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3.3 수 11:22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길 잃은 괴물 VS 창조적 괴물 - 무대로 진출한 B-BOY, 그들을 진단한다

 

몸을 바닥에 대는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남자 B-BOY. 그들이 우리에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 최고 권위의 비보이 대회 독일 Battle of the year에서 2002년, 2004년, 2005년 연속 우승을 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수면 아래 잠겨 내공을 쌓고 있던 비보이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그들만이 가진 고유의 역동성, 대중성, 비언어성은 그들의 거처를 뒷골목에서 무대로 옮겨 놓았다.

이러한 결과로 작년 한해 비보이를 소재로 한 뮤지컬, 비언어극이 5편 이상 만들어졌고, 올해에도 비보이 작품들이 10편 이상 제작 예정에 있다. 비보이의 돌풍은 연일 이어져 이제 우리는 그들을 드라마, 영화에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마이너리티 문화를 즐기는 문제아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 공연예술계의 블루오션으로, 메이저리티 문화의 주류로 성장했다. 이러한 비보이를 동아일보 최민우 기자는 ‘진보하는 비보이, 대중문화의 괴물’이라고 일컬었다. 무대로 이적해온 그들이 새로운 공간에서도 ‘창조적 괴물’이 될 수 있는지 다음의 3작품을 통해 그들의 현재를 진단해 보고자 한다.

1.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비보이를 무대 예술로 보급화 시킨 선두주자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넌버벌의 형태로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발레리나가 비보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스트리트 댄스에 동화되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클래식 예술로서의 발레와 대중문화로서의 비보잉은 몸을 이용한 언어적 움직임을 매개체로 하여 이질적동질성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요요를 이용한 퍼포먼스, 걸스 힙합, 비트박스 등을 선보이며 부과적인 쇼(show)적 즐거움을 제시한다. 이것에 힘을 더하는 것은 비보잉을 위해 전용 공간으로 지어진 돌출무대에서 만들어지는 비보잉의 현장성과 즉흥성, 비보이들과 관객의 밀착성이다. 하지만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만의 유기적인 연결성의 부재, 과잉된 이벤트적인 장면구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 더 코드 (THE CODE)
앞서 언급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몸을 매개로 비보잉과 발레의 만남을 추구하였다면 더 코드는 비보잉과 전통 한국 무용과의 만남을 추구 하며, 프로시니엄 무대 공간으로 비보잉을 들여와 ‘관람하는 비보잉’을 야기시켰다. 비보이들이 춤을 추다가 싸움이 붙어 도망가게 되는 과정 속에 미술관에 들어가게 되고,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천년 전의 무희(백향주)가 나와 비보이들과 무희가 춤판을 벌인다는 환타지가 더 코드의 시놉시스이다. 이러한 골조에 의해 구성된 작품은 백향주의 화려한 공작춤, 관음보살무, 몽골춤, 무당춤 등이 백향주의 독무 또는 비보잉과의 군무, 비보잉으로 연출된다. 백향주의 뛰어난 무용과 전통무와 비보잉의 접점을 찾기 위한 흔적이 앞서 언급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보다 세련되고 깔끔하게 느껴지나, 극장공간성의 문제로 인해 관객의 몫이 관람에만 그친 점과 극과 전통무에 비보잉의 본질이 와해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3. B-BOY KOREA
위의 두 작품이 무용과 손을 잡고 몸을 통한 소통을 하였다면 B-BOY KOREA는 위 두 작품과는 다르게 청각적인 요소로 난타와 국악과의 만남으로 소통을 시도하였다. B-BOY KOREA는 전설적인 비보이 블랙포인트가 경쟁자 야비의 반칙으로 비보잉을 그만두고 국악으로 전향하여 삼류 비보이팀을 일류 비보이팀으로 만들어 야비와 대적한다는 만화적인 서사로 앞의 두 작품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넌버벌로 유명한 난타의 PMC작품으로 넌버벌만의 내러티브가 살아있다는 것은 장점이나 비보잉, 난타, 국악, 마술 등의 유기적이지 못한 결합은 소재주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함은 B-BOY KOREA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국악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퍼포머를 단기간 훈련시켜 소리를 내는 수준에 그치는 연주실력이나 기본적인 자세나 악기의 상태 불량은 오히려 공연의 질을 저급하게 떨어뜨린다.
위의 3작품을 통하여 현재 공연으로서의 비보이를 진단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체를 이용하여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비언어적임, 비보이만의 대중문화의 코드, 역동성, 즉흥성 등은 분명 공연화를 시키는데 장점이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공연이라는 양식으로의 변화와 다른 인접장르의 차용 안에서 본질적인 비보이의 해체, 비보이면서 배우로 등장하는 비보이들의 불편한 연기와 극적인 움직임, 소재주의에 그치는 인접 예술과의 만남은 비보이 공연의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이다.

비보이는 다른 대중문화와 달리 비보이 주체자들이 정체성을 갖고 세계의 문을 먼저 두드려 인정을 받고 그 후에 자국의 자본주의 논리가 그들을 뒷받침 해준 격이다. 그러나 현재의 비보이는 불과 얼마만에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우와좌왕하는 길 잃은 괴물과 같은 인상을 남긴다. 길거리 문화에서 노블레스한 공연 무대로 거처를 옮겨왔다고 해서 그 본질마저 옮기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체자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더 나은 뿌리를 만들고, 그것을 받쳐주는 이들은 새로 자리잡는 뿌리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곁에서 진실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순환될 때 비보이는 창조적 괴물로서 롱런하며 그들만의 새로운 아우라를 만들어 갈 것이다.


김미소 kmgmiso@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2월 5일자 기사입니다.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