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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피플] ‘나’에서 ‘그’로, 뮤지컬 배우 김우형

 

 

배우가 한 작품에서 잇따라 다른 배역을 맡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가 충돌하며 극이 진행되는 2인극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쓰릴 미(Thrill me)’와 같이 캐스팅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인기 공연이라면?
동성애와 살인이 얽힌 실화를 소재로 한 심리극인 ‘쓰릴 미’는 지난 2007년 초연 이래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뮤지컬. 지난 해 두 번째 시즌에서 사랑 때문에 살인에 동참하는 ‘나(네이슨)’로 분해 치밀한 감성 연기를 선보였던 김우형이 오는 3월 7일 막이 오르는 세 번째 시즌에서는 ‘나’를 쥐락펴락하는 ‘그(리처드)’가 되어 돌아왔다. 종잡을 수 없는 나쁜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을 품은 채…….

- 김우형의 ‘그’는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막바지 연습 현장에서 만난 김우형은 한 동안 ‘지킬 앤 하이드’ 공연과 ‘쓰릴 미’ 연습을 병행하느라 무척 힘들었단다. 공연은 물론이고 연습 스케줄도 되도록 겹치지 않으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아직 피곤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 ‘쓰릴 미’ 연습을 1월 중순부터 시작했는데 2월 들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두 작품 다 체력 소모가 엄청난 공연이잖아요. 몸에 좋다는 거 엄청 챙겨먹으면서 한다곤 했는데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에 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컨디션이 최악인 날 처음 제 공연을 보러 오신 관객에게 저는 그 정도의 배우로 기억될 수밖에 없잖아요. 라이브로 공연하는 배우들의 비애랄 수 있는데, 드라마나 영화는 최상의 씬만 편집해서 보여 지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은 그게 불가능하니까요. 어쩔 수 없이 제가 안고 가야할 부분이죠.”

지난 시즌 공연에서 김우형이 ‘나’를 연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남성적인 이미지로 볼 때 김우형은 누가 봐도 ‘그’였기 때문. 하지만 김우형은 건장한 체격 속에 숨겨져 있던 섬세한 감성으로 그만의 ‘나’를 창조했다. 어찌나 말랑말랑했던지 ‘소녀우형’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을 정도였다.
때문에 ‘쓰릴 미’ 시즌3에서 ‘그’를 맡기까지 김우형은 고민이 많았다. 시즌2가 막을 내린 지 몇 개월 안 된 시점이어서 김우형의 ‘나’가 남긴 잔상이 채 가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스스로 ‘나’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배역에 도전한다는 것이 오만한 생각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움. 이런저런 생각이 그를 망설이게 했지만 김우형은 결국 ‘그’를 선택했다.


“ ‘나’를 연기하면서 마음고생이 좀 심했어요. 캐릭터에 몰입하기도 힘들었고 ‘나’를 이해한 후에는 이 친구의 가슴앓이가 공연 내내 고스란히 저한테 전해져서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보람도 있었고 얻은 것도 많지만 이번에는 기질적으로 저와 더 잘 맞는 ‘그’를 해보고 싶더군요. 제가 ‘나’의 심리를 잘 아니까 더 잘 구워삶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그’를 연기하는 김우형은 좀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연기하며 생각했던 ‘그’와는 좀 다른 인물이었다고. 지난 시즌 김우형이 생각했던 ‘그’는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면서 정돈된 외형 속에 날카로움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를 맡아 분석하고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더란다.

“ ‘그’는 ‘나’보다 강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나’ 없인 아무 것도 못하는 겁쟁이에요.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억눌린 욕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분출하는 미성숙한 인간이죠. 김우형의 ‘그’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이 많은 친구예요. 조울증 비슷하게 감정기복이 심하고 굉장히 풀어헤쳐져 있을 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나’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는 아름다워야 하죠. (웃음) 스킨십 수위는 지난번보다 약할 거예요. 이번에는 제가 능동적으로 하는 입장인데 아름답고 깔끔하게 가려고요. 너무 격하면 극의 흐름을 해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둘의 관계를 명확하고 일관된 해석으로 표현하려 해요. 물론 받아들이는 관객 입장에선 다양한 것을 느끼시겠죠. 섣부른 판단일진 모르겠지만 가장 재미있는 시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스타의 산실 ‘쓰릴 미’

‘쓰릴 미’는 피아노 한 대 달랑 놓고 90분 동안 등․퇴장 거의 없이 배우 두 명이 끌고 가야 하는 작품이기에 배우의 역량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만큼 배우들도 주목받는다. 이율, 이창용, 김동호 등은 신인에서 주연급 배우로 급부상했고 김무열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 무진하는 스타가 되었으며 류정한은 데뷔 10년 만에 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래저래 ‘쓰릴 미’는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김우형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 잘 됐네요. 저는요. ‘쓰릴 미’를 하면서 연기가 많이 는 것 같아요. 앙코르까지 포함해서 ‘쓰릴 미’가 아홉 번째 작품인데요. 작년에 이 작품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배우로서 전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배운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 보람 있어요. 또 한 가지 성과는 ‘쓰릴 미’를 끝내고 나서 팬클럽 회원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거. (웃음) 배우에겐 팬 여러분이 재산인데 참 감사한 일이죠.”

캐스팅별로 공연을 관람한 ‘쓰릴 미’의 마니아들은 페어별 애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지난 시즌에선 김우형-김무열 페어의 ‘짐승커플’이 대표적이었다. 캐스팅이 새롭게 바뀐 이번 시즌에선 과연 어떤 페어가 어떤 애칭을 얻을지도 살짝 궁금해진다.

“김무열씨가 정말 짐승 같았죠. (웃음) 공연을 시작하면 바로 별명이 나와요. 이번엔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 어떻게 불리든 좋아요. 작품에 대한 관심이고 애정이니까요. 이번에 저는 정상윤 씨랑 주로 연기하게 될 것 같은데요. 연기를 굉장히 잘해서 맘에 들어요. 대화를 특별히 많이 안 해도 연기 궁합이 잘 맞는 상대가 있는데 이 친구랑 제가 그런 것 같아요.”

- 사람 남기는 배우 되고파

김우형은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가 뮤지컬을 하게 된 데는 뮤지컬 배우인 누나 김아선의 영향이 컸다고. 그에게 누나는 지금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특히 성악을 전공한 누나에게 음악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데뷔 초기 김우형은 성악 전공자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초반에 그런 소릴 많이 들었죠. 요즘엔 소리가 좀 죽었나? (웃음) 제 노래나 연기는 점점 내추럴해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노래를 공부한 배우와 안 한 배우와는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나게 돼있는데, 저도 슬슬 들통 나고 있어요. (웃음) 대신 그걸 연기로 풀어야죠.”

2005년 ‘그리스’의 대니로 데뷔한 이래 김우형은 쭉 주인공을 맡아왔다. 그것도 남자 뮤지컬 배우들의 로망인 ‘지킬 앤 하이드’를 비롯해 ‘올슉업’, ‘대장금’ 등 굵직한 작품의 주인공을 도맡아 왔다.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듯 보이는 그. 그렇지만 김우형은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고.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두려운 게 없었어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재밌기만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두려움이 시작됐어요. 좋게 말하면 무대에서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는데, 경력이 쌓이면서 서서히 제 연기, 노래가 들리고 제 한계가 보이는 거예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뛰어넘어야 하는 과정이겠죠.”

질문을 건네면 돌아오는 대답들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지독한 현실주의자 같다고 말을 건넸더니 그도 인정한다. 판타지나 SF 같은 비현실적인 영화도 안 볼 정도란다. 무대에서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배우가 이렇게 현실주의자란 점이 재미있다.
“전 꿈도 없어요. 물론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 어떤 배역을 맡고 싶다 하는 욕심은 있지만 배우로서 꿈은 참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충실하고 작업하는 과정을 즐기려 노력하죠. 무대에서 잘 해서 한 명의 팬을 얻는 것도 소중하지만 작업을 하며 날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동료를 얻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을 남기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제 꿈인지도 모르겠네요.”

김우형은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적당히 재치가 있고 유쾌하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 무척 진지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선 굵은 연기로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김우형.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그저 자신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는 지금 배우로서 성장통을 앓고 있는 듯 보인다. 성장통 후의 그의 연기는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지겠지. 배우로서 관리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이 아쉽기도 하고, 만 3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휴식도 간절하지만 당장 눈앞의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김우형은 어쩔 수 없는 천상 배우였다.
지금까지 작품 중 ‘지킬 앤 하이드’를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지만 이번 ‘쓰릴 미’ 공연을 마치고 나면 ‘그’에게 많은 애착이 생길 것 같다고 말하는 김우형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김우형의 ‘그’를 빨리 만나고 싶다.

◎ 뮤지컬 ‘쓰릴 미’는?
192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한 스티븐 돌기노프의 2003년 작.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속에 동성애와 살인으로 얽혀 극단으로 치닫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필석, 김우형, 정상윤, 김산호, 김하늘 출연. 3월 7일부터 5월 24일까지. 신촌 더 스테이지 극장.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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