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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예술과 예술자리, 관점을 좁힐 수 없다면 ‘공감’은 좁힐 수 있다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 생각은 좁힐 수 없어도 ‘공감’은 좁힐 수 있다. 촛불시위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환경이 변했다고 예술적 위치까지 변화를 주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환경이 변화기 전 정치적 코드로 자리를 잡은 것에 ‘제자리 찾기’ 차원의 또 다른 자리 메김은 인정되어 지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밑돌이 잘못되었다고 밑돌을 바꾸려다 기둥 전체를 흔들 수는 없다.

코드가 과연 잘못된 것인가? ‘철수야 놀자’에서 철수가 잘못되거나 놀기 싫으면 ‘영희야 놀자’ 하고 바꾸어 놀 수 있지 않는가. 문제는 ‘철수’에서 ‘영희’로 코드를 바꿀 때 함께 놀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혹은 공감이 중요하다. 코드가 억압 받거나 외압적 요소가 문제지 코드 그 자체를 전체부정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예술의 전당 이사장 자리는 단순히 예술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예술적 요소의 경영을 하는 자리이다. 예술적 성과와 경영이 함께 요구되어지는 자리이다. 그 자리의 평가는 주관과 객관이 뒤엉켜 있다. 누가 되도 말이 많은 자리이다. 그 평가의 기준점도 생각도 같을 수가 없다. 여기서 객관적 평가의 기준에 근접된 눈을 가진 사람들의 공감과 커뮤니케이션이다. 예술의 전당 이사장 자리를 결정하는 문제점으로 제기된 부분도 이 부분이다.

지금 예술의 전당 이사장의 자리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모든 단체장 선임에 비슷한 모순과 갈등을 겪고 있다. ‘예술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실천하고 진화하려면 심사의 체계성과 투명성,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우선 점검하고 제도를 마련해야한다. 또한 예술경영과 예술을 분리하여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되는 부분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수근 newstage@hanmail.net
사진출처_© en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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