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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남경읍, “내가 힘든 만큼 관객이 즐겁고, 내가 흘리는 땀방울의 숫자만큼 관객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뮤지컬 배우 남경읍이 올해로 데뷔 30년을 맞이했다. 그는 70년대 시립가무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국 뮤지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뮤지컬과 함께 해왔다. 그는 30여년의 시간동안 ‘사랑은 비를 타고’를 비롯하여 ‘돈키호테’, ‘레미제라블’ 등 수많은 무대를 누볐다.

2008년 6월 28일, 대한민국 뮤지컬계에는 뜻 깊은 공연이 펼쳐진다. 남경읍이 제자들과 함께하는 이색적인 공연 ‘I am 남 sam’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그 공연에는 초호화캐스팅이 이루어진다. 이 공연에 출연하는 남경읍의 제자들은 현재 뮤지컬 배우로써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조승우를 비롯하여 박건형, 서범석, 소유진, 이하나, 최재웅, 이율 등 이름만 대면 모두 알만한 스타이다. 이런 대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들은 스승을 위해 노개런티로 기꺼이 한자리에 모였다. 또한 이 공연이 끝난 후의 수익금은 뮤지컬 장학재단 설립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 정말 이렇게 많은 스타들이 모인 것이 기념비적인 일인 것 같다.

“30년 동안 뮤지컬 배우가 공연을 해 온 것도, 더군다나 제자들과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사실 나는 3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종용을 했다. 마침 패티김 50주년과 조용필 40주년이 겹쳐서 아이러니하더라. 뮤지컬에서는 아직 배우생활 30년의 이력을 가진 사람도 없고, 가르치는 것도 25년이 되었으니 아이들과 함께 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 30년이 되셨는데, 삶을 돌아본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

“짧은 세월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꿈을 가지고 시작했고, 좌절도 했고, 다시 희망을 가지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내가 30년 동안 해본 결과 이것은 내가 평생 동안, 죽기직전까지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나름대로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을 나오라고 하면 사실 나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연기계통에서 제일 열심히 할 자신 있는 사람을 나오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나갈 자신이 있다. 그거 하나는 자부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후회스럽지는 않다.”

- 이번 공연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원래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공연을 하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승우가 고등학교 때 돈키호테를 굉장히 하고 싶어 했다. 그 때 승우는 산초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승우가 돈키호테를 하고 내가 산초를 하자고 했다. 유진이의 경우에는 예전에 캣츠에서 커플로 도둑고양이 역할을 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 나와 함께 아빠와 딸 고양이로 하자고 계획을 했다. 그렇게 콘티를 다 만들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 다들 스케줄들이 갑자기 생기고 그러다보니 만나서 연습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솔로 공연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비록 갈라 콘서트라고 하더라도 내가 배우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떤 생각으로 가르치는지를 자연스럽게 녹여서 공연을 계획이다.”


-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해왔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무엇인가?

“바로 ‘사랑은 비를 타고’이다. 우리 형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든 작품이니까 의미가 깊다. 대체적으로 작품이 있으면 스태프와 배우 구성을 하기 마련인데, ‘사랑은 비를 타고’는 거꾸로 작품을 먼저 생각한 후 거기에 맞춰서 대본, 연출, 음악 등 스태프를 구성했다. 그 다음이 ‘돈키호테’, ‘레 미제라블’이다. 나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이 ‘레 미제라블’이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너무 좋고, 주제도 모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25년 동안 꾸준히 교육에 몸담고 있었는데 그 동안 2,000여명의 제자를 배출한 것으로 안다. 본인만의 방식이 있나?

“나는 25년 동안 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회초리를 곳곳에 두고 쓴다는 것이다. 예술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예술을 하기 전에는 먼저 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같은 피아노곡을 치는데, 손가락이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연주를 하나? 손가락을 빨리 놀리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하고 그 기술의 연마를 위해서는 스파르타가 필요하다. 그 기술이 되었을 때 예술에 혼을 담든지 철학을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제자들에게는 어떤 것을 제일 강조하나?

“뜨거운 열정과 변치 않는 자세이다. 나는 ‘할아버지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늘 한다.”

- 80세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우연히 신문에서 본 것이다. 그것도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위한 기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80살이 된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는 날, 기자가 인터미션 때 인터뷰를 하러 찾아갔더니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75년이나 피아노를 치셨는데 또 연습하세요? 좀 쉬시죠’라는 기자의 말에 그 피아니스트가 ‘아, 아직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는 그 글을 읽고 정말 멍해졌다. 그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자세가 아닌가? 그 기사를 읽고 나도 ‘한국에서 조금 선배라고 해서 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열정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직업을 딴따라, 광대라고 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안 되어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깊이 있는 자기성찰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야 하고 사람공부를 해야 한다.”

- 아직까지도 늘 열정을 가지고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나? 그런 열정을 위해서 스스로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끊임없는 연습이다. 내가 이번 콘서트에서 피아노곡을 2곡 연주한다. 5개월 전부터 이 곡을 준비해왔다. 내 목표연습량이 한 곡당 만 번을 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9천 번을 연습했다. 나의 하루 목표량이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연습을 빠질 수가 없다. 그렇게 연습을 늘 하고 있다. 나는 학생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인다.”

- 그래도 많은 유혹에 시달리지 않나? 그런 것을 뿌리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이다. 하지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다. 내가 힘든 만큼 관객이 즐겁고, 내가 흘리는 땀방울의 숫자만큼 관객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 이번에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나?

“그것을 선택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선택을 하고 나면 고생길이 훤하지 않나? 어차피 내 공연이니까 안하면 그만인데. 또한 클래식을 선택한 것이 건방지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16,7시간씩 연습을 좀 꾸준히 했다. 지금은 노래랑 춤도 연습해야하니까 3시간정도 하고 있다.”

- 올해를 계기로 무대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

“30주년 공연을 준비하니까 40주년 생각이 나더라. 난 이 공연이 끝나면 바로 40주년 준비할 것이다.(웃음) 이런 말을 하면 교만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기자, 연출자, 제작자가 겁나지 않는다. 가장 겁나는 사람은 관객이다.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이시대의 관객들에게 ‘우리 인생을 이렇게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40주년이 되었을 때는 피아노를 죽도록 연습해서 제자들의 반주를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 한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어우러져 제자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나?”


백수진 기자 psj1214@hanmail.net
사진_월간 <더 뮤지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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