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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리뷰] 박재현, ‘그 녀석=Crying’, 그 녀석은 너무 슬플 뿐이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무표정한 얼굴.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안무가 ‘박재현’은 팸플릿에 적혀있는 그대로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가발을 쓰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 ‘그 녀석’은 그런 남자였다. 지나치는 사람이 눈을 뗄 수 없는, 하지만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박재현’은 무대 위에서 울고 있었다. 그의 슬픔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아주 슬프게 울었다. 그의 작품은 단지 여장을 한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지만, 누구나 하지 않는 행동을 통해, 2008년 1월 7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발표한 자신의 작품으로 ‘박재현’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 위의 ‘그 녀석’
작품 속의 ‘그 녀석’이 된 안무가 ‘박재현’은 여장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두 그룹이 있었는데, 그의 구두와 가발을 벗겨갔던 세 여자는 그런 물건은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어울려 춤을 추는 세 남자는 여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프릴이 달린 화려한 의상에 가발을 썼다. 여자 무용수들과 남자 무용수들은 서로 섞이지 않았다. 그를 경계로 현실과 환상의 세계로 나뉜 것 같았다. 여성스럽고, 음악과 어울리는 춤을 추는 여성 무용수들은 현실을,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의상과 동작을 계속하는 남자 무용수들은 환상에 속해 있는 듯 했다. 보통의 작품은 현실세계를 표현하거나 혹은 안무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표현한다. 하지만 ‘박재현’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했다. 그 경계에 그의 작품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점잖은’사람들이 되기를 요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통의 남자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계속했다. 그는 우리가 갑갑한 줄도 모르고 갇혀있던 현실의 틀을 깨뜨렸다.

-상징과 소통의 연결고리
안무가 ‘박재현’의 작품에는 장난스러운 소품과 동작들이 많이 등장했다. 장난감과 동요, 색색의 가발과 치마, 구두와 여장, 재치 있는 동작들이 무대 위로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작품은 확장된 표현을 보여주었다. 무대가 넓어지고, 장난감 마이크에서 나오던 동요는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변했다. 자동차와 전선, 망치 등의 독특한 무대 소품과, 무대의 전면을 꽃무늬로 가득 채운 영상의 사용은 참 기발했다. 이런 표현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관객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너무 유치하고, 또 너무 멋지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에 사용한 아이디어 들은 너무 기발해서 그 의미를 다 해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풍부한 아이디어와 표현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객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치들을 활용해 각 장치와 소품에 상징을 담아 관객들이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최대한으로 만들어냈다.
-솔직할 수 있는 성숙함
‘박재현’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의 대화 방식이 낯설어서 관객은 대답 없이 고요했다. 그러다가 점점 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대단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장면이 바뀔 때 마다 관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많은 표현들은 그가 우는 과정을, 혹은 그가 슬픔을 견디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남성적인 시원시원하고 쾌활한 동작과 작품의 흐름, 거기에 여성스러운 섬세한 소품과 감정의 표현이 작품과 무대 곳곳에서 느껴졌다. 또한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슬픔을 표현할 줄 아는 성숙한 감정표현도 함께 보였다. 작품의 제목처럼 그 녀석은 울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너무 사소해서 잊어버릴 수 있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읽고 나면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은, 프루스트의 책을 재미있게 풀어 놓은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 ‘알렝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처럼 엉뚱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의 장난스러운 표현들은 슬퍼도 울지 않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성숙했다.


이은민 객원기자 ssunny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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