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쓰릴미’는 ‘그’를 원하는 ‘나’와 조금 더 강한 쓰릴을 원하는 ‘그’ 간에 오가는 심리 게임을 다룬 작품이다. 실제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토대로 동성애, 유괴, 살인 등의 소재와 단 한 대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음악 등 기존의 뮤지컬 문법과는 다른 매력을 발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5년 연속 무대에 오르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쓰릴미’ 속 ‘나’는 우물 같다. 상단부는 빛을 투영하는 맑은 물이 있지만 그 속은 어둠으로 차 있다.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속은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고, 부족함이 없이 자랐으며, 심지어 천재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그’를 그토록 원했던 것일까.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그’를 가지고자 했던 ‘나’는 어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주어진 길은 단 하나, ‘나’의 선택은 오직 ‘그’

뮤지컬 ‘쓰릴미’ 속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의 행동과 생각의 출발은 ‘그’이기에 그렇게 정의된다. ‘그’는 ‘나’의 생각의 중심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다. ‘나’가 34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하며 끝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나’는 ‘그’가 주는 모욕과 굴욕도 달게 받으며, ‘그’의 살가운 손짓 한 번에 녹아내린다. ‘그’의 살인 계획에 동참하는 것도 오로지 ‘그’ 때문이다. 여기서 바로 뮤지컬 ‘쓰릴미’의 가장 큰 매력, 해석의 재미가 드러난다. ‘나’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와 연출의 해석에 따라 ‘나’와 ‘그’ 간에 오가는 감정이 전혀 다른 종류의 것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아’다. 잘생긴 얼굴, 하버드 로스쿨은 우습게 갈 정도의 지적 능력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정한 옷매무새,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점은 누구든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됐을까. ‘나’는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는 소년이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단정한 외모에 남들보다 두 세배는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 한 가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다.

‘그’는 ‘나’만큼 뛰어난 지능을 가진 소년이다. 오만하고 도도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을 갖고 있다. ‘나’는 한순간에 그에게 매료된다.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 거침없는 태도에 사로잡힌다.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도 ‘나’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는 잡히지 않는다. 안아 달라고, 만져 달라고 애원하는 ‘나’를 밀쳐 냈다가도 어느 순간 곁으로 다가와 ‘나’에게 손을 뻗는다.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나’는 끊임없이 휘둘리면서도 점점 더 ‘그’를 갈구하게 된다.

‘나’는 ‘그’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세상 모든 것이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도 ‘그’만은 닿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 스스로 말했듯 ‘그’를 갖기 위해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주어진 길은 단 하나, 오직 ‘그’ 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와 ‘나’ 그리고 유괴당한 소년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야 말았다.

새로운 연출의 해석에 자신만의 ‘나’를 입힌, 배우 김재범

김재범은 섬세한 연기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는 배우다. 그는 2010년 뮤지컬 ‘쓰릴미’와 첫 인연을 맺은 뒤 2011년 ‘쓰릴미’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2011년 ‘쓰릴미’의 가장 맏형으로서 든든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2010년에 이어 ‘나’를 맡아 열연 중이다. 작년 ‘쓰릴미’ 출연 당시 디테일한 연기로 ‘나’를 보여줘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1 ‘쓰릴미’에서는 달라진 연출 노선에 자신의 캐릭터를 더해 작년과는 또 다른 ‘나’를 연기했다. 공연 전체의 완급 조절은 물론 깊은 표현력으로 관객에게 ‘나’의 감정을 확실히 전달해 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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