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배우 박동하는 현재 로맨틱 뮤지컬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김종욱 찾기’의 주인공으로 열연하고 있다. 연기를 전공하던 그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춤이 너무 좋아서 무작정 무용과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춤이 많지 않은 최근 뮤지컬 추세 때문에 ‘무대에서 춤 춰본지 너무 오래 됐다’고 전한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쭉 피아노를 쳐 왔다는 그는 무대에서 ‘춤도 추고 피아노도 치는 게 꿈’이라고 한다. 뮤지컬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한 만큼 욕심 많은 배우임이 틀림없었다.
얼마 전 그는 뮤지컬 배우로 일본에 진출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향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약할 예정을 가진 다국적 배우이기도 하다. 뮤지컬 배우 박동하의 데뷔부터 시작하여 일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데뷔는 언제 하셨나요?
▲ 사실 저는 84년도에 뮤지컬로 데뷔 했어요. 제가 찾아서 간 길이 아니라 원래 아역 경력은 잘 얘기 안 했었는데, 일본에서는 아역 경력도 꼭 올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 했던 작품을 다시 되돌아 볼 기회가 있어서 지금에서야 말하게 된 거에요. 84년에 ‘사운드 오브 뮤직’의 둘째 아들 ‘프레드릭’ 역할로 출연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뮤지컬을 계속 할 인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흔치 않은 기회가 온 것 같아요.
▷ 발레를 전공했다고 들었는데요?
▲ 네, 안양예고 연극영화과를 다니다가 2학년 때 발레를 해서 중앙대 무용과로 진학하게 됐어요. 갑자기 무용을 하게 된 이유는 ‘제롬 로빈스’라고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안무를 하신 분이 있어요. 제가 그 분에 대해 환상을 많이 갖고 있었거든요. 그 영화와 무대 공연을 봤을 때 과학적이면서도 음악과 절충된 안무를 보고 춤이라는 것에 굉장히 큰 매력을 느꼈지요. 그 때 ‘내가 본격적인 프로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단 몸을 쓰는 데 기본이 되는 발레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연기 전공 수업이 끝나면 무용과 수업을 들어가서 배웠어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가능성을 보시고 저에게 집중하시게 됐고, 93년도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 거죠
▷ 갑작스럽게 발레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 어려웠죠. 발레라는 것이 기본이 중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악바리로 연습을 했어요. 항상 누구보다 먼저 가서 스트레칭도 했고, 오죽하면 피아노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비명을 지르면서 스트레칭을 했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죠.
▷ 연기도 하고 춤도 추고 기본기는 잘 준비 되었겠네요?
▲ 잘 모르겠어요. 요즘은 뮤지컬 추세가 오페레타 형식이기 때문에 대사도 거의 없는 작품도 있고, 노래 위주가 많잖아요? 그래서 춤 춰 본지 오래 됐어요. 2003년도 ‘싱잉인더레인’에서 조금 췄던 것 밖에 없네요. 정말 무대에서 춤 춰보고 싶어요. 춤추면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그래서 무용학과도 가고 한 건데, 요즘 추세가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네요.
▷ 지금 댄스 뮤지컬 ‘오르페오’도 공연되고 있는데 그런 작품은 하고 싶지 않나요?
▲ 그런 작품을 하려면 제가 두 달 정도는 발레 트레이닝을 해야 할 거예요. 물론 그런 작품을 하면 좋겠죠. 저는 장르를 구분하지는 않아요. 아까 말씀 드렸듯이 항상 공부하는 자세여야지 그 순간 배우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기로 피아노도 쳐요. 전공자처럼 화려한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쭉 해왔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무대에서 피아노 치는 캐릭터도 해 보고 싶어요. 그 꿈은 항상 가지고 있고 이루어 질것이라 생각해요.

▷ 일본에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처음에는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일본 무대는 메커니즘이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저런 무대에 한 번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한 2년 정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운이 좋게 일본에서 활동을 하게 된 거죠.
▷ 일본에서 공연할 정도면 일본어도 수준급이어야 할 텐데 얼마나 공부했나요?
▲ 꼭 다 갖춰져야지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배우들은 평생 공부하는 직업이라고 많이들 그러시잖아요? 일본이건 한국이건 저 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도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하시니까 저도 그냥 계속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었어요.
▷ 일본에서 한국 배우에 대한 분위기는 어떤가요?
▲ 아, 최고죠. 거기에서는 한국 배우하면 진짜 최고에요. 외모도 좋고, 기량이 좋고, 무엇보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노래를 참 잘 한다는 소문이 많이 나 있습니다.
▷ 처음 일본에 갔을 땐 힘들진 않았나요?
▲ 많았죠. 외국생활을 하면 누구나 처음에는 경비 등 피할 수 없는 관문이 많아요. 저도 그런 것도 느껴봤어요. 그리고 언어라는 것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인데 당장 배우로 활동해야 했어요. 가자마자 무리해서 안 되는 언어로 무대에 서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언어가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주위 분들이 참 많이 도와 주셨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 그만 활동을 접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항상 그럴 때마다 주위 동료들이나 선생님들이 ‘절대 너 안 보낼 것이다’라고 말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챙겨 주셨죠. 그런 친구들이 있으니까 일본 활동을 쉽게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양국에서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 후반기에는 일본 활동을 할 계획이 있습니다.
▷ 일본에서 활동할 때와 지금 활동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어떻죠?
▲ 한국에서는 커튼콜 할 때 끝나면 바로 나가거나, 끝났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해요. 그리고 관객들은 공연을 함께 플레이 하고 호흡하죠. 일본의 경우에는 공연 중에 거의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지는 않아요. 아마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10% 정도 밖에 호응하지 않고요. 하지만 커튼콜을 할 때는 열 번 이상을 한 적도 있어요. 그 때 너무 감동해서 좋게 봤다는 표현을 하는 거죠. 어디가 좋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듯이 그들이 표현하는 뉘앙스의 차이 정도일 뿐이에요. 하지만 뮤지컬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마니아의 형태도 비슷하고요.
▷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어떤가요?
▲ 다들 그런 걸 물어보시는데 저는 깊게 분석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일본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뮤지컬 붐이다’, ‘뮤지컬 시상식도 있다’, ‘창작 뮤지컬도 붐이다’ 라는 인식이 많아요. 일본은 창작 작품이 있긴 있지만 아직 붐이 일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국 작품에 굉장히 귀를 기울이고 있고, 한국의 좋은 작품은 일본에서도 하려고 많이들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하는 프로듀서도 있었어요. 시스템과 메커니즘 부분에서는 일본이 좀 더 안정화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도 좋은 부분은 많은 것 같아요.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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