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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따라하세요’를 흥얼거리며 - MODAFE 2008

 

 번득이는 생명이 가득한 장場

2008.5.29. 그곳에는 생生이 가득했다. 관객의 호흡도 무용수들의 열기도 아닌 한 작품의 생명이 이제 막 대기에 진입한 유성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또한 침을 꼴깍 삼켜대는 심장들은 궤도에 들어선 생명들을 반색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치러진 MODAFE(국제현대무용제)의 ‘Spark Place’는 긴장이라는 구도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신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성격을 파악해본다면 아마도 ‘침을 꼴깍 삼켜대는 심장’이란 표현이 분명 맞을 것이다. 차세대 무용가 발굴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Spark Place’는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정된 안무가들에게 무대를 빌려준다. 그리고 우수작에 신인상을 수여하여 다음 해까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단다. 따라서 신인들에게는 모처럼의 신나는 기회가 됐으리라 예상해 볼 수 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신인안무가 이동원의 ‘따라하세요(Follow Me)’가 될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 ‘톡톡 튀는’, ‘열정’과 같은, 또는 이와 비슷한 단어들은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모다페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대부분은 창의적이며, 열정적이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유독 쓰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바로 ‘고결한 생명’이다. 창작자들에 의해 태어난 ‘고결한 생명’들에게 축배를….

- 따라하지 않아도 따라하게 되는 ‘따라하세요(Follow Me)’

무대의 구조는 액자 모양의 사각 프레임이다. 조명으로 이루어진 이 틀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이다. 무대 앞에는 흰 천이 있고 그 위에는 한 번씩 초점이 맞춰지는 카메라처럼, 또는 주파수를 돌리다 언뜻 선명하게 들려오는 라디오처럼 ‘준비(Ready)’가 나타난다.

그리고 ‘준비’는 ‘따라하세요’로, ‘따라하세요’는 ‘빠르게 가세요’로, ‘빠르게 가세요’는 ‘쉬어가세요’로, ‘쉬어가세요’는 ‘평범히 가세요’로 분화되는데 그에 따라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행위는 관객들에게 사뭇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웃음은 우스꽝스런 자신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닐 듯하다.

어쨌든 그들이 반복하는 프레이즈(Phrase. 짧지만 시작, 중간, 결론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하나의 완벽한 무용단위)는 우리의 표면적인 일상을 드러낸다. 체계 잡히고 정형화 된 삶은 누군가에겐 편안함을, 누군가에겐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벗어나려는 몸부림마저 일반화 되고 우리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난감한 현실인가. 그러나 시야를 더 넓혀 보자. 시작 부분에서 그어진 경계 말이다. 그들은 한 번도 그 경계를 넘어선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회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하고 싶지 않아도 따라하게 되는, 그 정해진 순리대로 순응해야만 하는 나약한 인간의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 반복을 통한 시너지 효과, 그러나 깊이의 연구는 더 필요할 것

이동원의 ‘따라하세요’는 반복을 통해 큰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반복은 작품에 진부함을 없애고 적당한 무게와 적당한 의미를 전달하게 했다. 그리고 젊은이 특유의 참신한 몸짓은 관객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춤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세 명의 무용수가 그린 삼각구도는 작품의 안정감을 주었으며, 연속동작(파도타기)의 효과를 실속 있게 어필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간소하다는 느낌을 준다. 군중심리를 나타내기에는 무대의 빈 공간이 너무 많았으며, 흩어졌다 모이는 부분이 미약하다. 곧 심오한 주제에 비해 깊이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형성된 이미지 구축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결국 이 작품을 한 단어로 말해본다면 바로 ‘각인’이라 할 수 있다. 반복과 결합된 주변요소(영상, 음성 등)로 인해 작품에 대한 잔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 스스로를 얽매는 정신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느끼다

「쿠마에서(Cumis)에서 나는 무녀(Sybyllam)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죽고 싶어” - 엘리엇 ‘황무지’ 中」

무녀는 죽고 싶어서 항아리 속에 들어간 것일까, 항아리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때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규제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를 판단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따라하세요’를 보며 갈증이 났다. 그것은 엄격한 질서 속에 놓인 우리의 일상 때문은 아니다. 그건 이미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사실이 아닌가? 갈증은 근본적으로 답이 없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규율 없이 살 수 없으면서도 항상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그 양면성으로 인해 삶이 황폐해짐을 느끼곤 한다. 이 메마른 감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의 결론을 유추해 보자면,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인간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지 않을 것이라 의지하며….


김유리 전문기자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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