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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헤드윅은 저의 운명 같아요”, 분장 디자이너 채송화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이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분장 디자이너 채송화 (35)씨. 뮤지컬 ‘캣츠’, ‘헤드윅’ 등 화제작을 비롯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공연만 대략 5편. 곧 관객과 만날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즐거운 인생’도 그녀의 손길을 거칠 예정이다. 너무 바빠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갔다는 그녀를 헤드윅 분장실에서 만났다.

“집에선 거의 포기하셨어요.(웃음) 저 말고도 바쁘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맡은 공연들이 분장의 비중이 큰 공연이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공연 분장 일을 한지 올해로 10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지만 최근에 유독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공연이 좋아 무작정 시작한 분장 공부

고등학교 때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던 채 씨는 그 때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공연 분야에서 일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화실을 다녔는데 그 때는 제가 화가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극단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공연계 사람들의 인간적인 분위기에 반해 이 분야에서 평생 일하고 싶단 생각을 했죠. 그래서 생각해 보니 제가 그림을 그렸던 경험과 공연 쪽 일을 하고 싶은 소망이 합쳐져 분장이란 장르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96년에 분장 공부를 하러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요.”

마음먹은 것을 행동에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채송화 씨. 오늘날의 그녀가 있기까지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을 사회 복지 운동에 헌신한 사회 운동가이자 대안학교인 두밀리 자연 학교의 설립자인 고 채규철 선생이다.

“아버지께선 항상 저에게 ‘너는 꼭 대단한 여자가 될 거야’ 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존중하고 지지해 주셨죠. 아버지가 제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자신의 몸을 이끌고 사회에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헤드윅’은 나의 운명

지금껏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의 분장을 해왔지만 그 중에서도 헤드윅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헤드윅은 저의 운명인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영화로 먼저 접한 헤드윅의 음악과 분장에 빠져들어서 혼자 생각했죠. 저 영화를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만든다면 내가 꼭 분장을 하고 싶다라구요. 그런데 몇 개월 후에 뮤지컬 분장 의뢰가 들어왔는데 그게 바로 헤드윅 이었던 거에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죠. 수없이 헤드윅을 디자인했지만 지금까지도 헤드윅을 분장할 때는 저 스스로가 헤드윅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저는 헤드윅 초연의 분장을 맡은 것도 기쁘지만 시즌을 거듭해오면서도 계속 분장을 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행복해요. 이제는 다른 사람 못 줄 것 같아요.(웃음)

2005년 초연 이래 10명의 헤드윅이 그녀의 손길을 거쳐 탄생되었다. 초연이 비교적 오리지널에 충실했다면 네 번째 시즌을 맞은 2008년의 헤드윅은 배우 각각의 개성을 살려 훨씬 다채로워졌다.

“이번 시즌은 배우들에게 맡겨지다시피 한 공연이에요. 한 배우가 짧게는 수십 회에서 길게는 수백 회 가까이 헤드윅을 연기하다 보니 배우 스스로가 공연을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이 생겼고, 그래서 배우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공연은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제 개인의 욕심은 접어 두고 작품과 배우에게 조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제 개인의 작품을 할 때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쏟아내지만 분장 디자이너로서 공연에 참여할 때는 무엇보다 작품의 콘셉트에 맞추는 게 우선이죠.”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헤드윅. 얼굴도 체격도 취향도 성격도 다른 개성 넘치는 10명의 헤드윅을 만들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1차 시즌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조승우 씨의 분장이 다른 분들에 비해 덜 예쁘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속상하더라구요. 2차 시즌 때는 오로지 승우 씨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어요. 승우 씨가 시즌 2 첫 공연이 끝나고 ‘선생님 큰일 났어. 내가 제일 이쁘대’ 하는데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더군요.(웃음) 김다현 씨는 컨디션에 상관없이 항상 예뻤어요. 화장이 잘 받으니까 저도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었구요. 송창의 씨는 완전히 마론 인형 같았고... 가장 오랫동안 작업한 송용진 씨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작업이 즐겁답니다.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석준 씨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한 케이스인데 분장을 마치고 무대에 선 석준 씨는 정말 사연 많은 여자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생긴 별명이 베로니카랍니다. 엄기준 씨의 경우는 파격적이었죠. 조금은 거부감이 들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우리나라 관객분 들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다 보니 헤드윅이 예쁘지 않으면 좀 괴로워하세요. 안 예쁜 헤드윅이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씩 접근해 가려고 해요. 어휴 한 사람 한 사람 다 말하려면 끝도 없어요.(웃음)”

한국의 모든 헤드윅을 도맡아 창조한 그녀지만 원조 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과의 만남은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이다.

“작년 미첼의 첫 내한 공연 때였어요. 원래는 분장 없이 공연을 할 계획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마음이 바뀐 거에요. 헤드윅 분장은 물론이고 한복에다 금발 가채까지 쓰겠다고 너무나 예의 바르게 부탁하셔서 부랴부랴 가채를 제작했어요. 미첼은 굉장히 섬세하고 공손한 사람이에요. 마치 언니 같은 느낌이라 작업하기가 참 편했어요.”

또 하나의 도전 ‘미녀는 괴로워’

운명 같았던 헤드윅, 분장 디자이너로서 꿈이었던 캣츠를 거쳐 채 씨는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했다. 초연을 앞두고 있는 바다, 송창의 주연의 무비컬 ‘미녀는 괴로워’가 그것이다.

“무대용 피를 만드는 데만 두 달이 걸렸던 이블 데드로 그렇고... 제가 생각해도 저 스스로가 어려운 작업을 즐기는 것 같아요. 미녀는 괴로워의 경우 1막 중간에 뚱녀가 미녀로 순식간에 변신을 해야 하는데 분장뿐 아니라 많은 분야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또 변신 장면보다 고민되는 게 배우 얼굴에 붙인 가면이에요. 무대 특수 분장이 영화보다 힘든 것이 영화는 컷과 편집으로 끊어 갈 수 있지만 무대는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배우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다 보면 땀이 나게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몸에 붙인 특수 분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배우에게 최대한 무리 없이 단번에 가면을 떼내는 것도 중요하구요. 지금으로선 그 부분이 가장 큰 숙제인데 공들인 만큼 잘되겠죠. 전 믿어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걸...”

‘미녀는 괴로워’를 마치고 향후 2년간은 자신의 분장팀인 ‘크레아’의 내실을 다지는 데 올인하고 싶다는 채송화 씨.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반짝이는 그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아름답고 혁신적인 무대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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