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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리뷰] 가슴 속 먹먹하게 자리 잡은 기억을 붉게 물들이는 김남진의 Brother

 

지난 4일 아르코 대극장에서 올린 김남진의 ‘Brother'는 나무 밑에서 매일 고도를 기다리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이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고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두꺼비가 있고 헌집을 새 집으로 바꿔줄 날만 기다리는 두 형제가 매일 두꺼비에게 소원을 비는 노래를 부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안무가 김남진은 장애를 가진 동생과 그 동생을 벗어나려 하는 형의 이야기로 첫 막을 올렸다. 김남진은 어릴 때 흙장난을 하며 불러대던 동요처럼 일상과 기억을 지배하는 장치들과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조합해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멋진 무대를 관객에게 표현했다.

-익숙한 몸과 사물의 의미 확장
첫 장면, 형제는 피와 시간과 기억 등으로 얼룩진 붉은 줄로 연결돼 있다. 다만 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동생은 형을 개의치 않고 자꾸 어딘가로 가려 한다. 그럴 때마다 형은 동생과 자신의 몸을 엮은 붉은 줄을 힘겹게 잡아당긴다. 그 줄은 풀어지고 팽팽히 당겨졌다가 결국 끊어지는 과정을 통해 형제가 서로를 거부하고 멀어지는 갈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는 확장된다. 형이 잘라버린 붉은 끈이 형제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무엇인가로 발전한다.
김남진의 ‘Brother’는 흰색조약돌, 형제의 의상과 그들을 연결한 붉은 줄, 그리고 사진과 조명까지 소품 하나하나를 외부와 내부, 연결과 끊김을 의미하는 안무의 코드로 잘 활용했다.
소품은 두 무용수들의 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는 몸을 통해 극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 형제가 상의와 하의를 나눠 입은 빨간색과 흰색 추리닝 의상이 그것이다. 빨간색 상의에 흰색 하의를 입고 있는 형과 흰색 상의에 빨간색 하의를 입고 있는 동생은 서로의 옷을 벗겨 자신의 의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동생은 가족이지만 형에겐 언제나 귀찮고 다른 타자에 불과했다.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동생을 없애기 위해 형은 더 과격하게 동생을 제압하려 든다. 형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동생을 없애고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러나 형의 격렬한 몸짓은 동생을 부정하는 파괴적인 몸부림으로 바뀌면서 형 또한 점점 병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생의 흰 셔츠를 벗겨버린 형은 벌거벗은 동생의 앙상한 몸을 통해 병들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들의 싸움은 막혀 있던 소통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돼버렸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에서 둘의 오해와 편견은 서서히 깨어진 것이다.
이때 격렬하게 부딪치는 두 무용수는 오직 남성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강한 힘을 보여준다. 씩씩 거리며 다투는 형제의 동작은 기교보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 동작의 진정성은 격렬하게 부딪치는 두 무용수의 몸이 폭발하지 않고 서로를 보듬는 넓은 의미에서의 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제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붉은 줄 대신 내면의 끈이 연결돼 있다. 흑백사진을 통해 그들은 이미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은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무대 배경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삭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웠을 지라도 현실은 형제가 가지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 액정 속의 한 장면이 된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언젠가는 오래 전의 기억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안무가 김남진은 무용에서의 몸이란 화려하고 규칙적인 동작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늘씬하고 매끄러운 몸매를 자랑하는 무용수의 몸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딘가 모자라고 불편해 보이는 몸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형이 동생을 쓰다듬는 과정은 타자의 몸이 실은 바로 내 몸이란 깨달음이다. ‘내가 나일 때 나는 너이다.’라는 파울첼란의 시구처럼 형은 자신이 파괴하려 한 동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꿰뚫고 현재를 직시한다. 이로써 형제 사이의 너와 나의 구별은 사라진다.
김남진의 ‘Brother’에서 형이 찾던 새 집은 결국 동생이 입고 있던 헌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듯 ‘두껍아 두껍아’를 외치며 흰 조약돌을 그러모은 형을 통해 장애란 모든 이에게 ‘이미 받아들여진’것이 된다. 결국 형은 동생으로 인한 아픈 기억들을 동생과 함께 치유한다. 몸이 불편해 형에게 짐만 되던 동생 또한 형이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함께 숨 쉬고 있다.
극은 새집도 헌집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관념이란 걸 보여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란 우리의 손등을 덮고 있는 두터운 흙더미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형은 물론 관객 또한 더 나은 삶과 이상이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Brother, 관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마지막 갈등해결 과정이 조금 맥없이 끝나버린 감이 있다. 하지만 배우들은 음악과 조명, 그리고 형제의 갈등을 동작은 물론 연기로써 더 훌륭히 표현했다. 덕분에 현대무용을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끼는 일반관객에게도 이번 공연은 앞으로 현대무용이 연극과 접목해 쉽지만 기본을 잃지 않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던 기회였다.


뉴스테이지 객원기자 정효진 dugong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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