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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안나 까레니나> 공연을 위해 내한한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을 만나 그의 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년의 에이프만은 검은 니트로 감싼 후덕한(?) 풍채의 몸과 대조적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으며, 한국 도착 두 시간 만에 가진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깍듯한 매너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안무가 에이프만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 시작부터 그의 예사롭지 않은 눈썰미에 적잖게 당황한 일이 생겼다. 2년 전 분장실로 통하는 복도에서 소개 받고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인 필자를 보자마자 에이프만은 “우리 만난 적 있죠?” 라고 했다. 그런데... 필자가 기억하지 못하고 “아니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아니요. 우린 분명히 만났어요. 2년쯤 전에...”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한국에서 공연된 그의 작품 모두를 봤다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며 멋쩍은 악수를 청하고, 이내 춤이야기를 시작했다.
( 아래 글은 무용전문 월간지 <춤과 사람들> 2009년 5월호에 게재된 글이다. )
▶한국에 첫 선을 보인<안나 까레니나>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 <안나 까레니나>는 여자의 비극입니다. 한 남자를 사랑한데서 오는 비극인데 그 사랑은 그녀를 파괴하는 욕망이고, 질병과도 같은 욕망의 비극적 결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발레단은 몇 가지 면에서 여타의 발레단과 차별화된 특징이 있어요. 무용수 구성에서나 기량, 테크닉 면에서도 특별함을 보여줄 수 있지만 저는 <안나 까레니나>작품에서 특별한 감정과 에너지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고 싶었습니다. 관객은 이 작품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쓴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요기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강한 느낌을 받고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
▶당신의 작품에는 대본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 없습니다. 그런데 <안나 까레니나>처럼 원작이 있는 경우 시나리오를 특별히 쓸 필요가 없지만 사실은 그것이 더 어렵습니다.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더 흥미롭고 색다르게 느끼도록 안무해야하기 때문에 저는 저만의 텍스트를 새로 씁니다. 그 외 창작물들 모두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안무 하는데, 마음에 드는 대본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도 저의 안무의도를 저만큼 잘 서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신작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 최근에 신작을 발표했어요. 3월에 발표한 작품 <오네긴-On Line >입니다. 푸쉬킨의 소설 ‘오네긴’을 모티브로 하지만 저만의 버전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On Line’을 붙인 것은 현대인으로써의 오네긴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는데 이런 휴식기에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묘기에 가까운 파트너링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훈련을 받나요?
△ 저의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저의 안무에는 난이도 높은 동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단원들은 입단 후 바로 출연할 수가 없어요. 특별한 교과과정은 없지만 1년간 견습생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씩 공연 연습기간 동안 배웁니다. 곧 무용학교를 설립할 예정이고 그곳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치려고 합니다. 제 춤의 테크닉이 새롭고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무용수의 수준이 높은 것을 보면 충분히 그들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들의 키가 상당히 큰데 무용수 선발에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 키가 큰 무용수를 우선으로 뽑는 것은 사실입니다. 러시아 전역을 돌며 그들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여성은 170센티 이상 남성은 185센티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춤은 몸의 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선이 길면 길수록 표현이 더 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령은 제한을 두지 않는데 현재 최연소 단원이 17세, 최고령 단원이 27세입니다. 보통 이 정도 나이의 무용수들이 제 작품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안무에 있어서 무용수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요?
△ 무용수들은 제 안무의 해석자들입니다. 제가 모든 동작을 다 만들어내지만 무용수들의 의견이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작은 무용수들이 희망하는 각도나 방향으로 조금 수정하여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더 좋은 그림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용들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 없이 안무가 완성되면 이미 그들은 안무를 소화할 능력을 넘어서있기 때문에 수정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무용수들은 저의 안무 조력자라고 생각 합니다.
▶1977년 무용단 창단 이래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자생력을 갖고 있었나요?
△ 창단 이후 저의 무용단은 러시아의 세 단계의 과도기를 함께 했습니다. 처음 10년(77-87)은 소비에트 시절이었는데 감시가 많았고 무용단의 춤 성향이 소련의 기준에 맞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공연을 컨셉으로 하여 무용단을 경제적으로 유지했어요. 그 다음 10년은(87-97) 페레스트로이카 시절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시기였고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자유 지향적이었던 분위기로 인해 해외 공연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곳으로 진출하여 인정받기 시작 했습니다. 세 번째 과도기는 새로운 러시아로 도래하는 시기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은 상태여서 현재 자본이 많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 돈들을 창작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죠. 지금은 무용단의 작품 수준이 춤 테크닉과 함께 높은 수준에 이르러 여러 국가와 기업의 자본이 모이고 있지만 지난 30년간 (많은 부분에서 지지해준 후원자였지만) 러시아 정부지원금은 미미했습니다. 저의 무용단은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예술활동을 통해 충족해왔다고 기억합니다.
▶러시아라는 출생 배경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 저는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배우며 자란 러시아 사람입니다. 제 피 속에 러시아 문화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에서 저는 현대문화의 대표자로 평가 받지만 사실 제 작품들은 철저하게 러시아 전통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의도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음악에 있어서도 대부분 차이코프스키 등의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을 많이 사용하는데, 러시아와 상관없는 음악을 사용할 경우에도 러시아적 정서가 작품에 묻어난다고 생각 합니다.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셨죠? 안무가가 꿈이었나요?
△ 제가 초등학교 1학년 특별활동을 위해 클럽에 들어야 했는데 부모님께서 뜻밖에도 무용반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아마 제가 활동적인 어린이여서 그랬던 것 같은데, 제 춤 소질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무용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죠. 의식 없이 어린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지만 안무하고자하는 바람과 안무의 가능성을 일찍 깨달았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 됩니다. 13살에 처음 안무를 시작했고 16살에 작은 무용단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춤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제가 그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족의 이해가 필요한 직업인데, 가족가운데 무용가는 없나요?
△ 아버지는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의사였습니다. 집안에서 무용가는 제가 처음입니다. 지금 14살된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무용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특히 저를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에 발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 부인은 솔리스트 출신의 무용 교사입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제 꿈을 이루는데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를 이해해 줍니다.
▶21세기 러시아 발레를 전망해 본다면 어떨까요?
△ 저는 현재 러시아 발레는 위기에 봉착한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그렇다고 봐요. 스타급의 무용수와 안무가가 새롭게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락세에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비관하고 비판하거나 무언가 시도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는데 저는 후자를 택하고 싶어요.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나 후대에 발레가 영향력 있는 예술이 되기 위해 무용원을 설립하려합니다. 차세대 교육을 위한 터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발레전용 극장을 설립하는 중인데 고전에서 현대까지 모든 발레공연이 이루어지게 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스타 안무가와 무용수가 나타날 것이고 그 층이 두터워짐으로 러시아 발레가 세계적으로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한국 무용가의 작품을 보거나 관심을 가진 적이 있나요?
△ 한국 방문이 매번 짧았고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르쳤던 한국 무용가 백영태씨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본적도 있어요. 한국에 대해서는 무용분야에서 발레의 공헌도가 크다는 것과 많은 관객들이 클래식 발레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 거의 모든 대학에 무용과가 있고, 매년 많은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 등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유럽, 미국과 달리 진심어린 관심 같아서 이런 모든 현상이 저에게는 기쁘게 다가옵니다. 올해 9월 한국 국립발레단과 <차이코프스키-사랑과 죽음의 비밀>작품의 협업 계획이 있습니다. 3번째 함께하는 작업인데 한국에 저의 팬층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니 기쁩니다.
▶한국발레에 조언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한국 무용계는 잘하고 있고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고전발레와 현대발레가 고루 발전하고 있고 국가의 지원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조기교육과 전문가 양성기관이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인의 무용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계속되길 바랄 뿐입니다. 한국에서 축구와 야구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아는데 무용도 그만큼 열중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계층이 교류할 수 있고 언어 없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용을 이해의 언어이고 나아가 글로벌 시대의 ‘미래의 언어’라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전망 있는 발레가 러시아에서 만큼 한국에서도 사랑받길 바랍니다.
▶춤은 당신 인생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 춤은 저에게 특전이고 행운입니다. 왜냐하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저만의 언어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안무해왔고 춤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예술을 통해서 전 세계와 교류할 수 있고 그러한 능력이 제게 있다는 것에서 저의 운명에 감사합니다. 유럽, 미국, 아시아 사람들이 저를 이해한 다는 것은 제 인생을 넘어서는 것이고, 이 춤이란 것이 저로 하여금 세계인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춤은 제 인생의 특전입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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