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은 다른 차원의 문턱에 발을 디딘 순간의 아픔이 전해진다. 그 아픔을 표현한 신체의 편린이 화면 가득 메운다. 고전적인 드로잉 풍으로 그려진 백지희 작가의 작품은 인체를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낸다. 인체를 고스란히 나타내기 보다는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토대로 작품을 창조했다. 신체를 그리는 백지희 작가는 “저를 표현하기 제일 좋은 소재가 인체에요. 그렇기에 인체드로잉을 계속해서 해오고 있어요. 제가 현재 시드니에서 생활하는데 한국, 일본, 시드니 등 골격이 달라 다양한 인체를 표현할 수 있어요. 동서양 문화의 다른 점도 알 수 있고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인체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 인체, 그녀를 담아내다

인체를 표현한 그녀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색감이 어둡다. 신체하면 뽀얗고 새하얀 흰색이 떠오르지만 백지희 작가의 작품은 흰색보다는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이 주를 이룬다. 작품의 색감은 자신의 심경이 반영됐다고 한다. 작품을 만들 당시는 그녀는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일본유학 시절 만들어진 작품은 대체로 색감이 어두워요.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아이들은 어리고 남편도 저와 함께 유학생활 중이었고, 정말 쉼 없이 바빴고 고된 시간이었답니다.” 그때의 힘듦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어두운 색감이 자리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 시드니 3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한 그녀는 세 나라의 채색이 섞여 백지희 작가만의 독특한 색감이 묻어난다. “일본의 채색화 색감과 시드니 즉 서양의 오일페인팅 등 채색법이 혼합되어 작품 속에 드러납니다.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크게는 동서양으로 나뉠 수 있는 시드니와 한국, 일본의 채색기법을 제 스타일로 만들어 작품을 그리죠.” 삼국에서 공부한 그녀는 그 나라의 채색법을 자기화해서 표현하길 즐겼다. 그러면서도 백지희 작가는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시드니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녀는 내년 한국과 호주 수교 50주년 기념을 맞아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 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고자 갤러리에서 인터내셔널 아트쇼를 계획 중에 있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현재 시드니에 머물고 있는 백지희 작가는 한때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 한국인인데,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적을 취득해 그 나라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한국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 정체성의 혼란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다

힘든 시기에도 작품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녀의 작품에는 활력이 넘친다. 백지희 작가를 보고 있노라면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다. 인체를 그린 작품이라 섬세하고 가느다란 선을 생각했다면 그녀의 작품을 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섬세하긴 하지만 힘이 넘치고 강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은 남성의 힘이 느껴진다고 말하곤 합니다. 제 안에 갇힌 에너지가 많나 봐요. 전 힘 있게 그리는 게 좋아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그녀지만 아직도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처음과 같이 그림 그리는 게 행복하다는 그녀는 인체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 싶을까? “전 단순히 모델의 인체를 그림으로 옮기는 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골격이나 곡선이 달라요. 모델을 보면서 일단 그 모델의 이미지를 작품에 옮겨요. 외모적인 느낌과 풍겨오는 그런 감성을 그리죠.” 그녀가 그리는 신체 언어는 인체의 객관적 상관물이 아니라 백지희 작가 자신의 삶과 의지가 투사된 정체성의 산물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자기 스타일의 작품을 고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양 쪽의 색감을 갖고 활동할 거라고 했다.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된 시드니에서 한국을 잃지 않고, 그녀의 바람처럼 한류문화를 알리기 바란다.

글, 사진_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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