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는 준석에게 차였다. 그냥 차이기만 했느냐고? 절대 아니다. 보증금 빼고 바락바락 모았던 3,000만 원을 덥석 쥐어줬다. 그것도 모자라 준석의 애까지 가졌다가 중절수술을 했다. 생애 첫 키스, 관계, 순정까지 모두 바쳤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다른 여자와의 ‘청첩장’이다. 그것도 심지어 정말 자주 만나던 언니와 결혼을 한단다. 시후는 이제 눈앞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시후는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려고 찾아가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한다. 행복해 보이는 신부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시후가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행동으로 받을 신부의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버림받은 사랑을 찾기 위해 혹은, 미련과 고통을 떨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시후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신부의 옛 애인이자 준석과 가까운 사이였던 정훈에게 접근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자는 시후의 제안은 맹랑하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정훈도 결국 술 한 잔에 그녀와 몸을 섞는다. 시후는 그렇게 정훈과의 하룻밤으로 자신에게 남아 있는 준석의 흔적을 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감정 없는 섹스로 지나간 사랑을 털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결국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원래 ‘처음’이 힘들고 어려운 법이다. 처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에 던졌던 시후에게 준석의 배신은 자기 인생 최고의 고통이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정훈의 몸과 마음에 대해 그녀는 진심으로 위로를 받는다.

흔히 남자는 지나간 사랑을, 여자는 지금의 사랑을 품고 산다고들 한다. 극 속에서 시후는 정훈과 자기 위해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이 과정을 통해 시후는 정훈에게 끌리는 ‘지금’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시후에게 ‘지금’ 이 남자와 자고 싶다는 열망이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에서 시후는 ‘지금’을 사는 여자다. 사랑에 버림받아 죽으려 했고, 버림받은 사랑 때문에 한 남자와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그녀는 다시 살기로 했다. 하지만 정훈은 실험을 하나 제안한다. “1년 안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인연인 거야”라고 말하는 정훈의 제안을 시후는 말없이 받아들인다. ‘지금’을 사는 시후에게 ‘1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그녀는 왜 정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시후는 첫사랑의 실패를 통해 기다림을 배운 것이다. 정훈은 말한다. “사랑은 네가 먼저 그렇게 다가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시후는 아마도 그 말을 가슴에 담아뒀을 것이다. 그녀가 언젠가 ‘지금’의 사랑을 만났을 때 기다려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시후는 ‘지금’을 살며 ‘기다릴 줄 아는’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됐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분에 당선돼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자극적이고 노골적이지만 솔직담백한 연애담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재준 연출가는 이번 공연에 대해 “지난 시즌에 비해 개연성이 생겼다.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계절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도 개선됐다. 배우들과 함께 상의하며 보완해 나갔다”고 말했다.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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