까?

정순영 holy-lux@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7월 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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