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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과 이민영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찬과 이민영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이 문제의 결과적인 것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엉킨 실타래가 물 먹어 모두들 무거움증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식당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지지고 볶듯 이찬과 이민영에 대해 편을 갈라 열띤 토론을 하면서 마지막에 ‘폭력은 나쁘다’ 어떤 경우에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되물림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면 그 아들도 아내를 때린다고 한다. ‘폭력’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사람은 정서적으로 ‘폭력’도 사랑의 일부이고 치료될 수도 있고 대체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혼수전쟁’은 서양에서도 18세기 이전까지는 王室(왕실)의 결혼은 손익 계산이 철저한 ‘정략결혼’이었고, 貴族(귀족)들도 혼인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재산을 늘렸다. 또한 농민들 역시 결혼을 결정짓는데 경제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몇 년 전 김수현 작가의 ‘혼수’라는 특집극을 방영했는데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일치해 많은 시청자들로 공감을 받은 적이 있다. ‘혼수’는 두 남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충족해가는 시작점이다. 이는 두 남녀의 주관적이고 ‘형평’이라는 균형과 조절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릇된 물질적 왜곡과 대리욕망은 ‘혼수’가 아닌 것이다. 왜 우리는 혼수에 ‘전쟁’이라는 극단적 용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을까? 이는 자본주의 철저한 개입과 고립, 일방향적 주입이다. ‘된장모녀’라는 개념도 같은 울타리 속에서 나온 기형물이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인권이 무너지는 ‘사생활 노출’이 종이의 양면처럼 뒤따라온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배우의 성적 포르노의 경우도 인터넷이 없다면 한 개인의 사생활인데 그 여배우한테는 감추고 싶은 인권이 너무나 적나하게 폭로되어 관심에서 흥미로 둔갑해 개인이 원하지 않는 삐에로가 된 적이 있다. 이찬과 이민영 문제도 우리가 너무 깊게 개인의 사생활을 알려고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비록 언론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지 모른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풀어야 하고 왜 왔는가? 스포츠 신문마다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광고 수익과 연봉의 수치를 선동적으로 보도하고 TV의 공영성은 시청율과 광고 앞에 항복한지 오래다. 영화는 폭력과 이탈에 너무 관대하다 못해 조장하고 있다고 드라마마다 불륜과 이혼이 없는 드라마는 없고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네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 속에 자아 정체성을 상실한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황금만능과 폭력은 이미 암세포처럼 온몸으로 전이되어 있고 조그만한 것에도 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섬을 등짐을 지고 온몸에는 열자국을 지니고 살고 있다.
미국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스포츠를 도입하여 사회적 협동과 건전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몸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공유
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직시해야 할 과제이다. 가상의 미디어 공간은 복사와 반영이지 실재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스포츠와 문화체험을 통해 건전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가야한다. 지금의 우리는 가상공간에게 실재공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있다. 스포츠와 문화체험을 시스템화 시키고 네트워크화하여 사회의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이 중요하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시민단체가 상호 연대를 통해서 반드시 풀어내야할 난제일 것이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1월 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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