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2.25 목 13:0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김미소 칼럼]이광수의 무정 - 잘못된 근대화의 첫 단추

 

전통과 현대성, 그 양분화 된 논란은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하는 꼬리표이다. 지난 학기 ‘전근대의 기생의 예술과 종말’에 대하여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어김없이 그 양분화 된 담론을 갖고 괴로워했고, 전근대의 민요의 사회사를 연구하는 지금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긴 무리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의 어디서부터가 잘못 되어서 국악은 늘 안팎으로 푸대접을 받는가, 우리 민족의 저변에 자리하는 자문화 깔아뭉개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하여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 요즘, 이광수의 ‘무정’은 그 문제의 해답을 제시했다.
이광수의 ‘무정’은 신소설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터닝포인트 지점에서의 첫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의식과 자아의 각성이 보인다는 점,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서술이 비약적이고 추상적인데서 나아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되었다는 점 , 구어체와 묘사체의 접근, 서술시제의 현재화 등은 근대소설로서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무정’은 범해야 하지 않을 수위를 넘어선 문학임에도 틀림없다. ‘무정’은 과거의 봉건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반항으로 새 시대의 계몽을 꾀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문제는 ‘무정’이 전면으로 내세워 이야기하는 민족계몽주의인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구체적인 현실의 결과가 아닌 이광수의 관념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적 지식인이었던 그는 지식인과 미개한자라는 이분법의 구도 안에서 상하 주종의 권위적인 관계로서 미개인을 정치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작위적인 자기만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함은 소설에 반증되어 나타나는데 신지식인의 표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자유연애와 삼각관계를 둘러싼 이야기의 결말이 유학을 통한 신지식의 습득으로의 해결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광수가 소설의 필두로 내세우고 있는 ‘자유연애’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서구화의 모던한 가정이 이상적이라는 전제하에 새로움 속에서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소설속의 이광수는 말한다. ‘문명을 주어야지요’ 라고. 과연 그는 우리에게 어떤 문명을 제시하였는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경계선의 지식인으로써 그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첫 단추를 낀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그의 근대적 철학의 저변에는 권력관계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열등의식이 만연하다. 미개한 한국 - 일본 - 서양의 강국으로 순위 매겨지는 그의 사상 속에서 우리나라 기존의 모든 것들은 개혁의 대상이자, 자신의 치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알았을까. 그 후에 닥쳐올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억압을. 그 억압의 그늘에서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는 미래의 문명을. 원망스럽다. 본질을 외면한 그가. 그 썩은 뿌리에서 숨을 쉬고 누런 잎을 피우는 우리가.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과거의 첫 단추가 잘못되었음을. 잘못 끼워진 채 지금 여기를 만들었음을. 그리고 고민해야 한다. 한 세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 주인공으로 현재 우리의 문명을 미래에 어떻게 전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글 · 김 미소 · 키네틱국악그룹 옌 연출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3월 30일자 기사입니다.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