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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의 모든 문제는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연극 ‘고독청소부’이진경 연출가, 김종칠·강애심 배우와 나눈 ‘따뜻한 말 한마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고독의 끝은 어디일까. 고독하게 사는 것도 슬픈데 고독하게 죽으라면 정말 못 견딜 것 같다. 최근 생활고를 비관한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죽음을 택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늘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숨 쉴 공기 한 줌도 모자랄 것 같은 작은 방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감긴 눈을 어루만지고 닫힌 입을 벌리고 굳은 가슴을 안아 보자.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연극 ‘고독청소부’에서 피어난다.

 

대학로의 악동, 극공작소 마방진이 연극 ‘고독청소부’로 2014년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은 3월 21일과 22일 경기도 구리아트홀에서 첫선을 보이고, 3월 26일부터 4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 오른다. 이번 작품은 극단 식구들과 함께 외부의 중견 배우들이 힘을 합친다. 3월 12일, 작품을 쓰고 연출한 마방진의 이진경 연출가와 김종칠(‘대성’ 役), 강애심(‘미자’ 役) 배우를 만났다.

 

이들은 공연을 불과 보름도 남겨놓지 않았지만 편안하고 여유로운, 그러나 지루할 틈 없는 능변을 펼쳐놓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폐쇄적인 성품이 있다고 털어놓는 이진경 연출가도, 연신 ‘행복하다’고 말을 맺는 김종칠 배우도, 매 순간 소녀 같은 눈빛을 반짝이던 강애심 배우도 벌써부터 다음 작품으로 ‘고독청소부 2’를 생각하게 할 만큼 뜨거웠다.

 

- 연극 ‘고독청소부’는 어떤 작품인가요?

 

이진경(이하 이): 뭔가 있을 것처럼 시작했는데 연습할수록 고독의 정체를 모르겠더라고요. 맨 처음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할 때 ‘고독의 위로’(앤서니 스토, 2011)라는 책에서 ‘인간의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는 글귀를 만났어요. 이 한 줄이 꽂혀 ‘그럼 고독할 줄 아는 건 뭔가?’라는 고민으로 시작했어요. 누구나 겪고 있는 고독에 대처하는 인물 군상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고독청소부’라는 없는 직업을 만들어서 고독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거죠. 여기에 고독사 위험군인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누가 더 고독할 것인가’에 대해 각자 갖고 있는 고독의 색깔을 그리려고 해요.

 

- 최근 고독사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긴 했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이 문제를 작품으로 끌어오게 된 건가요?

 

이: 어느 날 TV에서 고독사 현장 인터뷰를 봤어요. 거기에 나온 사람을 소개하는 자막에 ‘고독사 전문 청소업체 주식회사 ○○’라고 딱 쓰여있는 거예요.

 

강애심(이하 강): 그런 직업이 진짜 있어?

 

이: 네. 이 사람들은 고독사한 분들의 유품 정리하는 일을 해요. 그걸 보면서 고독하게 죽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고독하구나 싶더라고요. 돌아가신 분 중에는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집주인도 혹 집값이 떨어질까 쉬쉬하고 그래요. 주위 사람들도 연락이 안 되고, 가족들조차도 그 사람의 죽음을 숨기고 싶어 나타나질 않으니 고독사 청소업체가 있는 거죠. 고독은…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대처하는 자세를 길러야겠죠. 작품에서 김종칠, 강애심 선생님이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으로 나와요. 고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꽃이 피고 사랑이 피거든요. 많은 분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고독에 직면해봤으면 좋겠어요.

 

강: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땐 ‘흥미롭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자꾸 대본을 읽고 연습하면서 각 인물이 정말 심하게 고독하다는 걸 느꼈죠. 그게 또 우리 삶의 모습이고요. 작품에 ‘정숙’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된장녀’예요. 남편이 가짜 명품 가방을 사다 주는데도 굉장히 기뻐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참 기쁨, 참 행복이 아니잖아요. 씁쓸한 표정의 웃음도 희열도 고독도 아닌 그녀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고칠 수 없는 외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이 재밌기도 하면서 가슴을 여리게 하는 대목이죠.

 

김종칠(이하 김): 정도의 차이지,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게 고독이에요. 인생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잖아요. 아무리 행복해도 늘 고독의 발자취가 있죠. 제가 맡은 ‘대성’이라는 인물도 그래요. 부인과 아옹다옹 다투거나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해요. 당시에는 그게 행복이고 즐거움이거든요. 나중에 자식이 떠나고 부인을 잃고 나서 고독을 느끼죠. 하지만 그 고독을 경험하면서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나요. 사람은 고독해 봐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느끼셨으면 해요.

 

- 각자에게 고독이 주는 의미가 궁금한데요. ‘나’에게 고독이란?

 

김: 고독은 곧 ‘사랑’이다. ‘사랑의 시작점’이다.

 

강: 나 이런 거 잘 못하는데.(웃음) 고독은 ‘나를 찾아가는 길목’이다. 청소년기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사람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홀로 서서 고독을 느낄 여유가 부족한 것 같아요. (이)진경 연출도 얘기했지만 모든 문제는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와요. 고독 자체를 오롯이 느끼고 철저히 그 안에 들어가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요즘은 고독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작품에서 ‘정숙’이라는 인물은 SNS로 계속 자기 감정을 표출해요. 사람들은 그게 본심인지도 모른 채 댓글을 달고, 댓글조차 진짜인지 아닌지 몰라요. 댓글 수만큼 마음이 풍만하면서도 외롭다고 생각해요. 고독하기 너무 힘든 상황이죠. 어딜 가나 사람이 있고, 카메라가 있고, 미디어가 있어요. 두 분 선생님 말씀에 동감해요. ‘대성’과 ‘미자’는 고독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살다가 고독에 직면해요. 이때 고독을 향해 ‘왔구나!’ 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큰딸이 다섯 살이라 유치원에 다녀요. 어린이집이나 기관에 보낸 적이 없어서 지금도 걱정이 돼요. 얼마 전에는 아이가 그래요. “엄마, 나 오늘 화장실에 갔는데 오줌을 누고 바지를 다 입지 않고 나왔어. 그런데 친구들이 서 있고 남자애들도 다 보고 있어서 내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어.” 딸아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앞으로는 화장실이 좁고 힘들더라도 거기서 갖추고 나와야 한다고 가르쳐야 되는지, 자기 스스로 이런 경험을 반복하며 깨우쳐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어요. 한 번도 떨어뜨려 놓은 적이 없던 딸이, 그 작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며 낑낑거리고 옷을 입는 그 순간…. 아이에겐 그 시간이 고독에 직면하는 순간이겠구나 싶었어요. 이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사랑밖에 없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예요. 이번 작품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 말을 더 이해하게 됐어요.

 

 

- 김종칠 배우는 경기도립극단 소속이고, 강애심 배우는 서울시극단 등을 거쳐 극단 ‘고래’에 계시잖아요. 외부에서 마방진과 작업하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 마방진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진경 연출에게 고마워요. 경기도립극단, 경기도문화의전당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강: 수상소감 같잖아.(웃음)

 

김: 그런가?(웃음) 소속 극단에서 배려를 안 해주면 외부 작업을 거의 못해요. 경기도립극단은 외부에서 활동할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줘요. 이번에 여기 와서 깜짝 놀란 게, 구리아트홀에 마방진이 상주 단체로 있는지 몰랐어요. 진경 연출이나 마방진 대표님 말씀으로는 구리아트홀이 지원을 잘해주고 있다고 해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마방진은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하는 독특한 연극세계를 가진 집단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약간 달라요. 인간적인 냄새, 사랑 같은 것들이 조금 더 깊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마방진과, 믿을 수 있는 강애심 배우와 함께여서 참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강: 여러 극단을 거치며 느낀 건 극단마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거예요. 마방진은 재기발랄하고, 무대 위에서도 거리낌 없이 장난질을 쳐요. 대본도 안 보고 무조건 오케이 한다는 생각으로 합류했어요. 저는 학교 동아리에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연기 전공자와 동아리의 색깔은 조금 달라요. 연기 전공자들은 연기에 대해 전문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반면 동아리는 순수하게 접근하려는 측면이 있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할일이 없나 찾아요. 마방진도 그래요. 자기 할일 하면서도 머리 맞대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연출이고 배우고 스태프고 할 것 없이 힘을 합쳐요.

 

- 이진경 연출가 역시 상당한 비중을 외부의 중견급 배우와 작업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이: 한마디로 영광이죠. 저는 두 분 선생님께서 마방진에 들어오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웃음). 마방진에서 젊은 배우들하고만 작업하다가 이번 작품을 놓고 고민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노인의 역할을 흉내를 낸다고 될 작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과정은 어렵게, 캐스팅은 뜬금없이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됐어요. 두 분이 서로 같은 작품을 하는지 모르셨어요. 첫 연습 때 반가워서 손을 맞잡으시는 모습을 보고 ‘좋은 작품이 되겠다’ 싶었죠.

 

실제로 두 분 호흡이 굉장히 좋으세요. 김종칠 선생님은 키가 크시고 강애심 선생님은 아담하셔서 비주얼도 참 예쁘고, 특별히 디렉션을 드릴 필요가 없어요. 두 분이 작품에서 탱고로 대미를 장식하시거든요. 처음엔 잘 따라오실 수 있을지 걱정이 컸죠. 그런데 두 분이 안무 연습을 하면 눈시울이 붉어져요. 눈을 맞추고 웃고…. 동작은 조금 서툴지만 정말 캐스팅 잘했다고 생각해요. 젊은 배우들이 가진, 통통 튀고 아직은 설익은 에너지를 감싸 안고 중심을 잡아주세요. 연출이라고 늘 연습에 오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업은 달라요. 항상 들여다보고 싶고, 두 분 모습이 오늘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요. 제가 올해 첫 번째로 잘한 일이 두 분 선생님 모신 게 아닌가 해요.

 

- 이번 작업에서 각자의 목표나 의미가 있다면?

 

강: 처음에는 ‘탱고 하나는 완벽하게 배워서 극단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런데 몇 달 배워서 될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춤을 좋아하긴 하지만 혼자서 추는 게 좋고, 여러 장르를 배우고 싶었어요. 탱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해요.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고, 상대방을 오롯이 믿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죠. 그래서 방향을 틀었어요. ‘관계’에 집중하려고요. 탱고는 리드하는 사람이 박자를 틀리더라도 거기에 맞춰 추는 게 기본 원칙이에요. 아직은 제가 앞서나갈 때가 많지만 김종칠 선생님이 많이 배려해주세요. 저 역시도 선생님이 잘 못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나이 많은 선배님들은 춤을 힘들어하실 때가 많은데 김종칠 선생님은 박자 감각도 좋으시고 금방 따라오시더라고요. 후배들에게 탱고 전수는 못 하지만 이 사람을 온전히 믿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김: 요즘 세상은 서로 못 믿어서 힘들잖아요. 인간 대 인간, 가족, 부부가 서로 믿는다면 얼마나 밝은 사회가 될까요? 탱고에 그런 시사점이 있어요. 서로 믿고 의지해야 돼요. 작품의 메시지와도 잘 맞아떨어지죠. 관객들도 이러한 점을 느꼈으면 해요. 그러려면 우리가 잘 춰야겠지? (웃음)

 

이: 관객들이 오셔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탱고가 작품의 무기일 수도 있지만 그 칼끝이 우리를 향할 수도 있거든요. 탱고 연습을 많이 하지도 못해서 초조하기도 했어요. 저희 엠티 때 드린 말씀인데, 뭐든 완벽한 게 없잖아요. ‘고독청소부’라는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펼쳤나, 탱고가 산만함을 거드는 건 아닐까, 선생님들과 마방진 배우들의 앙상블이 과연 어울릴까 하는 고민이 아직 있어요. 하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좋은 점만 보는 거죠. 물론 선생님들이 탱고 박자를 엇나갈 수 있지만 순간의 눈빛과 교감이 좋으면 된 거예요. 모든 연출라인을 이렇게 잡았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으면 눈물 나게 행복할 것 같습니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극공작소 마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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