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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리뷰] 무대 위에서 핀 그들의 꽃, 한창호의 ‘들꽃’

 

꽃의 이미지를 표현하자면 단연 ‘화려함’이다. 그러나 2008년 1월4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작품을 발표한 안무가 ‘한창호’는 화려하지 않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들꽃’을 무대 위로 옮겼다. 들꽃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기까지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그래서 들꽃은 온실에서 자라난 꽃들처럼 탐스러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들꽃처럼 소외받은 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들꽃’은 그런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들꽃이 된 무용수들의 몸
두 팔을 등 뒤로 수갑을 찬 듯, 한껏 몸을 뒤틀고 등장한 무용수들이 들에 피어난 풀들을 연상케 했다. 비바람을 맞으며 들에 피어난 풀들은 서로 얽히며 넝쿨을 이룬다. 바닥을 구르고, 기어오르고, 서로 얽히고, 꼬이고, 거꾸로 솟기도 하고, 타고 올랐다가 위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서로 밀치고, 오르면서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몸을 들풀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이 그런 동작을 계속하는 이유는, 들꽃이 꽃을 피우려는 이유와 같을지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들꽃이 되기 위한 과정을 계속 할 뿐이다. 그 순간, 그들의 몸은 들꽃이 되었고, 무대 위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안무의 중간 중간에 상대방을 경계하는 듯 한 동작이 보였다. 상대방에 대한 적의, 경계심은 꽃을 피우기 위한 본능에 포함된 것이다. 그들이 몸으로 표현한 꽃은 들에 핀 들꽃처럼 작은 꽃 봉우리가 너무 빨리 져버려서 우리가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한창호’라는 안무가는 자신의 눈으로 본 들꽃을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그대로 재현했다. 무용수들에게 지금부터 들꽃이 되라고 주문한 것이 아닐까? 그의 안무는 동작에 어떤 의미와 상징을 넣는 대신 들꽃이라는 소외된 꽃을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겼다. 어떤 소품이나 장치도 사용되지 않았고, 동작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래서 복잡한 의미와 상징들을 해석하기가 힘든 여느 무용 작품과 달랐다. 그의 작품은 아주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서 안무 자체가 직접 안무가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그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자연의 소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자연의 소리를 ‘한창호’의 작품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들꽃은 꽃을 피우기 위해 왜 그렇게 애를 쓰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들꽃이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들꽃’은 제목처럼 들꽃을 매개체로 삼아 무시당하고, 소외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안무가는 나태한 우리의 모습을 꼬집어 말하고 있는 걸까? 혹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들의 삶을 무대 위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온실 속에서 자라나 탐스럽게 핀 꽃의 향기만 맡으며 살아온 우리에게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은은하지만 잊지 못할 들꽃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들꽃은 주목받지 못한 채 들에 피고 지는 보잘 것 없는 꽃이지만, 안무가 ‘한창호’의 들꽃은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객원기자 이은민 ssunny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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