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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이 만난 무용가 2] 로드리고 뻬델네이라스(Rodrigo Pederneiras)

 

2006년 10월 브라질을 대표하는 무용단 그루뽀 코르뽀(Grupo Corpo)가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뻬델네이라스(Pederneiras) 형제들에 의해 1975년 창단된 그루포 코르포는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후원금을 받으며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성장했다. 현대무용의 불모지 브라질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위치에 오기 까지 이 무용단의 중심에는 예술가적 감성은 물론 사업가, 교육자의 능력을 함께 가진 로드리고 뻬델네이라스가 있다. 그는 삼바, 카포에이라, 보사노바, 볼룸댄스 등의 춤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이러한 특징들을 근본적으로는 현대적인 신체 언어로 재해석하여 내면세계로 전달하고자 한다. 브라질의 다양한 거리의 춤에서 영감을 받았던 그의 작품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데 그는 하이든, 쇼팽, 스트라우스, 브람스 등의 음악을 차용하면서 특유의 강렬함을 더하고 재구성하여 ‘브라질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독특한 춤 특징들을 이끌어내는 무용가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를 만나 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머리, 스페인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속삭이듯 부드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그는 무엇 보다 아기 같이 작고 통통한 손을 가졌다. ‘이 손으로 그 우아한 <레꾸오나>를 안무했단 말인가?’ 그의 손이 밤벌레 같다고 생각할 때 쯤 “손바닥을 마주대볼까요?” 그가 제안했다. 손등 보조개까지 있는 그의 손은 필자의 손보다 마디 하나가 작았다. 그렇게 즐거우면 마음껏 보란 듯이 그는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미소 사이로 가끔 스치는 칼날 같은 눈빛과 함께.

(아래 내용은 월간‘춤과 사람들’2006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 ‘그루뽀 꼬르뽀’라는 무용단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 꼬르뽀 라는 것은 신체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무용의 도구를 말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 단어는 단합, 협력, 구성원간의 믿음...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용단 이름을 그루뽀 꼬르뽀라고 했을 때 단합, 상호간 협력을 염두에 두어 두었습니다.

▶ 꼬르뽀그루뽀 무용단은 당신이 창단했더군요. 창단 배경과 첫 공연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 예. 제가 저의 형제들,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모두 6 명이서 했지요. 첫 공연은 <마리아, 마리아>라는 작품 이었는데 저도 무용수였고 저의 가장 어린 동생도 출연했습니다. 이건 오스카르 아라이스 안무에 밀튼 나시미엔또 음악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돈을 벌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정직한 여인의 이야기 였어요. 오스카르 아라이스는 나의 안무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큰 영향을 주었지요.

▶ 무용단의 단원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 단체 인원은 총 30명이고, 무용수만 22명입니다. 그런데 협업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60명 규모가 됩니다. 우리 무용단은 브라질을 중심으로 하고는 있지만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놓고 있어요. 물론 한국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 기술진에 독일인이 한 사람 있는데, 전에도 우리는 푸에르토리코인, 쿠바인, 프랑스 인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스텝으로 둔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공연을 가는 도시에서 무용수업을 하고, 좋은 무용수들을 눈여겨보았다가 빈자리가 있으면 연락을 합니다. 서너 작품을 같이 해보고 계약여부를 결정 하지요.

▶ 단원들은 모두 월급제 인가요? 무용단의 재정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 월급제입니다. 단원들에게 일 년에 13개월 치를 지급하고, 물론 휴가도 주고 있어요. 현재 우리는 페트로브라스 석유회사라는 후원사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 소요경비의 50%를 석유회사에서 지원해주고 있고, 우리는 활동을 통해 나머지 50%를 벌어야 합니다.

▶ 당신이 무용단을 창단했을 때 브라질의 현대무용은 어떤 수준이었나요? 당시 브라질의 현대 미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했었는데 무용 쪽은 어땠나요?
△ 단 하나 주립 무용단이 있을 뿐,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미술과 춤 간에 대조적인 현상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어디에서나 춤은 항상 뒤늦게 발전하지 않았나요? 춤이 예술 발전에 앞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 우리 무용단이 브라질 현대무용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변화 속의 한 부분이었어요. 우리 무용단은 다른 무용가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마도 무용가들이 무용단을 어떻게 창단하고 운영하는 지를 우리에게서 배웠을 꺼라 생각합니다.

▶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셨고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당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부를 했더군요.
△ 저는 열다섯 살 때부터 춤을 추었는데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고 기억해요. 그 전엔 클래식 기타, 풀룻 등을 배웠기 때문에 아마 무용가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되었을 겁니다. 저는 리오데 자네이로, 벨로 오리존테,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무용을 공부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랜 기간 있지 않았지만 그곳은 내 무용 공부에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오가며 선생님들을 찾아다녔지요. 무용수로서 나의선생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프레디 로메로, 따치아노 에스꼬바르가 있어요.

▶ 당신의 첫 안무작을 기억하나요?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만들었나요?
△ 1978년에 한 소품인데 <깐따레스>라는 것입니다. 그 해 우리가 조그마한 극장을 만들었는데, 개막 공연을 위한 작품이었어요. 그 후 대략 40분정도의 작품을 약 30개 쯤 만든 것 같습니다. 그루뽀 꼬르뽀 무용단 뿐 아니라 베를린 발레단, 독일 오페라단, 리용 오페라단, 캐나다 무용단, 스위스 무용단 등.. 여러 무용단을 위해서 안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안무해주는 것이고, 저의 무용단을 위해 안무한 것은 외국에 팔지 않습니다.

▶ 당신에게 안무란 무엇인가요?
△ 안무는 열정이라고 생각 합니다. 사실 나는 내가 만든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안무는 내가 좋아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편안하다고 느낄 때 강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비공식적이고 비형식적인 형태로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친구들과 형제들과 앉아서 주로 얘기를 합니다. 대화에서 얻지요. 저하고 세 작품의 음악을 공동 작업한 한 음악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루뽀 꼬르뽀와 작업을 하는 사람은 먼저 부엌부터 들려야 한다.”고요. “함께 밥 먹고, 이야기 하고...” 이것이 나의 작업형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당신의 창작품을 분류해보면 시기별로 선호하는 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첫 작품 <깐따레스>를 할 때는 주제가 슬픔이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주제에 관한 취향이 많이 변했습니다. 줄거리가 강조되는 역사적인 주제는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객관적인 주제보다는 주관적인 주제를 좋아해요. 현재에는 극적인 요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 항상 새 작품을 위해 작곡한 음악을 사용한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마리아 마리아>에서도 <깐따레스>에서도 그랬지요. 1992년부터 항상 새로 작곡된 음악만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브라질 작곡가들 것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클래식 음악도 사용했었어요. 새 음악만 고집하는 이유는 기존의 곡 보다 말 할 수 없는 묘미가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작곡가들의 아이디어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때로는 무음악으로도 작업을 하지만 길게 사용하지는 않아요. 적절한 길이의 무음악은 강조의 효과를 보지만 엄격히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브라질 인으로서 당신의 춤은 어떤 것입니까? 브라질 민속춤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요?
△ 80년대 후반에 나는 브라질 사람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남쪽에서 북쪽까지 온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에 참 인상적인 것이 있었어요. 브라질의 민속춤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 것인데 모든 움직임이 엉덩이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요소를 활용했고 그것에 대해 쓴 것을 많이 조사했어요, 삼바에 영향을 받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대답은 “예스”입니다. ‘차차부’처럼 혹은 ‘거리의 춤’처럼 모두 나에게 영향을 주었지요.

▶ 당신의 대표작 중 <레꾸오나>의 사진을 보니 당신이 브라질 민속춤에서 찾았다는 움직임 언어는 보이지 않던데요.
△ 그래요. 그 작품은 별개에요. 우리 작업 방식에서 하나의 괄호 같은 작품이에요. 열두 개의 듀엣으로 된 그 작품은 브라질적인 이미지가 없는 것으로, 안무 동기에는 ‘레꾸오나’라는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브라질의 유명한 예술잡지의 편집인이 저한테 레꾸오나의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선물해주었는데 들어보니 정말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죽고, 나는 테이프를 잃어버렸어요. 제가 그 음악을 다시 찾는데 15년이나 걸렸답니다. 2002년 산 프란시스코의 음악 골동품상에서 그 음악 CD를 겨우 구했고 6 개월 후 호주의 한 곳에서 다른 레꾸오나 CD를 구했어요. 저는 금방 작품을 만들었지요. 음악은 사랑, 배반, 복수, 슬픔 등에 관한 노래입니다.

▶ 당신의 작품에 대한 반응들은 어떠했나요. 당신을 브라질이라는 나라와 같이 인식하던가요?
△ 네 다들 ‘브라질 같다’고 하더군요. 브라질 사람들은 특별한 됨됨이와 행동거지가 있어요. 문화의 혼합, 그건 브라질의 커다란 힘이 되는 요소지요. 내가 브라질과 함께 인식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것입니다.

▶ 지금까지 움직임에 대해 얘기 했는데 철학적으로는 어떤가요? 말하자면 움직임 뿐 아니라 브라질의 정신 혹은 민중적 철학이나 당신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고자 하시나요?
△ 때로는 남의 철학을 사용해요. 작품 <파라벨로>를 예를 들면 ‘파라벨로’라는 것은 작품에서 태양을 상징합니다. 아주 척박한 지역에서 태양은 작물을 망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척박한 땅의 주민들은 아주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요. 나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무기인 parabelo 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다른 나라/사람의 철학을 사용하지만 나를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져서 나만의 춤으로 표현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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