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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혜 예술감독의 끝없는 무용 사랑을 엿보다

 

한국 무용가들은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존재다. 한 명의 무용가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진정 말 그대로 벗겨내도 끝이 없는 양파껍질과 같다. 이는 한국 외에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경우다. 따라서 한국 무용가가 가진 직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용수, 안무가, 연출가, 프로듀서, 행정가, 경영자...

그러나 이는 한국 무용계의 어두운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예술가가 예술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해 개선해 나가고는 있지만 단시간 내에 해결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스템의 문제를 떠나 재능이 너무 많은 것을 탓할 순 없지 않은가?

그 너무 많은 능력을 갖춘 인물, 국립무용단의 배정혜 예술감독을 만났다. 워낙 오랫동안 단체를 끌어온 터라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웃었지만 질문에 답하는 마디마디에는 무용에 대한 강한 애착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 그런데... 무용 전공자가 아니다?!

배정혜 예술감독은 숙명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국내 안무가 중 뒤늦게 무용을 배워 안무자가 된 이들이 많다. 혹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궁금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계속 무용을 해왔다”고 말한다(그녀는 6세 때부터 춤을 췄다고 한다). 당시 대학에서는 무용과 체제가 여의치 못해 국문과를 가기로 결정한 것.

“처음엔 영문과를 가고 싶었지만 그 과를 가게 되면 하루 종일 영어 단어만 외우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일단 춤을 출 수 있고, 무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를 찾다보니 국문과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예술은 문학이 없는 분야가 없는 것 같아요. 단지 문학은 글로 표현할 뿐이고 무용은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표면적으로 국문과가 어떤 도움을 줬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내 춤에 영향은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요.”

- 타 분야에서도 인정받은 문학성

우선 일생을 무용계에 몸 담아온 만큼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응모를 하지 않아 많이 받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은 1977년 ‘그 해의 최우수작’ 으로 <타고남은 재> 선정, 1990년 한국무용가협회 ‘90 최우수 무용가’로 선정, 1994년 '자랑스런 서울 시민 600인상', 1995년 '7인의 평론가가 뽑은 우수 무용 작품'에 <두레> 선정, 월간 객석 ‘해방 50년 최우수 작품 선정 10개 부문’ 중 <타고남은 재> 선정, 1996년 한국 문인협회서 ‘가장 문학적인상 무용부문’ 수상 등 많은 분야에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문학적인상’은 조금 특별했다고 한다. 1996년 당시 ‘문학의 해’를 맞아 문인협회서 가장 문학적인 예술가를 뽑는데 무용부문에 배정혜 예술감독이 선정된 것이다. “상이야 받으면 다 기분 좋지만 ‘문학의 해’에 타 분야에서 그런 사람으로 꼽혔다는 게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네요.”


▲ 국립무용단의 ‘Soul 해바라기’


신념이 키운 리더십

오랜 시간 단체를 이끌어 온 만큼 리더십이 대단할 것 같다는 질문에도 역시 “나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무용단체를 이끌려면 다른 단체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고, 국가의 지원도 더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뿐인가? 50명이 넘는 무용수들도 살펴봐야 하는것이다. 그런데도 리더십이 없다니 참으로 의아했다.

“그런데 단장에게 신념이 있다면 단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나는 리더십은 없지만 춤에 대한 신념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신념이 있는 사람에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본인은 리더십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확고한 예술적 소신은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 무용계 어떻게 보는가?

“스타 무용수가 더 키워져야 해요.” 국내 젊은 무용수들에게 한국 무용계는 스타를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 무용계에는 아직도 보수적 성향을 지닌 예술가들이 많다. 그러나 배정혜 예술감독은 젊은이들의 주장에 한 술 더 뜬다.

“스타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타들은 월 천 만원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지금처럼 무용단 생활을 오래하면 연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스타로서 생명력도 더 연장될 것이고,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훨씬 더 많아질 것이란 지론이다. 정말 무용 스타가 전 국민의 스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국내 안무가들이 정말 힘들게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한 해에 무용공연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부 안무가들의 ‘자아만족’ 공연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자아만족을 위해 공연을 하려면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공연을 해야해요.”


▲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일 년도 채 남지 않은 퇴임

2000년부터 국립무용단에서 일했던 배정혜 예술감독은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 후의 계획에 대해 물으니 “계획은 없지만, 이 일을 할 생각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평생 춤을 춰 왔는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국립무용단은 나에게 덤이었다’는 말이었다.

“시립무용단 때부터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서 사표를 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국립무용단을 맡게 된 거죠. 그 때부터 이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럽지는 않은 것이죠.”

그러나 그 ‘덤’이라는 국립무용단에서 했던 작업에 굉장한 애착을 드러냈다. “‘Soul 해바라기’도 음악을 더 보완해야 해요. 소품이나 무대를 더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 의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데 하나하나 다 돈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또 올해 ‘밀레니엄 로드(가제)’라는 작품을 새로 올리는데, 전통을 가지고 조금은 현대적으로 바꿔 봤어요. 그게 전통을 계승하고 대중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밀레니엄 로드’ 중 한 작품은 한국의 탈춤을 젊은 안무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고 재밌게 만들어 보라고 맡겼다고 한다. 또한 이를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정착시킬 것이라고 하니 젊고 신선한 그녀의 철학이 작품에 대해 더욱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아직도 작품에서 수정 보완해야 할 일이 많다는 그녀가 일 년 후 홀가분하게 훌쩍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국립무용단의 웅장한 작품을 보고 싶은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배정혜 예술감독은 “올해 ‘밀레니엄 로드’와 ‘춤, 춘향’, ‘소울 해바라기’를 모두 다시 공연합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리며, 앞으로 대중들에게 더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며 국립무용단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했다.




뉴스테이지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사진_국립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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