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은 관악합주, 삼현육각, 궁중음악 등 국악 편성에서 빠지지 않는 악기다. 근대에는 해금 산조와 독주악기로도 각광받고 있다. 해금 연주가 정겨운은 “해금은 정말 자연을 많이 닮은 악기라고 생각해요. 흙 소리를 지녀서 거친듯하면서도 푸근한 소리가 나거든요. 또한, 국악의 ‘흥’과 ‘한’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데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을 담아내다가도 애절하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는 변화무쌍한 한국의 사계절을 담아내는 매력적인 악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정겨운은 국립국악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일 대학의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재원이다. 현재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3월 31일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독주회를 열게 됐다. 정겨운은 이번 독주회에 대해 “아직 독주회를 하기엔 내세울 것도 없고 많이 부족해요. 10여 년간 해금을 하면서 배웠던 것을 나누고자 처음으로 독주회를 마련했어요. 독주회라고만 해서 저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연주 중에 관객에게 많은 에너지를 얻어요. 소중한 시간인 만큼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그녀는 이번 공연을 1부, 2부로 나눠 다채로운 음악으로 해금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을 전한다. 1부는 전통음악으로, 2부는 창작국악 음악을 연주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악기와 함께 조화롭게 호흡하는 해금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정겨운은 “해금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 다채로운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1부에서는 생황과 함께 조선 선비들이 무르익은 봄을 노래하던 ‘염양춘’과, 경기지방의 굿 가락을 바탕으로 한 섬세하고 해학적인 표현이 인상적인 ‘지영희류 해금 산조’를 연주해요. 민간의 축제음악이나 무속 의식에 사용되던 가락을 모음곡 형식의 무용 반주 음악으로 만든 ‘대풍류’를 대금, 피리, 장구와 함께 연주할 거고요. 2부에서는 현악 사중주의 반주에 맞추어서 이정면作 ‘활의 노래’, 김대성作 ‘불노하’를 연주할 예정입니다”고 말했다.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정겨운은 10여 년 동안 국악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녀는 국악을 접하게 된 것에 대해 11살 차이의 큰 언니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세 자매 중 막내예요. 11살 차이 나는 큰언니가 한국무용을 전공해 서울시립무용단에 재직했었어요. 작은언니와 저는 큰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전통문화에 젖어들게 됐고요. 시창, 청음으로 국립국악중학교에 입학한 뒤 전공배정고사와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 해금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내는 해금소리가 너무 깽깽대고 시끄러워서 특목고를 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중3이 되고 마지막이다 싶은 마음에 해금을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재미있더라고요. 항상 꼴찌를 하던 전공점수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요. 그 덕에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해 지금까지 해금을 하게 됐어요. 제가 중3 때 해금에 정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생물을 전공하던 아버지를 이어 생물을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웃음)”

가까스로 입학한 국악고등학교였지만 꾸준한 노력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경기국악제 학생부 대상, 전국 난계국악경연대회 기악 부문 우수상, 세종 매경 음악 콩쿨 일반부 1위, 동아국악콩쿨 일반부 은상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은 그녀에게 주어진 노력의 대가였다. 그렇다면 정겨운이 섰던 수많은 무대 중에 가장 그녀에게 또렷이 각인된 기억은 무엇일까. “여러 무대에 설 때마다 항상 ‘국악은 관객과 벽이 없다’는 것을 느껴요. 굿판에서 연주하다보면 어르신들이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거나 제 앞에 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맛있는 주전부리를 놓고 가실 때도 있어요. 유치원에서 연주하면 아이들이 악기를 만지러 달려 나오려고 해서 선생님들이 많은 애를 먹곤 하고요. 외국인들은 연주 중간에 ‘얼씨구’, ‘좋~다’ 등의 추임새를 서슴지 않고 해요. 그만큼 국악은 남녀노소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했던 모든 순간이 관객과 함께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소중한 순간들이었어요”

깽깽대던 해금 소리가 싫었던 소녀는 어느 덧 주목받는 해금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해금 아티스트 정겨운의 성장이 그리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국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국악은 다른 대중적인 장르에 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어요. 중, 고등학교도 국립이라 인문계에 비해 훨씬 학비가 저렴했고요. 하지만 대학에 오면서 음대의 비싼 학비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흔들려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중단할까, 전과할까 많이 고민했거든요. 아침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과외한 후 잠깐 눈을 붙이고 카페에서 일하고, 점장님의 허락을 받아 밤을 새워 가며 콩쿨 준비를 했었어요. 상금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해금을 사고 참 뿌듯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제게 많은 힘이 됩니다. 돈이 없을 땐 컵라면으로 며칠을 지내기도 했지만 해금은 차마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에게 해금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소중한 친구입니다”고 말했다.

정겨운은 국악에 몸담고 있는 젊은 연주가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천천히 만들어 가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굳이 대중과 협상하면서 전통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창작 국악 관현악을 연주하면서 학생 때와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중을 위해 전통을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정겨운의 생각을 바꾼 것은 바로 ‘관중의 열광적 반응’이었다.

“많은 분들이 국악은 ‘뒤쳐졌다’고 생각하지만 발전가능성이 아주 많은 분야예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연극, 무용, 영상, 문학, 뮤지컬부터 게임, 모바일 등 문화 콘텐츠 전반과 융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고요. 이를 위해 작·편곡도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나 탱고와 같은 다른 나라의 민속음악도 공부해서 해금으로 연주할 기회를 많이 가져보려고 합니다”

정겨운은 자신의 연주의 대해 “일단 전통음악은 최대한 전통을 살리고 기교보다는 기본적인 성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창작국악의 경우는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대려고 하는 편이고요.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기분에 따라, 상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듯이 어떤 연주에서 어떤 이야기가 담겨질지는 저 조차도 알 수 없어요. 또 그만큼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제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 연주할 때도 그저 숨김없이, 꾸밈없이 하려고 노력합니다”고 말했다.

이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해금 연주가 정겨운은 “1등을 바라는 음악, 자신을 과시하는 음악, 연습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지 말자”고 항상 다짐한다. 날카롭고 경직된 음악은 답답하기 때문이다. “리듬과 멜로디를 악보대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이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그 안에 저만의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게 주어진 ‘음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국악이란 음악이, 해금이란 악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음악인이 되고자 합니다. 제 스스로도 ‘정겨운’ 하면 떠오르는 예측 가능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정겨운은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 안에서 해금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차가운 독기보다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배움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는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음악인이 되겠다”는 정겨운은 힘찬 행보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월간 삼호뮤직 4월 호에 실린 글임)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