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을 만나러 가는 엄마의 손이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머리며, 화장이며 전에 없는 멋을 부린다. 엄마 옆에 놓여 있는 옷까지 평소의 엄마와는 다르다. 아낀다고 잘 입지 않았던 옷을 오늘을 위해 곱게 다렸다. 잘 싣지 않던 또각또각 경쾌한 소리를 내는 구두도 반질발질하게 닦아놓았다. 아니 ‘동창을 만나러 가는데 왜 저렇게 멋을 부릴까’ 싶다가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 대고 깔깔대던 친구들인데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려니 옷차림부터 화장까지 온통 신경 쓰인다. 그 옛날 나의 시간을 공유한 친구들에게조차 말간 얼굴을 들이밀지 못하게 됐다. 내가 잘살아온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멋진 옷과 좀 더 젊어 보이는 화장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설친 탓에 친구들을 만나기 전부터 지친다. 동창을 만나러 가는 길,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멋있어진 나를 보여주고 싶은 긴장감도 역시 찾아온다.

4명의 고교동창생이 33년 만에 만났다. 그런데 그 장소가 찜질방이다. 4명의 친구는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제각각이다. 고교 시절 누가 봐도 똑똑하고 잘난 우등생 잘난걸, 머리는 별로지만 얼굴은 비너스같이 예쁜 걸, 매사에 불만으로 비비 꼬여 있던 꼬인 걸, 안쓰러울 정도로 인생이 버거운 복살 머리 없는 걸 이 4명의 친구가 모였다.

겉모습만 봐서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행복한 그녀들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라는 뻔한 거짓말과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운 수다가 한창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녀들에게도 각자 하나씩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을 숨기고자 혹은 자신들이 믿는 행복을 포장하고자 거짓말을 한다. 고교 시절 소소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던 친구인데 33년이라는 세월은 친구 간의 솔직한 대화를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들의 거짓말이 하나둘씩 늘어날수록 감추고자 했던 진실은 드러난다.

연극 ‘잘난 걸, 이쁜 걸, 꼬인 걸, 웬?걸’은 네 명의 동창생을 통해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수다뿐만 아니라 낙태, 로비 등 사회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리얼하고 코믹하게 표현한 연극 ‘잘난 걸, 이쁜 걸, 꼬인 걸, 웬?걸’은 오는 1월 16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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