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가다운 조막만한 얼굴과 길쭉한 실루엣에 자주 터지는 웃음이 싱그러운 봄을 몰고 온 것 같다. 하지만 눈빛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선택을 경험했을 것 같은 깊이가 묻어져 나온다. 바로 현대무용단 ‘탐’의 ‘제10회 솔로 공연’을 준비하는 무용가 남윤경이다.
솔로 작품 ‘그러지 말라고, 그러라고…….’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선택’과 ‘포기’를 결정해야 하잖아요. 그 반복되는 순간들의 고민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묻자 남윤경이 건넨 키워드는 ‘선택’과 ‘포기’였다. “평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매번 마주치는 그 순간은 평생 다른 것 같아요. 30대에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게 또 이전과는 다르더라구요. 물론 사람마다도 다르겠죠. 구체적인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한 것 보다는, 각자 공연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솔로 작품 ‘그러지 말라고, 그러라고…….’는 18분 30초 동안 공연된다. 일상적 동작으로 꾸며져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번 작품은 네 단락으로 구성 되어 있다. 초반의 포기에 관한 안무로 시작하여, 선택의 순간에서 또 다시 몇 가지 순간이, 또 몇 가지 순간이 삐져나오는 반복적인 선택을 이야기 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선택과 포기에 관한 반복을 발달시키면서 갈등을 고조 시키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컨셉으로 그런 순간들이 엮여 있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200여 개가 넘은 의자를 통해 이야기되는 그 무수한 갈등들.
모두가 공감할만한 주제인데 표현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표현 방법을 물었더니 ‘의자’이야기를 들려준다. “제가 사용하는 소품은 ‘의자’에요. 흔한 소품이고 다른 작품에서 쉽게 쓰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참 잘 어울리는 소품이란 생각을 해요. 선택과 포기 모두를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 ∙ 공간적 장소를 나타낼 수도 있어요. 의자 하나를 하나의 선택이라고 하면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을 나타낼 수도 있구요.” 200여 개가 넘는 의자를 무대 뒤편에 깔았다는 말에 놀라자 설명해 준다. “정말 수많은 순간이 있으니까요. 좋은 선택으로 해피엔딩이 올 수도 있지만, 사실 또 다른 고민에 대한 현재진행형 상태일거에요. 포기를 해야만 오는 또 다른 선택도 있구요.” 현대 무용에서 많이 사용되는 영상을 쓰진 않았는지를 묻자 몸의 표현을 우선시하는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영상을 이용하면 신체 움직임과 연계를 잘 시킬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 것보다는 실제 하는 의자를 사용해서 몸을 더 잘 쓰고 싶었거든요.” 나이 숫자에 따라 그만한 개수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냐는 물음에 자리는 금방 웃음바다가 된다. “진작에 알았으면 의자 수를 확 줄이는 건데요.(웃음)”
그녀의 의자를 들여다보다.
“사적으로요? 이런 것도 적어가실꺼에요? 안 되는데…….(웃음)” 이 작품을 준비하는 현재 남윤경의 고민은 무엇일까? 멋쩍은 웃음과 함께 내놓은 그의 대답은 무용가라면 반드시 겪을 무게 있는 의자였다. “무용가로서 30대가 넘어가니까, 남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보통 무용가들이 나이를 먹고 안무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말을 꺼내니, 정해놓은 마음의 길을 슬쩍 보여줬다. “춤을 많이 춰봐야 안무도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을 해요. 안무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고도 생각하고 있구요. 아직은 무용수로 더 뛰고 싶어요.” 전문 무용수로 살아가는 데에 대한 애로사항은 없을까.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것 정도? 자아 정체성을 이루기 위해 무용을 하게 됐는데 말이에요. 정확한 포지션 없이 바쁘게만 살다 보니 어느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듯한 느낌을 받았달 까요. 안무가와 무용가, 선생님과 학생같이 항상 모든 위치에 서 있어요. 예술 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 맞는 자리 같이 불편할 때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때가 있고……. 왜 이렇게 복잡하죠? (웃음)” 남윤경의 뒤로 의자가 또 몇 개 보이는 것 같다. 작품 내용처럼 그에게도 또 다른 고민들이 계속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춤과 자신을 사랑하는 그에게는 그러한 끊임없는 고민들이 모두 행복하게만 보인다. What a wonderful world!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냐구요? 나답게 추고 싶어요.
“옛날에는 잘 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어요. 일단 이슈가 되려면 ‘야- 진짜 잘한다.’ 그래야 하잖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이번에 공연하는 네 명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아요. 무용수들 중에서도 많은 편이구요. 책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데, 잘하는 것보다는 나답게 추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엄청 긴장하면서 ‘실수를 하면 안 돼, 실수를 하면 안 돼…’ 자기 암시를 주고 그랬어요. 왜 발레 같은데도 실수 한번 하면 큰 데미지라고 생각해서 뒷부분에도 영향을 받고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관객들도 왠지 계속 실수한 부분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그 무용수만의 색깔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 그냥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싶어요. ‘내’가 담겨있는, 그런 춤 같은 춤을 추고 싶은데 아직 제대로 못 해본 것 같아요. 아쉬워서 조금은 더 무대 위에서 살고 싶은가 봐요.”
한국 현대무용계를 이끄는 무용단 ‘탐’을 소개하다.
‘탐이 어떤 무용단인지’하는 물음에 어느 질문보다 말을 고르는 모습에서 얼마나 무용단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진다. “조은미 선생님께서 창단하신 무용단으로 내년이 30주년이 돼요. 교수님 성함을 무용단 이름으로 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대무용단 ‘탐’ 이라는 이름은 그렇지 않아서인지, 모두들 자기 자신의 무용단이라는 인식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여성들로 이루어진 무용단이라서 외부에서는 여성스럽거나 유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저희 춤의 색깔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파워 있어요. 남성들 못지않은 강한 느낌을 목표로 하고 어쩌면 그것에 자부심까지 있거든요.” 현대무용단 ‘탐’은 매년 정기공연으로 중견 안무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동시에 ‘젊은 무용수, 젊은 안무가’ 기획공연 등 실험적인 신작을 발표하는 데에도 힘을 쓰는 단체이다. 혁신성과 완성도를 두루 지향하는 무용단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붙여줬다. “발레에서도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처럼, 현대무용도 좋은 작품은 같은 형식을 가지고 레퍼토리화하기도 해요. 마사 그라함이 인간의 고통과 갈등을 손과 신체를 움추린 원형적(Archeetypal)형태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죠. 같은 공연을 올린다는 게 아니고, ‘탐’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용수들이 마음을 나누는 공간 ‘탐’을 이야기하다.
“탐이 탐이라서 좋은 점이 있나요? 같은 학교 분들이라서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너무 당연한 물음이었나 보다. 금세 좋은 점이 술술 쏟아져 나오며, 진지하던 눈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말 그대로 가족 같은 분위기에요. 휴일에도 하루 종일 같이 춤 연습을 하고 하니까요. 눈 뜨면 얼굴 보고, 해 지면 같이 돌아가고……. 항상 같이 있기도 하고, 모두 여자들뿐이라서 정말 서로 너무 잘 알아요. 연말에는 교수님과 함께 MT를 가는데 홀에서 포틀럭 파티를 열어요. 장기자랑도 하구요.” “장기자랑이요?” 우아할 것만 같은 무용수들에게 장기자랑이라는 단어가 왠지 재미있어서 되물었더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연처럼 해요. 춤 공연이요. 한번은 교수님 작품을 패러디해서 추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에피소드야 많다며 전화를 붙잡은 여자들의 한 밤의 수다처럼 변하는 인터뷰에 덩달아 즐거워진다. 왜 그가 ‘무용수’라는 의자에 올랐는지를 알 것만 같다.
현대무용단 ‘탐’의 ‘제10회 솔로공연’은 오는 5월 11일과 1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린다. 97년도부터 시작된 ‘솔로공연’은 ‘탐’의 젊은 무용가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연으로, 올해는 네 명의 무용가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마승연의 ‘14분 4초’, 정은주의 ‘Words’, 어수정의 ‘發光 소나타’, 마지막으로 남윤경의 ‘그러지 말라고, 그러라고…….’가 공연된다.
백수향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