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day, but today!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오늘뿐인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가난과 질병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도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설명이 필요 없는 뮤지컬 ‘렌트(Rent)’가 오리지널 그대로 한국에 왔다. 투어팀이 아닌 말 그대로 오리지널 초연 멤버인 로저 역의 아담 파스칼과 마크 역의 안소니 랩을 포함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이 월드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온 것.

이제는 브로드웨이에 가도 볼 수 없는 오리지널 로저와 마크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이번 내한의 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듯 ‘렌트’가 공연되고 있는 KBS홀은 고가의 티켓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다. 초연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작품의 에너지는 여전했다. 거친 듯하면서도 극음악의 특성을 잘 살린 넘버는 작품의 일등공신. ‘One song glory’, ‘I’ll cover you’, ‘Season’s of love’등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공연장을 채울 때마다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캐릭터에 최적화되어 그 자체가 로저, 마크인 아담 파스칼과 안소니 랩부터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처지는 배우가 없다.

12년의 브로드웨이 공연 기간 평균 객석점유율 98%, 퓰리처상과 토니상 석권, 총매출 3억 3천만 달러……. ‘렌트’가 가지고 있는 각종 진기록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의미가 있는 것은 말랑말랑한 멜로디, 시각적 자극에만 치중하던 1990년대 브로드웨이에 일대 혁신을 몰고 온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데 있다.

잘 알려있다시피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모태로 하고 있다. 1830년대 파리 뒷골목의 보헤미안들의 이야기가 199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 것. 마약과 동성애, 에이즈라는 어두운 소재를 정면에서 다룬 ‘렌트’는 디테일을 생략한 연극적인 무대에서 현대 사회의 그림자와 온 몸으로 맞서는 마이너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렌트’가 가슴을 때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극본, 작사, 작곡을 주도한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 때문이다. 에이즈와 가난으로 죽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살아온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라슨은 삶의 어떤 어려움도 사랑으로 보듬어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그의 바람은 ‘렌트’의 메인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Seasons of love’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52만 5천 6백분의 소중한 시간들, 어떻게 그 시간들을 잴 건가요? 일 년을 어떻게 보낼 건가요? 당신의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보세요.”

7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6년 1월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렌트’를 올리기 직전, 라슨은 3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인은 대동맥혈전.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이 천재 작곡가의 이야기는 그가 남긴 ‘렌트’의 주제 의식과 공명하며 진정성을 더한다.

절망적인 일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소 뜬금없는 해피엔딩은 예측불허인 삶에 대한 경이(驚異)로 이해하고 싶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찬가 ‘렌트’는 여전히 뮤지컬 마니아들의 꿈이다.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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