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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두 한 곳을 바라보다, 발레블랑의 고 홍정희 추모공연

 

지난 22일 발레블랑은 뜻 깊은 추모공연을 열었다. 바로 ‘평생 한국 무용계를 위해 예술혼을 불사르신 고 홍정희 선생의 추모공연이다. 인연’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번 공연은 신정희의 ‘BLACK!’, 조윤라의 ‘BLUE!’, 김명회의 ‘RED!’, 신은경의 ‘WHITE!’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주역으로서 한국 발레계를 이끌어왔으며 현재 전문무용수와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4명의 후배들이 선사하는 고 홍정희 선생의 추모공연은 그 첫 장면부터 의미심장함을 담고 있었다.

‘인연’이란 단어의 뜻은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오보에의 음색과 닮아있다. 첫 장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손짓과 눈빛은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발버둥과도 같았다. 손끝까지 전해지는 그 우아함에 슬픔까지 담겨 있다.

■ 신정희의 ‘BLACK!’, 칠흑 같은 그리움이 눈을 뜨다
1부 내내 UP되어 있는 긴장감은 검은색의 색감과 무척 잘 어울린다. 칠흑 같은 어둠은 발레의 테크닉을 중시하지 않는다. 단지 모두 하나 된 마음이 군무 속에 드러날 뿐이다. 묵직하고 어두운 선의 움직임과 3박자의 바이올린 선율은 어색한 듯 조화를 이룬다.
검은 배경에 검은 의상, 그 사이 살짝 보이는 무용수의 팔과 다리는 조명과 함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맴돌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멀게 느껴진다. 정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더 큰 무게감을 갖는다. 이것은 ‘BLACK!’이 주는 색의 느낌과 잘 맞다.
하지만 발레 특유의 시선은 그대로다. 어깨와 팔의 움직임이 익숙하다. 군무의 화려함은 없지만 동작 구석구석 애틋함과 간절함을 담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현의 긁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 높이며 침울한 그리움이 더욱 묻어난다. 붉은 조명과 검은 의상이 이상야릇하게 어울린다. 쳐지는 음악은 공연의 후반부에 들어서 끝이 길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은 두 손을 펼쳐 무엇인가를 갈구한다. 온몸으로 그리워한다, 마지막 그들이 두 손에 꼭 쥔 흰 안개꽃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모두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인연이 엮어준 그리움을 풍성한 안개꽃에 띄운다.

■ 조윤라의 ‘BLUE!’, 산뜻한 봄 같은 그리움, 인연을 만나다
1부와는 다른 동화적 분위기다. 작품의 시작 녹색의 조명이 객석을 비출 때는 조금 낯선 곳에 온 듯 한 느낌을 주지만 2부의 ‘BLUE!’는 지극히 전형적인 발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사하지만 간결한 발레복을 입고 과학적인 몸동작을 군무로 보여준다.
음악은 단조와 장조를 넘나들지만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바로크 시대의 간결하고 깨끗한 멜로디에 자연스러운 빠르기변화는 모두 같은 동작을 하는 발레리나의 모습과 평행선을 이룬다. 현악기의 피치카토(pizzicato)와 피아노 선율은 가벼운 봄의 기운을 가져다주며 화사한 발레리나들은 수줍은 봄처녀 같다.
한 폭의 단아하고 깔끔한 그림 같은 움직임이다. ‘인연’이라는 단어가 지닌 화사한 첫 만남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첫 시작을 알리는 ‘BLACK!’과는 달리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상반된 이야기를 발레특유의 정형화된 몸동작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아름다운 몸짓은 어느덧 인연이라는 끈을 갈구한다. 그리고 무대 중앙 그녀들이 벗어놓은 발레슈즈를 누군가가 탐한다.

■ 김명회의 ‘RED!’, 열정적인 붉음은 다시 일어서는 힘을 주고
붉은 옷의 그녀는 홀로 무대에 섰다. 겸허히 연습실의 bar를 받아들이고 깔끔한 몸동작으로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보인다. 무용수로서의 인생과 고민, 되돌아보면 파랑 같은 길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곧이어 등장하는 푸른 의상과 맨발의 발레리노들은 무척 신선하다. 의상과 몸동작에서 시원하고 청명한 느낌을 주며 힘이 넘친다. 붉은 의상의 발레리나들과 낯선 조화를 이룬다. 이들의 동작은 단조의 멜로디에 드라마를 안겨준다. 뒷모습으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느껴진다.
음악에 맞춘 안무가 아니라 음악이 안무를 따라간다는 느낌이다. 남성 무용수의 스피디한 움직임과 모든 것과 들어맞는 안무 구조는 관객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이 여섯 명의 발레리노와 발레리나들이 그녀를 보좌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외롭다. 무대 뒤로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생겼다. 음악은 사라졌고 그들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한다.
혼란, 좌절, 역경, 고난을 겪는 인간사가 부질없다 느낄 때도 있다. ‘인연’이라는 단 두 음절로 묶어두기엔 지난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하지만 그 단어, 어떤 것도 다 담고 있다. 3부의 ‘RED!’는 창작성이 돋보이는 역동적인 동작에 그 호흡이 느껴진다. 그것에서 붉고 푸른 기운이 주는 ‘인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된다.

■ 신은경의 ‘WHITE!’, 빛을 몰고 오는 그리움의 실체
우리의 곁을 떠난 누군가를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맞이한다. 4부 ‘WHITE!’는 발레의 클래식함과 과학적인 몸동작이 주를 이루며 그 정형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규칙적인 타악기 소리는 ‘누군가 오고 있다’는 기운을 암시적으로 나타내어 주며 이어 따뜻한 목관악기의 소리가 더해져 심장 박동 수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평화롭다. 흰색의 의상과 그린색의 조명은 안정감을 준다. 변주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멜로디는 현악기의 저음이 매우 매력적이라 더욱 설렌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그것이 순백색의 깨끗함과 잘 맞는다. 경배하여 누군가를 맞이한다는 느낌이다. 곧 웅장한 혼성 4부 합창으로 분위기는 더욱 up된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 듯하다. 두 손을 모아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 손을 들어 그녀를 맞이한다.
무대 뒤편으로 한 점의 수묵화가 그려진다. 뿌리 깊은 소나무가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양 무게중심을 잡고 있고 한 마리 새가 빛을 몰고 온다.


‘인연’이란 그 뜻은 외롭지만 묵직한 중심이 되어주는 저 소나무와, 빛이 되어 자라나는 새 잎들과, 늘 다시 찾아오는 새처럼 변화무쌍한 우리 인생과 맞닿아 있다. 빠르게 변화되는 현 시대에도 저 소나무처럼 그녀는 존재한다. 붉은 장미를 들고 모든 무용인들이 존경을 올리는 마지막 피날레는 모두 한 곳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더욱 가슴 벅찬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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