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창무국제예술축제 30주년 공연에 초청된 산카이주쿠 무용단의 수장 유시오 아마가츄를 만나 그의 부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무용가 유시오 아마가츄, 평소 말 수가 적고 잘 웃지도 않는 그를 인터뷰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흔쾌히 자신의 호텔 방을 인터뷰 장소로 제안한 유시오 아마가츄는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캐시미어 스웨터만큼이나 따듯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장시간 인터뷰에도 끝까지 성실한 대화를 나눠준 세계적인 무용가 유시오 아마가츄, 춤을 떠나 인간적으로 그의 팬이 되어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시오 아마가츄의 진지한 말투와 의외의 천진한 미소, 정갈한 방과 세련된 향수 냄새까지 글로 옮기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하겠지만 춤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든 즐거운 일이므로.
(아래 글은 춤과 사람들 2007년 2월호 게재 글의 일부이다.)
▶ 반갑습니다. 이번이 몇 번째 한국방문이신가요?
△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1995년 김매자선생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 했었는데 이번에도 창무회 30주년을 기념하는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95년 첫 내한 공연<우네츠-경이롭게 서있는 달걀>은 좀 어려웠지만 이제는 한국관객들이 익숙하게 부토 공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 예전엔 소수의 무용수들로만 한국을 방문했어요. 그래서 작품의 전달이 함축적이었고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일곱 명의 무용수가 출연하고 무대 세트와 조명 등 초연 때 그대로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무용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표현 수단이 많아졌다는 것이니 한국 관객의 이해가 쉬워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 “부토는 춤인가?” 하는 논의도 있는데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 물론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토의 1세대 히즈가타 타츠미선생과 오노 가즈오 선생 모두 무용가였고 무용가에 의해 만들어진 부토는 분명 춤입니다. 그 후 부토가 발전해 오면서 독일의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지요. 부토가 유명해진 지금 독일의 탄츠티어터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러한 연극적 요소 때문에 춤이냐 연극이냐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 연극에도 속하면서 좀 더 광범위하게 장르를 규정지으면 이득이 많을 텐데 굳이 춤이라는 장르로 고집하시나요?
△ 부토의 장르는 분명 춤이고 연극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연극은 희곡이 있어서 다른 사람도 그 작품을 만들어 공연할 수 있지요. 즉 사회를 향해 열려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부토는 덜 열린 측면이 있어요. 아무나 각본을 가지고 공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연극에서의 각본이 무용에서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무용작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무용이라는 것은 음악에 철저히 따르거나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계승하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부토도 마찬가지고요.
▶ 부토의 1세대가 즉흥성을 많이 띄고 있었다면 2세대인 산카이 주쿠는 철저히 계산된 안무로 보입니다. 부토의 변화인가요?
△ 1세대 부토에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히즈가타 타츠미선생과 오노 가즈오 선생이 있는데 그 중 오노 선생은 즉흥성이 강한 작품을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부토가 즉흥성이 강했다는 평이 있나봅니다. 그러나 히즈카타선생은 동작을 철저히 계산된 안무에 따라 연결했어요. 두 분의 작품 모두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고 동시대에 공존했다고 봅니다. 저는 히즈카타 선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산카이 주쿠의 작품들은 철저히 계산된 안무에 의해 춤을 춥니다.
▶ 부토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성의 구분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안무할 때 성별을 감안하고 하십니까?
△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몸 그자체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산카이주쿠의 무용수들은 전부 남성뿐이지만 원래 남성을 고집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1975년부터 1년간 워크숍을 가진 후 30명의 남녀 무용수를 뽑았습니다. 1년이 지난 후 남은 사람이 남자 3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만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거죠. 최근에 미국에서 워크숍 후 안무를 해야 하는 기획에 초대되었었는데 그때는 남녀 모두를 위해 안무했었습니다. 물론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죠. 원래 다른 무용단을 위해 안무하지는 않으니까요.
▶ 산카이 주쿠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차이와 공통점 즉 이질(異質)과 동질(同質)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질은 문화의 차이를 말하는데, 외모뿐 아니라 여러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문화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부토를 하는데 있어서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아주 우리에게 중요한 점입니다. 동질이 뜻하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몸이라는 공통점을 말합니다. 몸이라는 공통점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이지요.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적절히 흔들어가면서 작업하는 것이 산카이주쿠의 방식입니다. 관객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몸의 보편성만큼이나 감정(희로애락과 같은)도 상통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단지 문화에 따라 그 표현 방법이 다른 것뿐입니다. 저의 작품을 보면 일반관객들은 처음에 신기하다고 느낍니다. 그 후 서서히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슬프다고 느끼는 등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발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지요. 극장이라는 곳은 이런 만남을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한국에서 3세대 부토 ‘살바닐라 컴퍼니’(2005년), ‘다이라 쿠다칸’의 젊은 안무자 구모타로의 공연(2006년)이 있었습니다. 앞선 세대의 부토와 달리 고통스럽거나 심미적이라기보다 엽기적이고도 코믹했는데 이런 부토 3세대의 작품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해외 체류시간이 많기 때문에 평소 일본의 젊은 부토 공연을 볼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토요다사가 주최하는 무용상 심사를 맡아 집중적으로 공연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부토 안무자들에게서 컨템포러리댄스 쪽으로 다가가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토가 춤 인만큼 안무자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작품의 폭이 넓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젊은 안무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남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는 것 보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영감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 3세대의 부토가 그렇다면 그 후 미래의 부토는 어떻게 되리라고 보시나요?
△ 잘 모르겠지만...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안무자들의 자질과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 합니다. 부토의 다양화가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 부토를 악평하는 사람들은 “하루면 배울 수 있는 춤”이라고도 하는데 부토의 움직임 메서드는 무엇이며 어떤 트레이닝을 하고 있습니까?
△ 나는 부토 속에서 표현하는 것을 나의 평생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의 부토를 찾는 것은 평생 걸리는 일이지요. 타인의 부토와는 다르며 하루 이틀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토의 춤 메서드는 “중력과의 대화”입니다. 사람과 중력의 연관성은 힘을 주고 빼는 것을 주축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다른 무용이 어떻게 힘을 주는가를 배우는 것이라면 나의 부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힘을 뺀 상태에서 발바닥과 땅을 느끼는 것부터 일어서는 것 까지 하나씩 힘을 넣도록 가르칩니다. 갓난아기가 일어설 때 까지는 1년이 걸리는데 태어나서 조금씩 자라다가 한 순간에 서고 걷게 되지요. 부토에서도 비슷한 단계를 거칩니다. 우리는 잠잘 때에 비로소 갓난아이처럼 힘을 뺄 수 있기 때문에 부토를 처음 시작할 때 그것을 느끼도록 하고 있어요. 쉬운 것 같지만 인식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요. 발레와 같은 무용을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힘들어 합니다.
▶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는데 유럽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까?
△ 해외에서의 활동을 통해 좀 전에 말한 이질과 동질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파리로 진출하기 전인 80년대 이전에는 나 자신의 체험 위주로 개인적 영감이 소재가 되었었지만 파리진출 후 개인에서 탈피해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 외에 나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습니다. 산카이 주쿠를 통해 20년 이상 2년에 한 작품씩 신작을 발표해오고 있는데 매 공연 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파리 사람들의 시각에 맞춰서 작품을 발표해왔다면 산카이 주쿠는 벌써 외면당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파리 관객들은 오직 안무자의 창작성과 오리지널리티에 주목합니다. 예술가는 언제나 자기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 대중성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 받는데 산카이 주쿠의 어떤 면이 서구 관객들에게 어필된다고 보시나요?
△ 모습은 다르지만 감정의 원형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1980년 파리 초연 당시 단지 희귀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하여 41개국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서서히 느끼는 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개인에 따라 다른데 희귀하다는데서 끝나지 않고 나의 느낌과 공유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는 것입니다. 흰 칠을 한 무용수들이 그저 희귀하게만 여겨지는 데에서 끝났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겠지요. 산카이 주쿠는 한번 초청된 극장에 다시 초청되어 공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현재 단원들에 대해 궁금합니다. 1975년 창단 이후 얼마나 바뀌었지요?
△ 현재는 저를 포함하여 모두 아홉 명의 단원이 있습니다. 창단이후 세 명 또는 다섯 명으로 활동해오다가 최근 증원했지요. 1975년 창단 때부터 함께해온 단원은 1명뿐입니다. 가장 연장자인 나(57세)와 함께 50대이지요. 무용수의 고령화 때문에 힘들어서 젊은 무용수들을 충원하다보니 40대 단원은 없고 30대 몇 명과 함께 최근에 뽑은 스물 서너 살의 단원들이 있습니다.
▶ 단원은 어떤 기준으로 뽑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적 또는 국적의 제한을 두나요?
△ 산카이 주쿠의 무대는 화려하지만 연습은 매우 소박합니다. 우리 연습의 중요한 특징은 거울이 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확인하지 않고 감정 속에서 느낌으로 기억해야만 하기 때문에 높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인내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무용단의 단원으로써의 요건은 인내심과 집중력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현재 무용을 전공한 사람은 물론 힙합을 추던 사람도 단원으로 있습니다. 그밖에도 산카이 주쿠에는 대학에서 철학이나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다가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국적에 대해서는 특별히 고집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일본인으로 국한되었습니다. 1980년대 유럽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오디션을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았지만 소인원으로 공연하는 원칙을 지키고 싶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는 부토에 대한 인식이 굳어져서인지 외국인들이 지원하지 않더군요.
▶ 얼마 전 칠레의 부토공연을 보았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부토가 성공을 거두었고요. 남미의 부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1977년 오노 선생께서 아르헨티나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 계기가 아르헨티나의 부토에 영향을 미쳤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제 생각은 부토의 입구는 어디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출구로 나갔을 때 서로 다른 꼴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다른 스타일이 나오더라도 이해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어떻게 인정받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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