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7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는 특별한 개막작품이 선보였다. 외국작품이 주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다른 때와는 달리 2008년에는 MODAFE와 공동으로 제작한 한국 작품이 개막작으로 공연되었다. 그 중에서 파사 무용단의 ‘노랑 달팽이’는 사람이 흔히 가지는 편견에 대해서 달팽이라는 생물의 특징으로 빗대어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 놓은 작품이다. 뉴스테이지에서는 ‘토킹리뷰’라는 코너를 통해서 안무가와 함께 작품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파사 무용단의 안무가 황미숙과 함께 MODAFE의 개막작품 ‘노랑 달팽이’에 관해서, 그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백수진(이하 백) : 이번에 개막작품으로 참여한 것이 특별한 느낌일 것 같다. 특히 모다페가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황미숙(이하 황) : 맞다. 페스티벌이 여러 개가 있지만 현대무용만을 가지고 하는 것은 MODAFE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외국작품이 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단 두 차례, 2006년과 2008년에 한국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는데, 그 두 번을 모두 파사무용단이 공연을 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 : 이런 큰 페스티벌의 개막작품에 선정이 되는 것은 많은 안무가들이 욕심을 내는 자리가 아닌가? 이번에는 특히 MODAFE와 공동제작형태여서 경쟁이 더욱 치열했을 것 같다.
황 : 그렇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행운이었고 이런 공연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우리 무용단을 더 알리고, 나의 안무방식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백 : 몇몇 우리 기자들은 이번 개막공연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하더라. 특히 손으로 머리를 치고, 겨드랑이를 치는 장면은 공연 다음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로 따라 하기도 하고 그러더라.(웃음)
황 : 그랬나? 그렇게 봐주었다니 안무가의 입장으로 기분이 좋다.
백 : 개막공연 두 작품이 너무 달랐다. 거칠고 파워풀한 이용우에 비해서 파사 무용단작품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동작과 색감이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이미지가 공연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직접 안무를 하면서는 어땠나?
황 : 어떤 작품이든지 동작이 섬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힘들어한다. 요즘 현대무용의 추세가 신체를 사용하여 폭발적으로 하는 게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에너지가 우러나와서 해야 하는 동작이 많다보니 젊은 무용수들이 처음에는 버거워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백 : 이번에 주제로 삼은 달팽이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늘 움직이지 않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쟤는 어떨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들었다. 사실 나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공연을 봤다. 하지만 미리 알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작품이 의미하는 자세한 것이 잘 와 닿지 않았다.
황 :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달팽이라는 동물의 생물학적인 습성까지 생각하여 안무와 의상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달팽이의 시선, 편견을 말해주기 위해서 이중적인 치마를 입고 자웅동체를 표현했다. 달팽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암컷, 수컷을 같이 가진 자웅동체 동물이다. 그래서 남자도 치마를 입었던 것이다. 치마 속에서 같이 움직이고, 같이 다닌 것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랬다. 하지만 달팽이의 습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게 뭐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백 : 그게 그런 의미였나? 사실 나는 초반에 남녀 무용수가 모두 치마를 입고 온 것이 ‘편견’을 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꼭 바지를 입어야한다는 것도 편견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모두 치마를 입고, 후반부에는 모두 바지를 입지 않았나? 만약 달팽이에 관해 사전지식이 있었다면 동작이나 그런 것으로 봐서 자웅동체를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황 : 또한 달팽이는 늘 목표지점을 정해놓고 느리게, 느리게 움직인다.
백 : 그런가? 그렇다면 2막에 무대 귀퉁이에 조명을 비추었던 것이 달팽이의 목표 지점이었나?
황 : 그렇다. 달팽이가 목표지점까지 가려고 하는데 남자무용수들이 못 가게 막고 뒤로 보내고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뭐를 할 것이라고 목표를 세워놓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 의해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달팽이처럼 자기 목표지점까지 꾸준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백 : 무용수들은 노란색안감이 들어간 옷을 입었고, 무대 안쪽에 노란색 세트가 보였다. 그 세트가 무엇을 의미했나?
황 : 처음의 노란색은 목표물이었고, 두 번째 노란색은 하나의 독립체로서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인간이 사회에서 혼합하고 있지만 개인에게 각자의 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백 : 그렇다면 그 길을 표현하기 위해서 세트를 쓰고 그 앞에 무용수가 서있었던 것인가?
황 : 그렇다. 그 세트는 모두 4개를 사용하였다. 우리 사회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달팽이도 만약 물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런 의미를 거기서 부여한 것이다. 무용수들이 세트위에 올라가 있을 때 노란색이 다시 나온다. 그것은 달팽이처럼 흔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달팽이는 자기의 목표물에 도달할 때까지 흔적을 남기고 간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도 흔적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그 흔적 안에서 또다시 살아간다. 그 흔적이 무덤이 될 수도 있고 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 : 그런 흔적이 업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에는 달팽이의 생물학적인 의미가 많이 들어있고 그 의미를 인간의 습성과 대비를 잘 한 것 같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손동작이 인상적이었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치고 겨드랑이를 치는 장면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
황 : 달팽이도 얼마나 빨리 가고 싶겠나? 하지만 빨리 갈수가 없으니 참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런 답답함을 그러한 동작으로 표현해봤다.
백 : 이제 ‘노랑 달팽이’에서 조금 빗겨나가 보자. 주로 안무를 할 때 어떤 점에 주안을 두나?
황 : 비록 내가 현대무용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서양의 것이다. 나는 그것에다가 우리나라의 정서와 문화, 한국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무대화시키려고 한다. 또한 무대구성도 한옥의 구조를 사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외국에서 현대무용을 선보이더라도 우리의 정서가 묻어나지 않으면 보여줄 게 없다. 우리 것이 아니기에 창작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피나바우쉬를 좋아하는 이유도 뭔가 색다름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무용, 한국의 것을 모두 흡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춤의 정서나 움직임은 한국의 것을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은 확고히 가지고 있다.
백 : 이번 작품을 보더라도 팔동작이나 그런 것에서 한국적인 것이 묻어남은 느꼈다. 하지만 절대 한국무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황 : 그러면 거꾸로 내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자랑은 아니지만(웃음), 이번 작품의 안무와 음악, 의상, 무대세트, 조명을 보니 어땠나?
백 : 하나로 모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게 완성도가 아닐까? 모두 따로따로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황 : 그것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스태프 회의를 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대본작가와 내가 만나서 콘셉트 전달을 하고 대본을 썼다. 대본이 나오면 6명의 스태프들이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나는 그러한 스태프 회의를 5, 6번에 걸쳐서 한 후에 무용수를 만난다. 내가 무용수를 만날 때는 이미 세트에 관해 미니어처가 나와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우리 무용단만의 차별화라고 생각한다.
백 : 사실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다름을 많이 느꼈다. 현대무용 같지가 않았다. 현대무용 음악을 듣다보면 신기한 기계음을 들어볼 기회가 참 많이 생긴다. 참으로 잘 조합을 하더라. 하지만 이 공연은 무용공연의 기승전결에 따라 음악도 함께 기승전결로 움직이고 있더라.
황 : 이 작곡가는 신디사이저를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실제 연주된 것이다. 그 작곡가와 나는 이미 10여 년 동안 호흡을 맞춘 사이다. 나는 창작을 한다면 모든 것이 창작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89년부터 안무한 이래로 첫 해에만 편집을 했고 90년도부터는 음악 또한 계속 창작을 해왔다.
백 : 그렇다면 다른 스태프들도 호흡을 맞춘 지 오래 되었나?
황 : 기본으로 모두 5년 이상 되었다. 안무가도 좋은 스태프를 만나기 위해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의상디자이너도 우리 작품을 할 때는 의상 작품을 선보이듯 작업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작품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동작을 만들지만 그 외에 것은 모든 전문가들이 모여서 나를 서포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미디어 가상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조작과 편견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인 것이 사실이 아닌 것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런 가운데 모든 것이 급변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주의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속도주의는 인간을 한없이 몰아넣고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다. 달팽이가 주는 느림의 미학처럼 속도주의에서 조금 뒷걸음질 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1mm만 뒤로 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보는 것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테니 말이다.
백수진 기자 psj12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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