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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열/마띠에르, 마띠에르 그리고 마띠에르..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안무가가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에너지의 적극적인 교류, 개인적이며 독창적인 세계에 대한 세밀한 관찰, 움직임의 작은 부분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재미 등 이런 것들이 내가 소극장 무용 공연을 찾는 이유이다. 지난 10월 6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UBIN Dance 안무가 이용인의 <사막열>과 남영호 무용단의 안무가 남영호의 <마띠에르, 마띠에르 에 마띠에르...>는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이러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사막열
사막열은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 안에 내재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자아에 대한 탐구와 갈증을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안무가가 관객에게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 서론은 노이즈 사운드와 섞인 독백의 음악과 붉은 조명으로 시작된다. 무용수는 자신의 양 손과 양 팔을 바닥에 붙이고 꿈틀대는 듯 움직임을 이끌어 나간다. 마치 관객에게 “내 안에 나라는 존재가 있어. 그것이 무언가를 막 시작하려고 해.”라고 얘기하듯이. 다음 부분부터 미니멀한 음악을 배경으로 두 명의 무용수가 공연을 이끌어 간다. 자아와 내면의 자아는 서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두 존재이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손을 맞잡고 꼴라쥬 기법을 사용하고, 같은 움직임을 갖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그리고 내면의 자아가 가진 열정을 따라 같이 호흡을 맞춰 움직임을 이끌어 간다. 같은 움직임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따라가고를 반복한다. 한 자아가 같이 하기를 멈추고, 멈추고, 다른 움직임을 하고, 다른 자아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듯 움직임을 제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젠 그 움직임의 주위를 맴돌며 주시하다가 그 움직임에 가까이 이르러 그 흔적들을 쫓아간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두 명의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와 모습들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폭넓은 동선과 감정의 흐름에 맞춘 공간 활용도가 돋보였다. 여러 가지 조명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안무 의도를 부각시킨 점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이 작품에서 안무가는 내면의 자아에 대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타들어갈 만큼의 갈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자아의 다른 자아에 대한 갈증이 타들어갈 만큼 적극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각 무용수의 개인적 공간이 너무 확보된 것이 영향을 미쳐 동작들을 너무 제재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였는지 이 공연은 내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자아라는 존재가 있어. 가끔씩 그 얼굴이 삐죽 고개를 내밀어 나와 내 주위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지. 나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주시해. 그것이 되고 싶어. 그것이 이끄는 대로 가고 싶어. 그래서 그것을 따라가....” 갈증을 좀 더 강조해서 무용수의 개인적 공간을 서로 더 극적으로 침범하게 하고, 거기에 빠르고 거친 움직임을 가미하였으면 어떨까. 개인적으로“그것을 따라가...”가 아니라 “널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라는 갈증의 이미지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마띠에르, 마띠에르 에 마띠에르...
예술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재료’의 하모니

무용 공연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재료인 무용과 음악의 한계를 제시하고자 한 이번 작품은 무용도, 음악도 매우 실험적이었다.
무용과 음악 모두 고요하고 느리게 시작하여 정점까지 이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음악의 재료는 턴테이블 위를 돌아가는 평평한 레코드판 모양의 쇠판과 그것을 건드릴 깡통을 씌운 나무 막대기이다. 이 둘은 서로 마찰을 일으켜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를 내며 독특한 배경음악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처음엔 ‘틱...틱...틱’하는 스타카토의 마찰음이 긴 공백을 사이에 두고 소리를 내었다. 이후 이러한 소리의 군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길이가 점점 길어져 어느새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 마찰음을 내며 공연의 종반을 알렸다. 특이한 점은 평소 이런 마찰음은 듣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아서 몇 초만 듣고 있어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소리인데, 이 공연에서는 그렇게 거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음악가의 천재적인 연주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새 그 소리에 익숙해져버린 인간의 습성을 이용한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무용의 재료인 무용수는 현대무용의 형태를 보여줄 남영호의 독무, 그리고 한국무용의 형태를 보여줄 최병규의 독무로 나뉘어져 진행되었다. 안무가는 이 작품을 통해 중력과 속도에 대한 인체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사람의 몸은 중력에 대해 중심을 잡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려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중력이 대하여 느린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단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 움직임에 속도를 준다면 어느 한계까지 갈까...’가 모티브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보기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강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한쪽 손과 다른 쪽 발, 혹은 같은 쪽 발만을 지면에 붙이고 거의 누운 상태로 시작하는 움직임은 천천히, 안전하게 진행, 반복하여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에너지는 이내 땀으로 뚝뚝 떨어지며 관객에게 강하게 전달되었다. 이 공연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 이전 동작과 다음 동작이 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며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까지 보여준다. 조명 역시 강렬하고 날렵한 선을 무대 위에 만들어 음악과 무용의 이미지를 한층 부각시켰다. 전반적으로 반복적인 움직임과 음악이 속도로, 에너지로 인해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또한 지극히 실험적이었던 만큼 공연 전반의 아이디어가 특이했고, 참신해서 좋았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한계에 이르러 파열되어 얼굴은 붉어지고, 초점이 없어지며, 온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거나 바닥에서 튕겨 오르는 등의 한계까지 보여줌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점은 그 한계가 쓰러지거나, 바닥에 뒹굴거나하는 아주 극한의 움직임으로 관객조차도 그 움직임을 두려운 마음 또는 무용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까지 인도하기를 내심 바랐는데, 그 전에 움직임이 멈춰섰다는 것이다.

두 공연 모두 신선하고 실험적이며 아이디어가 돋보인 만족과 기쁨의 무대였다. 워낙 유명한 이들의 공연이며 그런 이들의 소극장 작품이라 실험적인 면과 아이디어적인 면에서 개인적인 기대가 무척이나 컸었다. 약간의 아쉬움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의 다음 작품을 오히려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혜영 conny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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