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드라마가 존재한다. 관객들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감정과 정서를 통해 사랑을 읽고, 꿈을 엿본다. 바이올리니스트 함지민은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순간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같은 곡이지만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르고, 같은 곡이지만 연주하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고 이입하는 감정의 내용이 다르다. 우리가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위로 받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오선지 위에 놓인 음표들은 더 이상 단독적인 한 음을 지칭하는 표식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작곡가는 음의 높낮이를 통해 하나의 연속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형상화시키지만, 그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감동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이 두 가지가 한 접점에서 만날 때 연주자도 관객도 모두 만족하는 공연에 가까워진다. “이번에 리사이틀을 갖는데 곡 선곡은 제가 직접 했어요. 시대별로 구성했고, 관객들이 듣기 어렵지 않은 곡들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어렵지 않은 ‘클래식’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대곡으로 손꼽히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물론이고, 드보르작의 로망스, 바하의 오르간 곡 등 클래식을 가까이하지 않던 관객들도 방송이나 CF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곡들도 포함됐다. “가을이잖아요. 드보르작의 로망스는 가을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외롭고 쓸쓸함이 잘 표현돼있어 오프닝 곡으로 선정했어요.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나, 유명한 몇몇 곡들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께 듣기 좋은 음악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그만큼 연주자로 사는 삶은 바쁘고도 치열하다. 자신과의 싸움이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건성까지도 포함한다. 선화예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던 그녀는 타지에서의 외로움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 명확하게 알고 있던 연주자였다. 홀로 떨어져 있는 시간들은 힘들었지만 “악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스스로를 지탱해준 힘이 되었다고.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생각해봤어요. 바이올린을 더 잘 연주하고 싶고, 더 좋은 선생님께 배워보고 싶었죠. 외로움 보다는 그런 열망 같은 것들이 저를 더 탄탄하게 지켜줬어요.”

피아노를 전공한 친언니의 도움도 컸다. 아무래도 가족이기 때문에 가식 없이 그녀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리사이틀에서 피아노로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함지민은 “평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고, 대화 자체가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언니가 있어서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덕분에 음악을 하면서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어요”라고 전했다.

현재는 서울대,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선화예중․고, 계원예고, 덕원예고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그녀는 연주와 가르치는 일에 대해 “둘 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연주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라면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이 얼마만큼 흡수하고 받아들이는지, 또 발전하는지가 관건이다. “제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자유로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조금 더 따라와 줬으면, 더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부분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죠. 눈에 띠게 흡수하는 학생들도 있고 더디게 나타나는 학생들도 있는데 제 역할은 기다려주고, 인내심을 갖고 같이 풀어나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분량의 삶을 살아낸다. 연주자는 연주자로서, 작가는 작가로서, 화가는 화가로서. 삶의 방향이 정해졌다면 남은 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끈기. 이 두 가지일 것이다. 그녀는 “힘들 시간들은 분명은 있었어요. 하지만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삶의 높은 벽에 부딪칠 때마다 음악이 평안을 주고 위로가 되었고, 한 숨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되어준 것은 분명해요.”

똑같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 위해 한 걸음 뗀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그녀는 무슨 말을 전해주고 싶을까. 늘 한 걸음 먼저 가본 선배들의 말은 그 어떤 양약보다도 귀한 조언이 된다. “음악을 하는 길이 쉽지는 않아요. 자기가 음악을 사랑하고 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우선순위를 분명히 지키는 것이 좋아요. 남들처럼 놀고 싶고, 쉬고 싶지만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책임감도 따라요.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해요. 그 결과물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으로 찾아와요. 대학입시에만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과정이니까요.”

무대 위에 서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함지민은 무대를 ‘두렵다’는 말로 표현했다. 오로지 음악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하기 때문이다. “무대는 좋으면서도 두려워요. 실력은 감출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일단 무대 위에 올라서면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어요. 그것을 위해 컨디션 조절이나 마음가짐 등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해요.”

(* 이 글은 월간 삼호뮤직 11월 호에 실린 글임)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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