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국이 가장 열광하는 무용가. 2009년 초 비평가 협회 선정 국립무용상(The National Dance Awards) ‘최고의 현대 무용 안무상’을 수상하며 영국이 가장 기대하는 안무가로 떠오른 호페쉬 쉑터. 그는 이스라엘인이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무용단 바체바 댄스 컴퍼니에서 잠시 활동한 후 안무가로 독립,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무대를 향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2003년 첫 안무작인 ‘Fragments’와 ‘Cult’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연이어 발표한 안무작 두 개를 한데 묶은 ‘In your rooms / Uprising’, 단 하나의 작품으로 2007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켜 불과 몇 개월 만에 영국 최고의 무용 공연장 새들러스 웰스 극장(The Sadler’s Wells, 1,500석)에 진출, “밀레니엄 이후 영국에서 창작된 무용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10년 5월 발표한 신작 ‘Political Mother’를 소개하기 위해 6월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보았다.
무대 밖에서는 점잖은 학자처럼 차분한 이성을, 작품에서는 폭발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자토이치’(초라한 맹인 방랑자지만 엄청난 무공을 가진 검객)스타일이 요즘의 트렌드인가? 최근에 만난 젊은 무용가들과 마찬가지로 호페쉬 쉑터 역시 도서관 사서 처럼 정돈된 조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만난 그의 공연은 눈과 귀를 멀게 할 만큼 극단적으로 요란했다. 공연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에서 “공연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셔도 전혀 통화가 가능하지 않을 테니 휴대전화를 꺼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위트 있는 멘트에서 짐작은 했지만 막상 시작된 공연의 사운드는 상상 이상이었다. 단상 위 4명의 드러머들과 기타연주자, 록싱어의 연주는 극장을 뒤흔들었으며, 일본 무사의 할복 장면으로 시작된 도입부는 자극과 충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전반 30분은 클라이맥스의 연속으로, 마치 영화 ‘다이하드’의 폭파장면을 30분 내내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이 겨우 일곱 번째 안무작이고 본인은 춤을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객석을 뒤흔드는 작품을 내놓는 것을 보면 호페쉬 쉑터는 21세기의 ‘자토이치’임이 분명하다.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10년 7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한국관객과 처음 만나는데 당신의 성공작이 아닌 신작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 저는 2003년부터 안무작을 선보이기 시작해서 그리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제 히트작들을 모은
신작 <폴리티컬 마더>는 어떤 작품인가요?
- <폴리티컬 마더>는 설명할 것이 참 많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매우 감정적인 작품으로, 신작을 구상하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감정이 ‘분노’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폴리티컬 마더>는 삶의 공적 부분과 사적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혼돈을 표현한 작품으로, 춤으로 표현하기에 복잡하지만 두 개의 다른 세상이 보여주는 갈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 사적인 측면이 사회적 체계에 의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목의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정치적’과 ‘어머니’는 그 의미보다는 '혼란'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한 의도 입니다. 전작
신작을 위해 뽑은 무용수들인가요? 아니면 고정무용수들이 있었나요?
- 무용수 대부분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사람들이죠. 이번 한국 공연에 출연하는 무용수 11명 가운데 9명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무용수는 2명으로 한국인 무용수 김예지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무용수와 장기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스라엘 출신 무용가들이 한국에서 각광 받는 것을 알고 있나요?
- 그런가요? 벨기에 웨이브는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 무용가들이 특별히 한국에서 각광 받는 다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출신 무용가라면 누가 그런가요?
바체바 무용단의 오하드 나하린, 버락 마샬, 이칙 갈릴리, 엠마누엘 갓, 버티고 무용단 등이 좋은 반응을 얻은바 있습니다.
- 그렇군요. 저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가족을 구성하며 살았고, 새로운 문화에 개방적인 시기도 비슷했고, 특히 극적인 정치 상황이 그렇다고 봐요. 한국도 우리 이스라엘처럼 한 핏줄, 형제이면서 적대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극적 상황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고, 많은 예술가들을 탄생시키는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이 외국 문화에 대해 개방적일 수밖에 없게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이죠. 그리고 이스라엘 안무가들이 자국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이스라엘 출신 무용가들의 작품에는 움직임이 많다는 점이 한국 관객에게 어필되는 이유 같습니다.
-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춤을 위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요. 이스라엘에는 전통 포크댄스가 잘 보존되고 지금도 성행하기 때문에 생활 속에 춤이 함께 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스라엘 민속춤 속에는 현대무용과 연관되는 박자, 움직임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무용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어릴 때부터 민속춤을 많이 추고 있기 때문에 조기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무용가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주로 받나요?
-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보통 한 때에 느낀 감정, 생각에서 영감을 받아요. 그것에서 시작되어 발전된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리서치 작업을 합니다. 그 후 스튜디오로 가서 무용수들을 만나면 이야기가 발전되지요. 기술적인 면 즉 춤동작, 춤의 테크닉은 타 무용가에게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밖에 영화 등을 통해 사운드(음악)의 영감을 받고 있어요. 음악은 제 안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입니다.
무용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 처음 무용을 시작한 것은 9살 때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민속춤시간이 필수과목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제가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주셔서 예루살렘에 있는 민속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 정식 교육의 시작이었습니다. 춤이 직업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저의 소극적인 성격을 개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작한 것이었어요. 자기개발을 위한 것이었지만 서서히 춤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오하드 나하린이 있는 바체바 댄스컴퍼니에 입단하여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그 후 많은 안무가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그들의 영향을 받았고, 2002년 영국으로 건너가 자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에 입단했었고, 독립하여 2003년 첫 안무작을 발표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제 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음악가로도 활동 했는데, 무용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 저는 아직까지도 제가 ‘무엇이 되었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요. 아직 아무 것도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용을 배울 때나 음악을 공부할 때도 제가 무엇이 될지 몰랐습니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없었고, 단지 어느 순간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안무를 시작한 것입니다. 안무에서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저는 음악을 포기한 것이 아닐뿐더러, 음악가로써의 경험이 춤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어 좋습니다. 앞으로도 하나의 틀에 자신을 고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제 직업을 단정 짓지 않는 것은 제가 안무가를 그만두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요소들을 많이 만들어두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영화나 극단에도 관심이 많고, 콘서트 음악에도 큰 애정을 갖고 있어요. 다른 일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싶습니다.
다음 신작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나요?
- 운 좋게도 앞으로 몇 년간 스케줄이 이미 짜여 있습니다. 다른 무용단들과 작업도 몇 가지 계획되어 있어요. 일단 이번 신작 <폴리티컬 마더>의 투어 일정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폴리티컬 마더>는 영국에서 5월 초연된 후 한국에 오기 일주일 전 독일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번 한국 공연이 끝나는 대로 바로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호주와 영국에서의 공연도 잡혀있어요. 이번 투어를 마치면 뉴욕으로 건너가 ‘Cedar Lake Company’를 위해 안무를 해야 합니다. 그 후 큰 음악 프로젝트 계획이 있는데, 20-30여명의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물론 춤도 한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1년 중 몇 개월은 다른 무용단과 작업하고 나머지는 제 무용단을 위해 할애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더 레이크 무용단을 위한 신작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할 수 없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안무를 할 때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나요?
- 제가 TV프로그램 오프닝을 안무하는 등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기 때문에 하시는 질문 같군요. 저는 두 가지가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무대에 올릴 때 제 목표는 작품에서 말하고자하는 느낌을 관객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작품의 표현이 성공적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저에게는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예술성/대중성을 염두 하는 것보다 우선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고민하지 않으려 해요. 관객과 공감대가 형성될 때 즉 대중성이 높아질 때 예술성이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적으로도 수준이 높기 때문에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춤은 당신인생에서 무엇인가요?
- 두 단어로 답할 수 있겠네요. 춤은 제게 ‘잠재적 자유 Potential Freedom’입니다. 무용가로 살면서 어느 날에는 춤이 어쩌면 이미 ‘성취한 자유’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제 삶에서 춤은 아직 다 이루지 못한 잠재적 자유의 존재입니다. 제가 계속 춤을 만들고 추는 이유입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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