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cm의 훤칠한 키에 큰 눈, 나른한 자신감이 엿보이는 입매. 윤한은 보스턴과 뉴욕을 중심으로 음악감독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OST를 불러 화제를 모았고, 지난 2010년 1집 앨범 ‘Untouched’를 내놓으며 언론과 평론가에게 인정받는 뮤지션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최근 발매한 2집 앨범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음악스타일을 펼쳐보였다. 윤한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에서 주연 ‘이스마엘’ 역을 맡아 연기 분야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 음악을 전공했다. 윤한의 전공적 특성은 앨범에서도 잘 드러난다. 앨범 전체는 하나의 주제를 따라 담담하고 담백하게 흘러간다. 얼마 전 발매된 2집 앨범 ‘For this moment' 역시 ’사랑의 설렘부터 만남, 헤어짐, 기억‘ 등을 주제로 풀어나간다.

“1집은 과거를 회상하며 만든 곡들이 많았는데, 2집은 현재진행형 앨범이에요. 한 남자의 사랑과 이별까지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는 앨범이죠.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려드리면 영어를 하나도 못 하던 19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아는 형들이랑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알아듣진 못하고 영상만 봤어요. 그 영화의 남자 대사 중에 'This moment is your life'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서 DVD로 사서 자주 보곤 했어요. 지금 제 앨범의 1번 트랙의 제목이죠. 이 문장의 뜻이 ’지금 이 순간이 너의 삶의 한 부분이다‘는 뜻이잖아요. 이 의미를 구체적으로 앨범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의 음반은 여러 음악 장르가 몸을 뒤섞고 있지만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보다 원래 있었던 음악 장르를 보듯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팝재즈 뮤지션 ‘제이미컬럼’부터 소울 뮤지션 ‘존 레전드’, ‘스티비 원더’, 첼리스트 ‘요요마’, 재즈 피아노 연주자 ‘키스 자렛’까지 등 그가 좋아한다는 음악가들만 보더라도 그가 수용하는 음악적 폭의 넓이를 짐작할 수 있다.

윤한은 자신의 음악적 성향에 대해 “가리는 음식 없는 잡식”이라고 말한다. “음악도 장르를 안 가리고 다 하고 싶어요. 음악은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더욱 그렇죠. 표현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어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영화음악을 전공했지만 재즈음악 공부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음악에 도전할 예정이에요”

윤한은 1집부터 최근 발매된 2집까지 전곡 작사, 작곡, 노래, 프로듀싱을 맡았다. 혼자서 모든 앨범의 제작 과정을 책임지는 만큼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은 없었을까. “어려웠던 점은 몸이 피곤하다는 것이요.(웃음) 여럿이서 하나의 앨범을 만들어 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의견 충돌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혼자 하다 보니 제 전부가 음악에 표현되는 거 같아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거침없이 자신 안에 녹여내는 그의 음악 ‘첫 시작’은 어디였을까.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음악적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 레슨이 너무 하기 싫었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주면 열심히 했대요. 그게 바로 ‘구운 오징어’였어요.(웃음) 그 때는 음악을 할 거라고 전혀 상상 못 했죠”

윤한은 소위 ‘강남 8학군’ 출신이다. 학교생활 12년간 반장, 부반장,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모범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우연히 김동률의 노래와 마주한 후 음악에 빠져들었다. 윤한은 당시에 대해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는 김동률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고, 충격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구운 오징어’ 하나에 마지못해 피아노 연습을 하던 어린 소년은 우연한 계기로 어느 새 버클리 음대를 장학생으로 졸업하는 ‘음악 엘리트’가 됐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뉴욕과 보스턴에서 음악 활동을 펼쳤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앨범을 발매하고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해외와 한국 무대에서 바쁘게 활동해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보스턴으로 유학간지 얼마 안 된 22살 때, 아는 분과 흑인음악밴드를 만들었어요. 공연이 열리던 첫 날이었는데 그 쪽 동네가 조금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공연장이 지하라 어두컴컴했고요. 문 앞에 떡하니 서있는 깍두기 분들이 있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웃음). 그 날 공연은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어요. 이 공연이 흑인음악으로 더 깊이 빠지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이사오 사사키 10주년 내한 공연’의 게스트로 초대됐을 때예요. 꿈의 무대에 진출한 느낌이었죠. 예술의 전당에서 정말 공연을 하고 싶었거든요. 연주한 곡은 재즈 스탠다드 곡인 ‘Blame on my youth’였어요. 한 곡만 연주하고 내려왔는데도 많이 떨렸어요”

윤한은 최근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에서 주인공 ‘이스마엘’로 첫 뮤지컬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작년에 초연한 작품이에요. 초연 때 뮤지컬 ‘모비딕’ 측에서 ‘이스마엘’ 역을 제안해 주셨는데 그 때 앨범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바빴어요. 그래서 거절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또 한 번 제안을 주셨어요. 심사숙고 끝에 결정하게 됐죠”

연주와 노래는 그가 익숙하게 해오던 것들이었지만 뮤지컬은 ‘연기’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에의 도전이었다. 윤한은 뮤지컬 연기에 대해 “연기는 처음이라 일단 어려워요. 연출가 분이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세요. ‘지금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가고 있어. 너의 감정을 표현해봐’라고 하시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잘 못했어요.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웠지만 지금은 적응 중이예요. 연출가님은 제 본연의 모습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내시죠. 정말 멋있는 분이에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초연 당시 ‘이스마엘’ 역으로 열연했던 신지호와 함께 같은 역으로 무대에 선다. 두 사람은 음악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첫 데뷔를 치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는 자신과 신지호의 차이에 대해 “지호와 저는 외모, 성격, 키 등 다 달라요. 지호는 작고, 귀엽고, 섬세한 느낌인 반면 저는 좀 당당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표현하는 ‘이스마엘’은 제 실제 성격과 비슷하게 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의 묘한 매력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연기활동을 계속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계속 하고 싶어요. 제 성격 자체가 감정 기복이 심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다른 캐릭터를 맡을 때 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윤한 만의 스타일로 해보고 싶어요”

윤한은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흡수하고 있고, 무서운 속도로 무대에 적응하고 있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로 인해 팝 음악을 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요”라고 말하는 그의 ‘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유다.

(* 이 글은 월간 삼호뮤직 5월 호에 실린 글임)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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