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위치한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를 찾았다. 국화꽃을 들고 모차르트의 가묘(假墓) 앞에 섰다. 이른 아침이기도 했지만 빈 중앙묘지에 비해 한산하며 작고 소박했다. 모차르트가 잠든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추측되는 곳에 세워진 묘비 앞에는 삽을 든 천사가 서 있다. 눈물이 났다. 배우 신영숙은 그곳에서 뮤지컬 ‘모차르트!’의 ‘황금별’을 불렀다. “‘황금별’이 모차르트를 위해 부르는 노래잖아요.” 딱 열흘의 시간, 모차르트를 만나기 위해 신영숙은 즉흥적으로 떠났다. 부지런히 걸었다. 잠은 다섯 시간이면 족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모차르트와 관련된 곳은 다 가봤어요. 모차르트와의 교감이 너무나 잘 이뤄졌죠.” 이후 우연이라도 발길이 가는 곳마다 모차르트가 있었다. “제 나름대로의 교감을 느끼면서 내 노래를 좋아하셨던 게 아닐까 하는(웃음).” 너무나 즐거웠을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저 사진을 천장이나 찍어왔어요!”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데뷔한 13년차 경력의 배우 신영숙은 혀를 내두를 만큼 역할의 폭이 넓다. 매치가 되지 않는다. 장르와 주, 조연을 가리지 않았고 한 이미지를 고수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각인될 기회가 적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서울예술단에서 오래 있었어요. 아무래도 배우보다는 단체가 부각되다보니 제가 뮤지컬 ‘캣츠(2008)’ 할 때 ‘10년 무명끝에 극적으로 얻은 배역’이라는 기사가 많이 나더라고요. 사실 예술단에서 여러 역할, 주, 조연을 다 했거든요. 저에게는 모두 다 소중한데. 프리랜서로 일한지는 3, 4년 됐어요. 이제 차차 제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어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황금별을 부르며 시선을 압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저는 늦게 되는, 천천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할 생각이기 때문에 급하게 마음먹지 않아요.”

때문에 많은 노래를 불렀고 모두 소중하지만 ‘캣츠’의 ‘메모리’와 ‘모차르트!’의 ‘황금별’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메모리’,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지만 ‘캣츠’ 공연할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보니 처절하게 소외된 고양이가 부르는 이 노래를 당시의 경험만을 가지고 부르기가 힘들더라고요. ‘메모리’는 다 내려놓고 부르는 노래예요.” 신영숙은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냈다. 분장실에서는 불을 꺼놓고 배우들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캣츠’를 통해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저 여자 뭐냐고(웃음). 저를 아는 분들은 같은 신영숙이냐고 물었어요. 노래는 너무 아름답지만 일 년 동안 그렇게 살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안 그래도 사람 좋아하는 애가. 반면 ‘황금별’은 모차르트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노래예요.” 그리고는 나지막이 ‘황금별’을 불렀다. 황금별이 떨어질 때면 세상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해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저 세상을 향해 날아봐. “벽을 허물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라는 내용인데, 듣는 분들이 각기 자신의 경험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많이 우세요. 어느 곳에서 이 노래를 불러도 다 감동인거죠. 행사용으로 좋아요(웃음). 또 누군가에게 불러줄 때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고. 선율도 아름다워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랑을 얻고 상도 받았으니 저에게는 큰 기쁨을 준 노래죠.”

배우 신영숙이 어렸을 적,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피아노 가게의 진열장 앞에서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고 있으니 결국 부모님께서 사주셨다. 동요대회는 물론 데모하는 둘째언니를 따라 데모가를 부르기도 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때다. 오스트리아에 가서도 모차르트가 작곡하며 사용한 작은 나무피아노 앞에서 행복을 느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할 때도 칠갑산 이런 노래들 많이 불렀어요. 육성으로 어디까지 올라가나(웃음).” 음악과 떨어지지 않았던 신영숙은 성악을 할 줄 알았다. 뮤지컬 ‘명성황후’ 무대에 서게 되면서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지금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뮤지컬이 전부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싱글이기도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뮤지컬이 최우선에 위치해 있어요. 아직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연애를 할 때도 농담으로 그 사람이야 일이야,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일에 가 있더라고요.” 신영숙은 항상 오디션을 보며 높아지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야하는 30대의 이 치열함을 즐기고 있다. “만족하거나 절대 안주하면 안돼요. 관객들의 수준은 계속 높아지는데 제가 한 자리에 머무르면 안돼죠. 소통이 불가능해요.”

소통. 그녀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뚜렷한 배우 철학을 말하기에 아직 부족하다는 신영숙에게 관객과의 소통은 큰 화두다. “전시회를 보면 그림에 대한 감동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의 철학, 세상을 바라보는 눈 등을 느끼며 감동을 받잖아요. 그리고서는 제 자신을 돌아보면 반성이 돼요. 오랜 시간 무대에 서왔으면서도 어떤 철학으로 뮤지컬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마땅한 답이 안서요. 매우 부끄럽게도. 그렇다고 억지로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고요. 그동안 너무 기능적으로 일해 왔던 거 아니니? 기능적으로 배우생활 하는 거 아니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나 거대한 철학을 만들어내는 대신 그녀는 꾸준한 활동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찾아나가길 택했다.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하고 싶은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늘 열심히 임하다보면 제 자신 스스로의 철학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저만의 아주 작은 철학을 생각해본다면 관객들과의 소통이에요. 제가 무대에 서는 이유죠. 특히 요즘에 고민을 하는 것이 정확한 음정 등 테크닉이 뛰어난 노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게 잘 하는 거잖아요. 삶 속의 경험을 통해 아름답게 연기로, 노래로 표현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지금의 아주 작은 철학이네요.” 소통에 성공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관객들의 반응이다. 감동을 받았을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리거나 공감 하며 박수를 보낸다. “관객들의 박수만큼 힘이 되는 건 없어요. 그분들이 사랑으로 보내는 박수와 함성, 절대 잊을 수가 없죠.”

이 치열함이 행복한 그녀는 급하게 마음먹지 않는다. 오늘을 살고 순간을 즐긴다. 말투와 제스처, 눈빛과 시선에서 그 행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배우? 글쎄요, 매일 바뀌어요. 예전에는 정확히 대답을 했어요. 성실한, 느낌이 좋은 혹은 변화무쌍한 배우가 되고 싶다 등등. 지금은 오히려 명확하지 않아요. 신영숙만의 철학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바람이에요. 지금은 너무나 많이 부족해서. 계속 생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야죠.”

글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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