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너무 떨렸죠. 콩쿠르 때 너무 떨어서 상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지난 5월 14일과 15일 열렸던 제39회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발레 일반부 여자부문 금상을 수상한 강효형(한국예술종합학교 4년)의 담담한 후기다. “오히려 예선 때는 부담 갖지 않고 편안히 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본선 때 너무 긴장을 해서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최선은 다했죠.”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발레 퀸’으로 등극한 강효형과 발레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심코 친구가 다니던 발레 학원을 따라간 강효형은 “그 친구가 너무 부럽더라”고 말했다. 그 뒤로 발레 학원에 보내달라며 부모님을 조른 게 1년, 어느새 그녀는 한국이 주목하는 발레리나가 되어 대중을 향한 도움닫기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발레였는데, 어느새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웃음).” 기자들이 종종 상을 받거나 새 작품을 발표하는 무용수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쩌다 춤꾼이 되었냐는 것”이다. 이는 ‘보통사람’은 잘 시도하지 않는 춤이라는 일을 자기 천직으로 삼게 된 그 계기가 궁금해서다. 대부분 무용수들은 ‘어느 순간, 어쩌다 보니 이 자리에 와있다’며 우연을 강조거나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춤을 꾸준히 춰왔다’며 외길을 강조한다. 발레리나 강효형은 그 두 번째 케이스였다. 초등학교 2학년 발레와의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는 ‘토슈즈’가 결코 빠지지 않았던 것.
과학자, 대통령, 간호사, 의사…….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180도로 바뀌는 게 바로 아이들의 장래희망 아닐까. 하지만 줄곧 자신의 인생에서 ‘프리마돈나’의 꿈만을 좇아온 강효형의 의지가 대단해보였다. 이에 “너무 어렸을 때 진로를 정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혹은 다른 인문계 학생들이 부러웠던 적은 없는지”물었다. 그러자 강효형의 입에서는 “정말 많았죠. 제가 욕심이 조금 많아요”라는 답이 단번에 툭 튀어나온다. “슬럼프에 빠져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에요. 특히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방황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게 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보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강효형은 자신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부모님이 정말 많은 힘을 주셨다”고 전했다. 강효형의 부모님은 항상 ‘발레를 함으로써 네가 행복해져야지 불행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곁에서 부모님이 힘을 주시니까 부담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죠.” 한편 중학교 때 들었던 담임선생님의 한마디도 그녀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됐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재능 있고 잘한다고 해서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정말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주변을 보면 저보다 더 잘하고 재능도 있었지만 미리 꿈을 접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따라서 어디까지 올라가느냐에 집착하기보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했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다보면 만족할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지금껏 강효형을 이끌어왔던 소중한 가르침이다.
다시 콩쿠르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동아무용콩쿠르를 준비하는 맹훈련기간은 몸매관리는 물론이요 강도 높은 훈련까지, 발레리나들에게는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발레 같은 경우는 매일 연습을 해도, 매일 다른 동작이 나와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전에는 되던 동작도 안 되는 날이 있거든요. 이런 것들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려야 더 좋은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마음을 컨트롤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물론 체력관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말 안 해도 다 아시겠죠(웃음)?”
앞으로 강효형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발레리나’를 꿈꾼다. “클래식 발레는 물론 모던 발레 역시 잘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그가 롤-모델(role model∙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직책이나 임무 따위의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나 모범)로 삼고 싶은 무용수가 ‘실비 길렘(Sylvie Guillem)’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백조의 호수’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길렘은 파리 오페라발레단 역사상 최연소인 19세의 나이에 최고 위치인 ‘에뚜알’에 오른 발레리나로 최근 현대무용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편 ‘백조의 호수’는 여자 주인공이 ‘백조’와 ‘흑조’ 역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한 작품에서 상반된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것. ‘실비 길렘’과 ‘백조의 호수’ 사이의 공통점은 모두 ‘참신함’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무용에 도전하는 발레리나와 백과 흑의 매력을 동시에 소유한 캐릭터……. 여기에는 ‘발레’라는 장르와 ‘발레리나’가 가진 고정화된 이미지를 넘어, 더 새로운 시도와 움직임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효형의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강효형은 인터뷰 끝까지 ‘노력’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무용은 주관적인 예술이잖아요. 내가 아무리 만족스러운 무대를 펼쳤다 해도 관객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죠. 따라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경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게 제 과제예요. 물론 그 경지에는 끝이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늘 노력하는 무용수가 되겠습니다. 더불어 저를 지도해주신 교수님들과 모든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제공_댄스포토(dance-phot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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