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졌으나 고독하다. 사랑을 갖지 못한 자는 공주여도 아름답지 못하다. 친구로 여겼던 여자와 사랑하는 그의 열정적인 사랑 앞에 다시 한 번 비참해질 뿐, 그녀가 설 곳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악을 택한다. 다른 누군가가 비극에 처할지언정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욕심을 꺾지 못한다. 머물러 있을 곳이 없던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드라마에서 사랑에 버림받은 그녀들은 늘 2인자 악역이다.

뮤지컬 ‘아이다’의 공주 암네리스 역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련의 여주인공. 드라마마다 등장하는 식상한 삼각관계 그 사이에 악역이다. 그러나 암네리스는 달랐다. 암네리스는 화려하고 끝까지 아름다웠다. 비록 사랑을 잃었고, 연인을 죽여야 했지만 끝까지 숭고했다. 그리고 군주다웠다. 암네리스는 드라마의 2인자 악역 공식을 스스로 깬다. 그녀 때문에 뮤지컬 ‘아이다’는 식상하고 유치한 멜로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네리스는 극에서 가장 변화가 큰 인물이다. 초반부 그녀는 ‘딱’ 이집트의 공주다. 모든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이집트의 하나 밖에 없던 공주이기에 화려하고 허영심이 많은 건 당연하다. 화려한 무대장치, 음악과 함께하는 패션쇼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명 깊다. 이집트 공주다움이 가장 극대화되는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극이 흘러가면서 암네리스는 공주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자신의 내면에 공감해주는 아이다에게 자연스레 마음을 주고, 라다메스를 향한 외로움은 저절로 부각된다. 공주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과 고뇌, 외로움과 사랑을 보인다.

극이 결말에 도달하면 그녀는 격정적으로 변한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와 아이다에게 함께 죽는 것을 선포한다. 라다메스의 결혼 결심이 아이다 때문임을 깨달았던 그녀는 비참해지고 곧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세상에 발각되면서 암네리스는 한 번 더 무너진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암네리스는 둘의 사랑을 배려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의 비극을 숭고함으로 바꾼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기원이자 자신의 사랑을 훌륭히 지켜내는 파라오의 위엄을 보여준다.

암네리스의 감정적 변화는 개연성도 높다. 너무도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아이다와 라다메스보다 어쩌면 훨씬 더 극의 몰입이 잘되고 이해도 쉽다. 그녀의 감정은 관객에게 전달도 잘돼 커튼콜에서 큰 박수갈채를 받는다. 분명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이 극에서 핵심이지만 암네리스가 그 방점을 찍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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