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발레단은 2000년 국립극장을 떠나 재단법인화한 뒤 지금까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마츠 에크의 「카르멘」, 보리스 에이프만의 「뮤자게트 & 춘향전」,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타르타쿠스」「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로미오와 줄리엣」 등 세계적 거장들을 국내에 초청해서 최고 걸작들을 무대 위에 올렸습니다. 그로 인해 무용수들의 기량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눈도 한껏 드높아졌죠.
하지만 그래도 갈증은 남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 발레단이니 당연히 우리나라 최고의 안무가들의 창작발레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 말입니다. 그건 국립발레단이 해야 할 의무이자 예술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번 창작발레 프로젝트는 그 갈증을 풀어줄 첫 번째 신호탄입니다.
발레 대중화를 위해 발레와 연극이 만나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도 발레와 연극의 만남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동안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춤의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거나 「발레 뮤지컬 심청」처럼 발레와 뮤지컬의 만남이 있어오긴 했지만 정통 연극과 발레의 만남은 이번이 첫 시도입니다.
발레가 언어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추상화처럼 그 의미와 스토리를 명쾌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극이 첫 부분과 막 사이마다 공연됐습니다.
예술감독은 최태지가 맡았고 총연출은 송현옥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안무는 1990년대 국립극장의 발레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간판 남성 무용수 제임스 전(1993~1999년 활동), 박상철(1990~1995년 활동), 백영태(1985~1990년 활동)가 맡았습니다.
자, 그럼 세 남자 안무가가 그려낸 오델로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오델로 증후군인 남자의 강박관념에 대해 집중조명! - 안무가 제임스 전의 「오델로」
이번 공연에서 비주얼이 가장 뛰어난 공연이었습니다. 제임스 전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델로」 중 3막 2장부터 5막까지의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오델로 증후군Othello Syndrom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델로 증후군이란 특별한 이유나 증거 없이 배우자나 연인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부정망상Delusion of Infidelity라고도 합니다.
무대 위에는 빨간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욕망과 질투를 상징하죠. 그 의자는 줄이 달려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모두 욕망에 지배당하죠. 질투에 눈이 멀면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질투의 노예가 되죠. 주인공이 남자이다 보니 남자의 질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델로는 이아고(장운규)의 계략에 넘어가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게 됩니다. 일단 의심을 하고 나자 오델로는 아내 데스데모나가 카시오(하준용)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은 마침내 현실적 힘을 얻어내고 말죠.
이 공연에서는 남자가 주체고 여자는 오브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델로(이수희)의 아내 데스데모나(노보연)는 시종일관 성적인 대상으로만 그려집니다. 카시오와 진한 애무를 나누고 있거나 침대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거나. 여자의 진짜 모습은 만나볼 수가 없습니다. 죄다 남자의 상상 속 모습이니까요. 상상을 그려내다 보니 약간 판타스틱하기도 하고요.
오델로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격렬한 신체 동작을 동반한 안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무엇이라도 부숴버릴 정도로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죠. 가브리엘 포레의 잔잔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다소 과격하게 한 남자의 감정 변화들을 집중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오델로 역을 맡은 발레리노 이수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85센티미터나 되는 장신으로 몸매가 완전 예술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고뇌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너무 우아하고 멋졌죠.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갖추고 있었고요. 찡그리는 모습도 근사해보였다니까요. 한마디로 발레리노 이수희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원작에서 오델로는 피부색이 검은 무어인으로 평생을 전쟁터에서만 보낸 거친 남자입니다. 당시 상류 계층에서 볼 때 그는 주류가 아닌 마이너이죠. 비천한 신분이었고요. 그러니 아마 발레리노 이수희처럼 고귀하고 품위있고 잘생긴 모습은 아니었을 거예요. 혹시 미스 캐스팅? 아마 그보다는 안무를 맡은 제임스 전이 의도적으로 오델로의 신분상의 인종상의 결점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파멸해가는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캐스팅이 화려했고 비주얼적인 면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습니다.
참, 그동안 발레 공연을 보면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수희, 장운규, 노보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놀라웠습니다.
2. 무용의 언어 신체와 연극의 언어 대사의 결합! - 안무가 박상철의 「오델로」
이번 공연의 취지를 가장 잘 살려서 표현해낸 안무였습니다. 무용의 언어인 신체와 연극의 언어인 대사를 장면 안에서 함께 결합시켜 보여주었습니다. 오델로(이충훈)와 데스데모나(전효정) 역을 맡은 무용수가 춤을 추는 동안 오델로(유태웅)와 데스데모나(서은경) 역을 맡은 연극배우가 연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스토리텔링이 쉬웠습니다. 추상화에 해설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더불어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이인무가 아름다웠고 오델로와 이아고의 상반된 동작들이 대비를 이루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아고(이원철)의 독무에서 관객들의 박수가 나왔습니다.
안무 구성은 세 사람의 인물소개-이아고의 질투와 고뇌(한 인간의 이기심 내포)-남녀 사랑을 표현-비극과 질투 표현-여자의 고뇌-한 인간의 고뇌-한 인간의 질투에 의해서 비극적 결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안무가 박상철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신체와 대사를 통해 전달된다. 발레는 신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고 연극은 대사를 이용한 최고로 빛나는 언어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두 언어를 사용해 인간의 대립되는 두 본질을 그려보았다. 이 작품에서 오델로는 절대성의 상징이며 이아고는 상대성을 대표한다.
오델로의 강인함은 절도 있는 그의 춤동작으로 나타나며 비굴하고 이기적이면서 자기중심이 없어 상대에 따라 매번 생각이 흔들리는 이아고는 시각적으로 그 절대성과 대립된다. 무대 위 네 명의 주인공(신체로 말하는 오델로와 데스데모나, 그리고 대사로 말하는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은 각각 서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메우며 조화를 이룬다.”

3.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안무가 백영태의 「오델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창의적인 해석이 돋보였던 안무였습니다. 다만, 의상 때문에 자꾸만 영화 「300」의 이미지가 떠올랐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웅장하고 빠른 음악도 좋았습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만 보냈던 용맹한 장군 오델로의 군인적인 면모와 남성성을 극대화해서 표현해냈죠. 검은 피부를 가진 무어인이었다는 것을 표현해내기 위해 레게머리 스타일을 했고요. 레게머리를 하고 스파르타쿠스 옷을 입은 무어인 장군이라. 무엇보다도 이번 안무에서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이후의 정신분열 상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명의 오델로와 10명의 분열된 오델로가 함께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는 아내를 죽인 데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승 축하 잔치에서 데스데모나가 창녀처럼 병사들을 유혹하고 놀아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데스데모나를 가장 창녀처럼 묘사해냈습니다. 화려한 군무와 섹시한 춤이 스펙터클하게 전개됩니다. 화끈하게 볼거리를 제공했죠.
하지만 곧 순결한 데스데모나가 나타나고. 오델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맙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쫓겨나고 결국 광야에서 괴로워하다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철망에 매달려 죽으면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근데 그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순교하는 느낌입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참회가 마치 순교자처럼 보인다는 것!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안무를 맡은 백영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개의 눈도 올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사랑은 할수록 외로워진다. 더 깊어지기 위해서는 더 외로워져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이 아침 떠올린다.”
4. 셰익스피어의 시적인 대사의 묘미! - 연출가 송현옥의 「오델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큰 특징은 세 명의 안무가가 그려낸 「오델로」 사이에 연극 「오델로」가 공연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연극이 발레와 잘 달라붙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안무가들이 발레를 시간 순서나 이야기 순서에 따라 진행하지 않다 보니 연결고리를 잡아내서 하나로 이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냥 각각의 완성된 작품인 「오델로」로 봐야 했으니까요. 연극이 그 각각 다른 오델로를 하나로 연결해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발레와는 또 따로 「오델로」 이야기를 다이제스트로 요약해서 이야기해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델로 역의 유태웅과 데스데모나 역의 서은경과 이아고 역의 이현우는 발레에서 표현된 인물들과는 또 완전 다른 인물들이었으니까요. 특히 연극 속 이아고는 원작과 달리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나옵니다. 그 점은 완전 새로운 인물 형상이었는데 여러 논란이 있을 만한 해석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연극은 “자, 오델로는 이런 이야기예요!” 하듯 전개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연극은 연극의 묘미를 넣어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셰익스피어만의 주옥같은 삶을 통찰해내는 시적인 대사들을 들려주어 즐겁게 해주었답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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