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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자와 관객과의 소통은 감정이입이다
안무자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안무자와의 공감이라는 감정의 연결 끈을 가진다는 것은 관객이 무용을 접할 때 첫걸음이자 전부인지 모른다. ‘감정이입’은 무용 그 자체 또는 무용의 대상에서 오겠지만 무용을 표현하는 자나 무용을 받아들이는 자가 동시에 끌어안아할 개념이다.
작품과 작품을 감싸고 있는 대상을 대할 때 그것과 자아가 동일시되는 것을 감정이입 [感情移入]이라 한다. 무대에서 무용수가 울 때 관객층에서 함께 우는 경우를 ‘감정이입’이라한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가 1858년에 처음 예술과 관련시켜서 <아인퓔룽Einfühlung (감정을 넣어 줌)>이란 말을 썼다. 후에 테오도르 립스가 예술이론을 정립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수사학에서의 의인법, 비유 등은 모두 감정이입의 결과라는 것이다.
감정 [感情]의 원래 뜻은 생활체(生活體)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생기는 주관적 동요이다. 심리학에서 감각과 감정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J.워드와 W.분트는 감각은 객관적이며, 감정은 주관적인 것이라 구별하였다. 감정과 의지가 하나가 된 정의(情意)를 독일어에서는 ‘Gemüt(心情)’라 한다.
감정이입 [感情移入]은 타인(他人)이나 자연물(自然物) 또는 예술 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작용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T.립스의 용어 정의를 들면 일몰(日沒)을 장엄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몰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투입(投入)하는 것이거나 일몰의 장엄함이 자신 속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립스는 이를 일종의 유추작용(類推作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M.셸러는 이를 유추와 같은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공감(共感:sympathy)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의 얼굴빛에서 그 사람의 따뜻함이나 심술궂음을 직접 느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H.베르너는 그와 같은 직접적 지각을 상모적지각(相貌的知覺:physiognomische Wahrnehmung)이라고 하였다. 이는 감정과 지각이 분화(分化)되지 않은 현상이다. J.P.슈피겔과 P.마호토카는 학생에게 고갱의 그림 《시장》을 보여 주고, 그림 속에 있는 6명의 여인의 자태에서 무엇을 느끼는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결국 동일한 자태를 보고도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즉, 보는 사람의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대상에 자아가 가서 감정이입되는 경우와 자아에 대상이 다가오는 감정의 이입이 있다. ‘대상자아’의 경우는 ‘자아’에 생리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의 분비물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다. 대상과 자아 사이 아주 작은 매개체에도 자아는 감정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봄날 봄바람 난 한 여자의 감정 속에는 한 남자의 작은 씨앗하나가 떨어져도 사랑이 이입될 확률은 아주 높은 것이다.
‘자아대상’ 은 그 반대적 개념인데 남자의 경우 아름다운 여자를 봤을 때, 여자의 경우는 보석을 봤을 때 보편적으로 그 대상에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한다. 대상 그 자체가 감정을 흡수 할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자아와 대상의 거리가 이입되는 것도 자아와 대상과의 유사성인지 차이성인지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슬픔의 감정 소유자는 슬픔과 반대되는 것에 감정 이입을 원할 수도 혹은 슬픔을 겪고 있는 것에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유사성과 차이성은 상황구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감정이입’은 안무자와 관객이 늘 함께 공유해야할 개념이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편집국 sugun11@korea.com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12월 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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