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최진이는 올해 2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서울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생님으로서, 연주자로서, 그리고 17개월짜리 딸아이의 엄마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세라믹 팔레스 홀과 일본 도쿄, 히로시마, 도야마 순회연주를 마쳤고, 최근에는 2012년 1월 10일에 열리는 ‘최진이 귀국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번 독주회는 독일 뮌헨과 스위스 바젤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온 최진이의 귀국 독주회다. 오랜만에 열리는 “이번 귀국독주회에서는 ‘헨델’의 건반을 위한 모음곡 2번과 ‘베토벤’ 소나타 12번, ‘메시앙’의 기쁨의 정령의 시선 그리고 ‘리스트’의 소나타를 연주해요. 13년 동안 처음으로 여는 독주회인 만큼, 피아니스트 ‘최진이’를 소개하고 싶은 무대입니다. 저만의 이야기, 생각, 감정 그리고 제 삶까지 음악 안에 솔직하게 풀어놓고 청중과 교감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꾸미거나 포장하기보다, 제 안의 음악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진정한 저 자신을 회복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연주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들을 그에 걸맞은 색채와 스타일로 해석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겁니다”

최진이는 이번 공연에서 청중과 함께 하나 되는 공연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오랜만에 펼치는 독주회에 대해 “저는 이번 공연에서 제 감정과 생각이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표현되고, 단 한 순간이라도 청중이 그것을 함께 느끼며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면 연주를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만큼 부담과 책임감이 큽니다. 제 연주회에서 음악을 통해 끊임없는 설득과 이야기로 청중들이 제 음악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색다른 감회를 밝혔다.

최진이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음악가다. 그는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실기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독일의 뮌헨 국립음대 학사와 석사,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고점수로 졸업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콩쿨과 무대에 서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연습량이 많지 않아도 타고난 재능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철저한 “노력형 연주가”라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잘 치기 위해 연습했고, 지금은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연습을 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몇 시간의 연습을 한다기보다 될 때까지 연습하는 스타일이에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는 마음대로 연습할 수가 없어서 되도록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연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진이는 피아니스트로 풍부한 표현력과 개성을 자랑한다. 그의 손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지만, 양손 엄지손가락과 중지는 ‘방아쇠 증후군’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천상 피아노 연주가인 그에게 음악을 포기하고 싶게 할 만큼 힘든 시간을 안겨준 시련이었다. 최진이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웠던 지난 시간에 대해 “2001년도에서 2008년도에 걸쳐 총 다섯 번의 손가락 수술을 받았습니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경우에는 손가락이 펴지질 않아서 일상생활도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매번 수술 후의 재활 과정은 길고 암울했습니다. 무대에서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서 원치 않는 실수가 잦았고, 무대 공포증까지 생겼죠. 이 8년의 시간은 저에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포기하려고 마음먹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2008년 11월 마지막 수술 이후 재활의 기간을 지났고, 어려움을 조금은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연습할 수 있고,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화려한 연주 경력을 자랑하는 최진이지만 피아노는 여느 집 소녀처럼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일로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그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소녀는 어느새 자라 ‘피아니스트’가 됐다. “다섯 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절대음감이 생겼고, 머릿속에 계이름 순서대로 구멍이 뚫려 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들리는 모든 소리가 계이름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어요. 예를 들어,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나면 ‘솔’ 구멍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파’와 '파 샾‘ 사이에 있는 구멍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른들이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를 경우 다른 조성으로 부르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참기가 힘들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언제나 따라가서 일일이 절대 음으로 바꿔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황당하고 난감했을지 웃음이 납니다.(웃음)”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 곳에서 최진이는 자신의 음악적 바탕을 단단하게 해준 은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음악는 누구냐는 질문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제 음악을 지도해 주신 뮌헨 음대의 쉐퍼 교수님을 가장 존경해요. 저의 가능성을 알아보시고, 제 음악의 토양을 가꾸어 주셨어요. 무엇보다 저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시죠. 계속되는 손가락 수술과 재활 과정에도 저를 믿어주시고 지지하며 기다려 주셨어요. 제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 중 하나였습니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자립하는 과정에 있는 저를 보면, 음악적인 해석이나 표현, 그리고 스타일까지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최진이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거친 피아니스트다. 이번 연주회도 ‘귀국 독주회’다. 음악적 재능을 넓게 펼치는 일이지만 해외에서 보낸 오랜 시간이 힘들거나 어려웠던 적은 없었을까. “해외와 국내의 연주 문화와 풍토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신경 써야 할 음악 외적인 부분이 많아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집중이 떨어지는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좀 더 음악 자체에 관심이 많다는 느낌을 받아요. 연주자의 외모나 의상, 홀의 외관 등 외적인 모습보다는 소리나 해석에 관심을 갖고 즐겨요. 이런 부분은 저를 포함한 음악인들이 꾸준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연주활동이 힘들거나 어렵다기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독일의 평론가 ‘Elisabeth Frank’는 최진이의 연주에 대해 ‘그녀는 음악의 각 부분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정도의 사랑으로 이 곡에 심취하였고, 매우 많은 개인적인 해석의 판타지를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최진이는 자신의 연주 중 어떤 부분을 매력이라고 생각할까. 최진이는 ‘Elisabeth Frank’의 평가를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평이라고 말하며 “독일의 한 평론가가 말했듯 저는 음악의 많은 부분에 개인적인 해석으로 심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해석에 머무른 채 설득력과 감동이 없다면 진정한 예술로서 가치가 없겠죠. 저만의 음악 세계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설득하고 또 감동을 줄 수 있게 되기를 추구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다듬어가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피아니스트로서 ‘최진이’의 꿈을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참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절대 쉽지 않겠죠. 매일매일 음악을 위해 고민하고 연습하며 연주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음악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음악은 저 자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있는 음악, 즉 저의 고민, 아픔, 기쁨, 사랑, 삶 자체가 담겨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삼호뮤직 1월 호에 실린 글임)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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