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1일 열린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2008)의 기자간담회에서 유난히 젊은 안무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특히, 무대 위에서의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과 달리 내심 긴장한 듯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안무가는 바로 LDP무용단 소속의 김판선이다.
김판선은 이미 ‘2007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대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온 안무가다. “워낙 그런 자리가 낯설기도 하고, 주위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문은 연 김판선은 “하지만 이제는 조금 마음을 비웠다. 주변의 얘기를 듣고 부담 되서 스스로에게 악영향을 끼칠 바에야 마음을 비우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에 충실하려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나에 대해 얘기를 해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남은 것은 나 스스로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는 일이다”라며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김판선은 ‘2007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전’을 통해 호평을 받았던 작품 ‘Moment’를 무대에 올린다. “인간이 갖고 있는, 혹은 사회가 갖고 있는 계층급에 포커스를 둔 작품”이라고 설명한 김판선의 작품 ‘Moment’는 모래 바람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린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나의 절대적인 힘으로 인하여 이끌림을 받고, 벗어나려고 해도 쉽게 벗어날 수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관계적인 대립들, 그리고 거리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풀어보았다.”
김판선은 그의 작품 ‘Moment’를 통해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법과 형식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는 평을 받은바 있다. “작업을 할 때 상황의 변화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영화를 봤을 때도 상황 설명이 보이듯 무용에서도 그것이 보이게끔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나만이 갖는 상황적인 디테일함을 나만의 공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다 보니 시각적 효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김판선이 선택한 또 하나의 방법은 소품의 사용이다.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일 작품 ‘Moment’에서는 흙과 물이라는 양분되는 이미지와 촛불, 시계 등의 오브제가 사용된다. 이에 김판선은 “살아가면서 매번, 만지고, 마시고, 느끼는 1차원적인 것들을 사용했다”며, “1차원적이고 주위에 항상 존재하는 오브제들의 사용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 중 하나이기에 관객들이 작품의 의미를 인식하기에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무대 위가 아닌 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28세의 청년 김판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내 주변의 풍경들도 가벼이 넘기지 않았던 그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가끔씩 머리가 아파요(웃음)”라며 농담 섞인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판선은 그 많은 생각 중 거의 대부분이 춤에 집중되어 있는 외골수이기도하다. “관심 있는 분야는 정말 많아요. 인테리어나 패션처럼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이 쏠리는 편이지만 아직까지는 거기에 미쳐서 해야겠다는 건 무용뿐이예요. 무용에 관한 모든 것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먼저죠.”
가까이서 만나본 김판선은 어쩌면 지금 더 영향력 있는 안무가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나의 얘기를 전하는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동글동글하게 살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며 “그래야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에 목말라하며 느껴보고 싶어 하는지 동등하게 느끼고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자신의 이야기에서 많은 타인과 공존하며 대화할 수 있는 안무가로서의 내일이 기대된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안무가 김판선은 이번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끝나고 또 하나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내년 초쯤 외국에 나가 무용수로서 활동을 해 볼 계획”이라는 그는 “해외에서 만나는 안무자가 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해야할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모색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해외활동의 시간이 “나 스스로를 찾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잘 되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잘 안되겠지라는 생각이다. 그저 나라는 존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모르고 무언가 한다는 것 자체가 실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러다 잘되면 좋은 거고……(웃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공연을 계기로 국내 활동을 하나둘씩 마무리하며 스스로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으려 한다는 김판선은 기약 없는 해외 활동에서 돌아올 땐 더 좋은 수작(秀作)으로 찾아오리라는 약속도 있지 않았다. “차분함 속에서 흘러가듯 얘기하는 아주 편안한 작품과 그와는 반대로 극과 극을 달리는 파격적인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김판선이 몇 년 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올 새로운 작품들도 벌써부터 기대해봄직하다.
마지막으로 김판선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이용인 선생님의 ‘소녀와 죽음’은 나의 작품과는 어쩌면 정반대 성격의 작품이다.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남의 눈을 신경 쓰기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며 살고 싶다는 김판선의 생각 하나하나가 촘촘히 베여있는 작품 ‘Moment’는 오는 21일과 22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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