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이 그림을 그린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표정으로, 몸의 곡선으로 빈 캔버스를 채운다. 거친 질감 위를 몸의 붓이 매끄럽게, 무겁게, 가볍게 때로는 여러 개의 점을 찍듯 쉴 새 없이 스쳐지나간다. 몸의 힘을 풀고 늘어지기도 한다. 그것마저 화폭의 일부가 돼 우연을 가장한 터치를 완성한다.

국립발레단이 새롭게 선보이는 ‘컨버댄스(CONVERDANCE)’의 세 작품 중 김주원은 ‘0 1(안무가 박화경)’에 참여한다. 이제 막 연습을 시작한 단계다. 아직 자신의 언어로 완벽하게 체화하지는 못했다. 많은 생각과 탐구 속에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보시는 분들마다 자신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많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비어있는 상태에서 춤을 추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비어있어야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잖아요.” ‘0 1’은 존재하지 않거나 질이나 양을 초월한, 혹은 비어있는 원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0과 시작, 모든 가능성의 종합, 본질, 상승을 내포하고 있는 1로 이뤄진다. 두 자아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곳으로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가 맞부딪치는 공간을 제시한다.

김주원은 이 작품을 추상화에 비유했다. 어떤 내용인지 단 번에 파악할 수 없으나 그것이 추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심오하지만 그 안에는 유머러스한 코드도 있다. “‘0 1’ 외에 두 작품이 함께 공연되는데 느낌이나 색이 너무 달라요. 새로운 안무가를 찾아내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안무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동시에 국립발레단 단원들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관객도 이전의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겠죠.” 동작 역시 발레와는 다르다. 토슈즈를 벗고 맨발로 무대에 선다. 발끝대신 뒤꿈치를 사용한다. 뛰어다니기도 한다. “안 쓰던 곳을 많이 사용해요. 발레도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사용하지만 발레리나는 워낙 바닥에 익숙하지 않아 힘든 부분도 있어요.”

많은 연습량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느낌을 찾는 게 우선이다. 국립발레단의 여러 가지 작품을 소화하고 있는 주역무용수 김주원은 완벽한 공연을 위해 혹독한 리허설을 하는 편이다. 이 작품 역시 다르지 않다. “원래 공연보다 리허설이 더 힘들어야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상당히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그게 공연을 위해서는 좋다고 생각해요.” 체력적 소모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그녀의 말처럼 정말 “잘 먹고” 있다. “아침과 저녁은 정말로 잘 챙겨먹어요. 점심의 경우 몸을 사용하고 뛰어야하니까 많이 먹을 수가 없어요. 초콜릿이나 쿠키 등 열량이 높은 것들을 먹어요.”

그녀의 몸이 말을 건넨다

김주원은 ‘0 1’과 같은 발레 외의 장르에도 상당히 열려 있는 편이다.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정표현과 서정성은 몸으로 표현하는 다른 언어를 공부하므로 완성된다. 표정으로만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 말을 건네는 것은 그녀의 몸이다. “저희는 몸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다른 언어를 많이 알면 표현의 영역이 훨씬 넓어져요. 발레뿐 아니라 현대무용 등 몸으로 표현하는 여러 가지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는 거니까 다른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예술적 영감과 언어를 습득하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비단 무용뿐 아니라 뮤지컬, 콘서트, 음악회, 영화관람, 독서 등도 꾸준히 한다. 때문에 후배들에게도 ‘공부할 것’을 권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음악회에 가봐라, 책을 읽어라, 다른 예술가들과 다양한 작업을 해봐라 등 이야기해요. 잔소리 같지만 그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몸에 쌓이면 표현이 되거든요. 습득된 것이 몸을 통해서 나오는 거죠.” 한국의 대표 발레리나 김주원이 사랑받고 있는 비결이다. 더불어 근성을 강조했다. “스스로 발레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고 봐야 해요. 금전적인 것은 차후의 문제인데, 때문에 국립발레단에서 발레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불필요하거나 부담스러운 지출을 막기 위해서도 발레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있는 상황에서 프로 무용수가 될 수 있는 절차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그게 중요한 거잖아요. 무대에 서기 위한 제대로 된 준비.”

모두가 서고 싶어 하는 자리에 그 모두가 설 수는 없다. 경쟁도 심하고 수명도 짧다. 그러나 다른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요? 글쎄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상상도 안 해본 것 같아요. 너무 자연스럽게 계속 춤을 추고 있다 보니까. 음,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무용수는 안 해야겠어요(웃음). 몸을 쓰지 않는 일, 이를테면 저도 글을 쓴다거나(웃음).”

그렇지만 아직은 발레에게서 시선을 옮길만한 그 어떤 것도 만나지 못했다.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는 할 것 같아요. 결혼을 할 만큼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당연히 하겠죠. 무대를 두고 한 눈을 팔 수 있는 사람?(웃음) 다만 저도 어린나이가 아니기에 확실히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결혼은 아름다운 거잖아요. 선택하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은 제가 너무나 부족한 게 많아서요.” 요리는 잘 하는지 물었다. “아, 요리요! 동생은 요리사인데 저는 김치볶음밥 만드는데 두 시간 반 걸렸어요. 배우려고요. 배우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배우자는 요리를 잘 했으면 좋겠네요(웃음).”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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