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느낌처럼 관객이 무용을 처음 대하는 느낌이 이런 것은 아닐까? 낯설음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지루함과 새로운 것을 접했다는 지적 충족감이 동시에 교차하지 않을까?
무용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신혼집 첫 집들이 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관객은 계층은 다양하고 그날 관객의 감정지수 일기예고 정보도 없다. 관객의 반응이 좋다고 그 공연이 훌륭하고 관객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그 공연이 별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연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안무자가 관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에 따라 무대의 좌석 공간을 창출한다. 안무자는 ‘관객책임’에 자유로워 질 수가 없다. 집들이 할 때 집안을 정돈하고 음식 내놓을 때 최선을 다하고 손님이 불편할까봐 이것저것 신경 쓰는 마음이 안무자가 관객에게 내놓는 마음이 아닐까?
정재만 선생님의 ‘배비장젼’같은 작품은 기존 설화를 바탕으로 극의 흐름을 전개하여 기존 설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구조가 배경에 깔려있는 상태에서 무용극을 흡수했기 때문에 호응도가 상당히 좋았다. 설화가 관객이 작품과 호흡하는데 있어서 편안하게 작용했다.
관객이 공연장 객석에 앉아서의 무의식 및 의식 흐름은 4가지이다. 첫째는 그 작품 속에 몰입되어 호흡이 일치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의식적으로 그 작품을 보면서 다른 과거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무의식의 자유연상 작용은 무용이 따분해서 오거나 현재 복잡한 일이 있어서 그 일이 생각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몰입 속에서 무의식적 자유연상을 통해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분명한 의식 속에서 작품과의 1인치 거리를 둔 객관적인 상태를 말한다. 넷째가 너무 따분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춤의 동작도 마음에 안 들고 내용 구조도 일방적으로 마음에서 멀어지는 경우다.
처음 관객일수록 흐트러진 셋째, 넷째에 가까울 것이고 무용을 아는 사람을 수록 첫째, 둘째가 가까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낄 것이다. 안다는 것은 무용의 지식도 포함하지만 감성의 지수도 포함한다.
현재 대학교육에 있어서 무용관객론에 관한 조금 더 깊은 성찰과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아는 것을 자신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용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몸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더 힘들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론가들도 관객이 작품을 편하게 접근하도록 충실한 지식 및 감성의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울날 잎도 지고 마음도 진 고독한 어느 하루, 가로등 옆 줄지은 가로수가 바슐라르 상상력처럼 자유롭게 밤하늘을 향해 치뻗은 가로수의 몸짓으로 관객과 작품과의 지상 최대의 만남과 만찬이 안무자의 가능 큰 기쁨이 아닐까? 싸락눈 치는 절간의 마당에 산수유가 첫 봉오리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절간 산기와장 묵은 흙을 호미로 팍팍 후벼내는 시원함처럼.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5년 10월 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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