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담한 감성을 그려내는 무채색의 무대 위에 정적이 흐른다. 눈을 가린 여인은 앞이 보이지 않아 두 손을 남자에게 맡긴 후, 몸을 지탱하고 섰다. 막막해 고개를 숙인 여인과는 달리 남자는 다소 담담한 표정이다. 이 둘의 사이는 부녀지간이다. 진정한 소리를 위해 자신의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소리에 대한 욕심이 한 여인의 삶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그 비극은 한(恨)이 담겨 소리로 표출되고, 그 소리는 우리에게 눈물짓게 하는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작품성으로 인정을 받으며 화제가 됐던 영화 ‘서편제’가 뮤지컬로 돌아왔다. 원작의 유명세에 힘입어 뮤지컬 ‘서편제’는 기획 당시부터 큰 화제와 기대를 모았다. 뮤지컬 ‘서편제’는 한국인의 정서를 감각적인 무대와 판소리로 풀어냈다. 비단 판소리만이 아니다. 한국적인 색채를 유지하되 뮤지컬의 기본 소스인 현대적 안무와 음악도 상황에 맞게 배치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우리의 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는 점이다.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 이 사실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컬러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백의 미로 채운 수채화 같이 담담한 무대는 우리의 정서와 한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로드무비 형식의 내용을 살려 무대는 회전식으로 돌아가며 생생함을 부각시켰다. 한 폭의 수채화 절경에 아름다움을 가미 시킨 것은 배우들의 의상이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무엇보다 크게 돋보이는 이자람은 단연 히로인이다. 우리의 정체성이자 한국 정서의 유전자인 송화역을 연기하는 이자람의 구성진 소리와 연기는 일품이다. 판소리 전공의 그녀는 부족함 없이 더한 감동을 표현해 한국인 정서의 한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폭발하는 감성과 울분, 감동에 관객들은 전율을 느낀다.

또한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는 새롭게 변화한 동호의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이다. 원작과는 차별화된 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난 동호의 소리는 대중음악을 상징,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판소리와 공존해야 할 운명임을 보여준다.

절제된 감정 속에 스며드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선보일 뮤지컬 ‘서편제’는 지난 8월 14일부터 공연 중이며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그 감동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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