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연극으로 옮긴 연극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닥터이라부’다. ‘닥터이라부’는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공중그네’와 ‘인더풀’의 에피소드를 엮어냈다. 원작에서 생뚱맞고 엉뚱한 캐릭터로 사랑을 받은 닥터 이라부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연극의 매력 중 하나다. 원작 ‘공중그네’와 ‘인더풀’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간호사 마유미다. 이라부만큼이나 특이한 간호사는 관객의 시선을 이끌며 극으로 집중시키는 요소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독특한 캐릭터지만 마유미의 진한 눈화장과 닥터 이라부의 볼록 나온 배는 이질감을 주기보다는 묘한 친근감을 준다. 닥터 이라부는 소설 속 캐릭터와 100%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상상 속에서 만나 왔던 동글동글한 이라부를 실제로 만나자 반가움이 배가된다. 마유미, 강철근 등은 상상했던 캐릭터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연극 ‘닥터이라부’ 속 캐릭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설과 달리 연극 ‘닥터이라부’는 공간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설의 매력은 독자가 어디에 있든 문장 속 파라다이스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곳이 천국이든 혹은 이성의 목욕탕이든 책 속에서 출입금지란 없다. 어느 곳이든 문장 하나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반면 연극은 어쩔 수 없이 공간적 제약이 따른다. 소설 속 등장한 아파트 단지, 병원, 오디션장을 극장 내로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품과 배경으로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지만 극장은 극장일 뿐이다. 이런 취약한 장소에도 불구, 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에 충분하다.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은 그곳이 어디라도 관객을 등에 짊어지고 데려다 줄 것만 같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는 유머가 철철 넘친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를 해치지 않고 무대로 옮겨온 연극 ‘닥터이라부’, 연출가 이종훈의 노력이 돋보인다. 군더더기는 말끔히 제거하고 연극적인 재미를 가미시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가장 돋보이는 변화는 마유미다. 소설 속 섹시한 모습은 절제하고 락을 사랑하는 마유미의 모습을 강조, 독자적인 캐릭터로 거듭난다. 시종일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기타를 징징대는 마유미는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 마유미는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각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