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눈물이, 유쾌함 속에 진지함이 묻어나는 연출로 사랑받아온 연출가 윤정환이 연극 ‘당신의 눈’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정환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품은 이야기나 인물보다 작품 전체의 ‘구조’에 중심을 둔다. 이 때문에 연극 ‘당신의 눈’은 ‘난해하거나 어려울 것’이라는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윤정환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그냥 즐기면 된다”는 말로 연극 ‘당신의 눈’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작품은 ‘구조주의’라는 복잡한 이름을 걸치고 있지만 그 속은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시각’이 담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구조’로 말하는 연극 ‘당신의 눈’의 연출가 윤정환이 말하는 작품에 대해 들었다.

- 연극 ‘당신의 눈’은 작품의 구조를 중시하는 ‘구조주의 연극’이라고 들었습니다.

연극 ‘당신의 눈’을 ‘구조주의 연극’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연극이나 드라마는 인물을 통해 스토리가 전달됩니다. 연극 ‘당신의 눈’은 인물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작품 전체 구조의 중요성이 더해졌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에 장면과 장면의 유사함과 상이함이 있고, 같은 장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조금 전에 본 상황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표현하면 같은 인물과 같은 대사도 다른 상황처럼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객은 또 다른 진실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구조주의’라는 형식을 왜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해지네요.

연극 ‘당신의 눈’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참으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시선을 서로가 인정하면 현재 우리가 놓치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알 수 있고, 색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작품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소재를 택하면서 가장 적합한 극적 형식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 형식이 적격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형식을 먼저 정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작가든 연출이든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작품의 내용은 이런 형식으로 하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출발하게 된 겁니다.

- ‘어떤 주의’라는 이미지가 일반 관객에게는 어렵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극은 연극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연극이라 생각하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다 조금 색다른 연극이면 ‘아, 오늘 조금 다른 연극을 봤네’ 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저는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직접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라는 시간에 극장이라는 동일 공간에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등장인물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죠. 그게 ‘라이브’라고 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내용에는 대본을 쓰는 작가, 연기자, 연출자 그리고 이들을 판단하고 감상하는 관객으로 면접관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가 없으면 온전한 존재로 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관계를 형식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이번 형식이 중요했습니다.
 

연극 ‘당신의 눈’ 속에는 작가가 쓴 ‘연극’이 있고, 면접관이 보는 ‘연극’이 있고, 작가가 쓴 극을 공연하는 극단의 단원들이 만들어가는 ‘연극’이 있습니다. 모두는 같은 극이면서도 서로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읽히고 다르게 보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연극 공연을 봐도 마찬가지예요. 작가의 대본을 연출자가 연출하며 배우들과 공연을 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그 공연을 보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가져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나 연출의 의도, 배우의 연기, 관객의 감상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각자가 같은 소리를 내려고 모두 노력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동일한 모습일 순 없습니다. 연극 작업이나 예술 작업들은 ‘바뀔 수 없는 규범’으로 가둬서는 안 됩니다. 이를 틀 속에 가두거나 같은 잣대로 바라본다면 더 이상 다양한 가치를 생산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보시면서 ‘지금 자신의 생각, 지금 당신의 눈’에 대해서 조금 다른 경험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 이 작품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세상에는 많은 ‘약속’과 ‘기호’와 ‘규범’이 있습니다. ‘법’이란 것이 가장 큰 구속력을 갖고 있을 테죠. 우리가 규정한 규범들과 약속 이전에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 지금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들을 달리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규범이나 습관, 관습에 의해 굳어진 ‘우리의 눈’을 한 번쯤 씻어 주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작품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셨던 것은 어떤 점인지 궁금합니다.

연극을 하는 ‘우리들의 즐거움’입니다. 우리들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한번 해 보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한번 해 보고 문제를 도출하고 다시 해결해 갑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연기하지 않는 거죠. 가슴이 더 뜨거운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우리들의 가슴을 식히지 않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작품을 하면서 모르고 있던 것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 가면서 우린 ‘성장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연기도 작품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눈’이 조금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 이야기 중심이 아니면 작품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난감했던 점이 있는지?

우리 작품에는 장애인 극단이 공연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출연 배우 중에 실제로 장애인 배우도 있습니다. 이 장면에선 비장애인이 장애인 극단의 단원을 연기하기도 합니다. 장애인을 폄하하거나 우스꽝스럽게 그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혹시라도 우리의 모습이 보시는 분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게 가장 큰 염려 중 하나입니다.     

- 이번 공연에는 일반인들도 배우로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대가 익숙지 않은 분들이라 함께 연습하거나 극을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인 분들이지만 프로 배우들만큼의 열정으로 참여해주셨습니다.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배우들과 즐겁게 연습을 했습니다. 몇 분의 일반 관객 배우와 함께한 어느 날, 술자리에서 자신들에게 이런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습하는 날이 기다려지는 설렘, 즐겁게 할 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참 오랜만에 가져 본다면서요. 우리의 연극 작업이 정말 그분들의 일상에 활력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신가요?

저의 41번째 생일이 있었습니다. 같이 연습하시는 한 선배님께서 멀리 포항까지 가셔서 회를 보내주셨어요. 함께하는 팀원들도 저의 아내와 얘기해서 연습실서 회식하기로 해놓은 상태였는데, 제겐 아무 말이 없었죠. 사실 생일 파티 같은 건 없이 살았습니다. 이날 태어나서 가장 성대한 생일 파티를 했습니다. 연극한다고 아직도 매일 걱정하시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신 아들 엄청난 생일상 받으며 너무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이런 아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요. 어머니도 행복해하셨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곳을 보며 같은 꿈을 향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연극 ‘당신의 눈’을 보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연극 ‘당신의 눈’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충분히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연극입니다. 이 공연을 보시고 ‘당신의 눈’이 조금 다른 세상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역시 ‘우리들의 연극’이 관객들께 조금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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