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 먹을래?”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는 형에게 묻기를 수차례. 급기야 형은 토스트를 담은 접시를 내동댕이치고 바닥에 흩어진 토스트 조각들을 짓밟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토스트를 소중히 주워 담는 동생의 어깨가 파르르 서럽게 떨린다.

판이하게 다른 성격, 다른 삶을 살아온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트루웨스트’에서 내가 동생인 오스틴의 편이 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토스트가 뭐기에.

형인 리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방랑자다. 거칠고 과격하고 무대뽀다. 동생 오스틴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할리우드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 누가 봐도 반듯한, 한 집안의 가장이다.

형제는 삶에 있어 최초의 라이벌이라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리는 시나리오를 쓸 기회를 얻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미묘한 경쟁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충돌한다. 주류 사회로의 정착을 은근히 동경하는 리, 속박 없는 자유를 갈망하는 오스틴.

‘트루웨스트’는 배우들 간의 격한 몸싸움으로 소문난 작품이다. 해외 프로덕션의 경우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객석의 앞 3줄을 비워둘 정도. 한국도 만만찮다. 때리고, 부수고, 뒹굴고. 리가 오스틴을 향해 골프채를 휘두를 때는 객석에서 ‘헉’ 소리가 날 정도다. 그야말로 ‘리얼액션(?).’ 아기자기한 세트는 시간이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간다.

형제의 감정이 갈수록 격하게 엉켜가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를 훔쳐보듯 관망하고 있을 즈음. 문제의 토스트 씬이 등장한다. 싫다는 형에게 계속 토스트를 권하는 오스틴이 진상처럼 느껴질 만도 하건만, 갈가리 찢긴 꿈을 다시 맞추려는 듯 애써 눈물을 삼키며 토스트를 주워 담는 모습이 짠하기 그지없다.

오스틴 역은 조정석을 비롯해 홍경인, 강동호, 이율. 네 배우가 연기한다. 유독 토스트 장면이 와 닿은 이유는 아마도 그 날의 오스틴이 조정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정석은 참 ‘러블리(Lovely)’한 매력을 지닌 배우다.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자신의 요리를 맛보며 연신 ‘러블리!’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무대 위의 조정석을 보고 있노라면 제이미 올리버의 심경을 십분 이해하게 된 달까. 마음 속으로 ‘러블리’를 외치는 관객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재능과 노력에다 특유의 ‘러블리함’이 더해져 무대 위 조정석의 연기는 보다 저릿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가 웃으면 객석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그가 울면 유독 애처롭다. 깐족거려도 밉지가 않고 오히려 유쾌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조정석의 개성은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는 힘이지만 본인에게는 극복해야 할 과제란다. 실제 나이보다 한참 어린 역들이 주어지는 것이 점점 더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배우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조정석의 분위기는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인다. 신인처럼 풋풋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그가 무척 단단한 심성을 지닌 서른 두 살의 베테랑 배우임을 깨닫게 한다.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조정석은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인형'으로 데뷔했다. 햇수로 8년차. 연극 ‘아일랜드’와 ‘트루웨스트’를 제외한 출연작이 모두 뮤지컬이다. 뮤지컬로 인기도 얻었고 신인상(내 마음의 풍금)과 조연상(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수상했으니 조정석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뮤지컬 배우로 부른다.

하지만 그는 그저 좋은 배우로 불리길 원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전천후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이미 워밍업도 마쳤다. 2011년 우리는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는 조정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뮤지컬학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캠퍼스 드라마 ‘왓츠업’을 통해서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대본을 쓰고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 대성이 출연한다고 해 이미 오래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 때문에 거의 1년 가까이 무대를 비웠다. 예상보다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초조하진 않단다. 그동안 여러 뮤지컬에서 콜이 있었지만 아쉬움도 없다. 원래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성격이라며 트위터에 올려놓은 명언을 읽어준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아일랜드’를 연출했던 배우 겸 연출가 임철형은 조정석을 가리켜 ‘자신이 아는 가장 영리한 배우’라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는 오페라를 시켜도 기어코 해 낼 것이란다. 매력과 명민함을 가진 배우가 멀리 보는 눈과 근성까지 갖췄다. 무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조정석은 분명 주목받는 배우가 될 것이다. 내기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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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트루웨스트’ : 2월 27일까지.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조수현(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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